[Opinion] 자전거를 탄다는 건 [사람]

사는 게 내 맘 같지 않을 때
글 입력 2021.05.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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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깨닫는다. 가까웠던 친구와는 별다른 이유 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확신하고 부딪혔던 일에는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며칠 전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턱을 다쳤는데, 그때는 서러움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조금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은 먼 것 같다.


어린 내게 대학생은 어른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초등학생 때 옆집에 살던 대학생 언니가 방학이 되면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주로 낮잠을 자고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부모님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우리 집에 피신 온 게 아닌가 싶다.


그 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일하게 그 언니 주위로 풍기던 은은한 향수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다. 언니가 돌아간 뒤에도 그 향은 여전히 집안 곳곳에 남아 나는 한동안 언니와 함께 있었는데, 그 잔재(殘在)는 언니가 있든 없든 든든한 어른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언니의 세계가 어린 내 세계에 잠깐 흘리고 간 것에 한동안 심취해 있는 걸 좋아했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은 늘 어린아이에게 좋은 법이었고 때로는 우월감에 휩싸이게까지 해주었다.


그때의 나는 저 정도의 나이만 되면 다 저런 옷을 입고 저런 화장을 하고 늘 내가 걷던 길에서 벗어나 곧장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일은 경계를 넘는 일이 아니었다. 수능이란 십 대 끝자락의 거대한 시험을 하나 치러내긴 했지만, 수능을 치지 않아도 어른이 될 수 있었고 아직 향수를 채 사지 않은 나도 어른이 될 수 있었고 잘 때 무서워 불을 켜고 자던 내 친구도 어른이 됐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이라는 걸 비로소 어른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마 내가 그렇게 멋있다고 생각하며 물끄러미 올려다본 그 언니의 눈에도 이런 두려움이 서려 있었겠지, 라고 지금은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지금 내 나이가 과거 그 언니와 비슷한 나이일 텐데, 그걸 생각하면 기분이 정말 묘해진다.


어릴 때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성인이 된 후 한강 근처로 이사 오게 되자 더더욱 산책을 좋아하게 됐다. 친구들이 들으면 하나같이 벌컥 화를 내곤 하는데, 나는 새벽에 산책하는 걸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우선 산책로에 사람이 적은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몰래 그 밤을 훔쳐서 노는 느낌이 좋아서 그러는 것 같다. 아무튼, 남몰래 눈을 피해 이것저것 하는 걸 조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언니가 한 명이 있는데 언니는 모든 면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늘 조급해하고 금방이라고 불안해지는 나와 달리 언니는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언니가 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나에게 다정한 것처럼 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늘 언니 너머에 있는 것들이 궁금한데, 아직도 파악 중이다.


오랜만에 언니가 내 자취방에 놀러 왔을 때 나는 문득 언니에게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누워서 핸드폰만 하는 언니와 조금 더 친밀하게 놀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머리를 비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때가 아트인사이트의 마감 날이었는데 늘 글을 비워낸 날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하여서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내 글에 자신이 없었고 내 글을 초라하게 느끼는 것만큼 마음이 괴로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도 누군가 내게 자전거를 성심성의껏 알려준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나를 성공하게 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 날도 나는 자전거를 배우는 걸 하고 싶었던 거지 진짜 자전거를 타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근데도 무슨 자신감인지 나는 언니가 잡아준다는 걸 만류하고 계속해서 혼자 페달을 밟아 나갔다. 여러 번 넘어지기도 했고 풀숲에 거의 자전거 전체가 박히기까지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 한 시간 가량을 끙끙대니까 얼추 모양새가 잡히기 시작했다. 중심이 잡히고 어느덧 혼자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언니가 뒤에서 영상을 찍어줬는데 좌우로 흔들리는 내 모습이 조금 웃기긴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전거를 배우다 보니 알았다. 계속해서 내가 페달을 밟는 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축 늘어지더라도, 분명 다음 날 녹초가 된 나는 더 자전거를 잘 탈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게 참 위안이 됐다. 노력하면 더 나아진다는 것. 넘어질지언정 뒤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생각하니 페달을 밟아가는 건 두렵지 않았다.


살다 보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 수두룩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이기도 하고 분명 좋아했던 노래는 어느 순간 질려 있기도 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일은 온전히 내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발을 올려 페달을 밟는 건 내 의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전거를 탄다면 결코 뒤로 갈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내 맘 같지 않을 때 자전거를 탄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그저 앞으로 달린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꼬인 마음은 괜찮아지곤 한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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