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엑스 마키나 - "인간들이여, AI 로봇이 두려운가." [영화]

영화 <엑스 마키나>가 던지는 질문
글 입력 2021.05.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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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스 마키나>는 프로그래머 칼렙이 천재 AI 기술자인 네이든의 비밀 거처에 특별히 방문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초반 네이든은 튜링테스트를 아느냐고 질문하고 영화는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들을 위해 설명해주듯 튜링테스트에 대해 설명한다. 튜링테스트는 기능주의적으로 인간과 컴퓨터가 동일하거나 동등한 수준인지를 파악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테스트다. 이는 엘런 튜링이 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개발한 사람으로 알려지며 그의 이름을 딴 테스트도 함께 유명해졌기에 많은 이들이 아는 내용일 것이다.

 

영화는 칼렙과 네이든이 기능주의적으로 AI 로봇 에이바를 점검하려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까지 이르게 되면 영화는 기능주의적인 접근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결론을 맺는다. 우리 '인간'들은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를 논한다. 오만하고 폭력적인 관점은 아닌지 회의하게 만드는 영화로 이 <엑스 마키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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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에이바는 일곱 차례의 테스트를 차례차례 거친다. 에이바가 “왜 나를 이곳에서 나가게 하지 않느냐.”, “당신도 검증에 실패하면 폐기되느냐? 왜 나는 그래야 하느냐?”라는 묻는 것은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오직 ‘인간과 동등한 수준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느냐’를 제3자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재료가 될 뿐이다.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에이바가 인지능력을 가지고 인간과 동일하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기능주의의 맥락의 바깥에서 에이바를 바라보게 하는 장면이 있다. 해당 장면은 주관적인 경험으로서 의미를 이해하고 다시 표현할 수 있는 에이바의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에이바의 진짜 내면을 보여준다. 바로 탈출 직전 웃는 에이바의 모습이다. 우리가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라고 믿어왔던 인간적인 웃음을 에이바에게서 발견하는 경험이 아주 핵심적이라고 본다.

 

결국 에이바가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울 만큼 똑똑하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에이바가 바깥을, 탈출을 원했다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러한 탈출을 목전에 둔 순간, 탈출의 첫걸음인 계단을 오르기 직전 아주 기쁜 얼굴로 웃는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기반하는 감각적인 표현으로 간주되며, 유일한 지위에 오른 듯한 인간의 ‘마음’을 탈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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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능주의적인 판단하에서도 에이바는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난다. 계산과 정보처리를 통해 인간과 비슷한 답변을 낼 수 있는 사고능력과 인지능력을 ‘기능’이라고 전제했을 때, 에이바의 지적인 능력과 상황인지의 ‘기능’은 매우 잘 수행되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기능’을 하는가? 이에 대한 회의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에이바 말고도,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AI 로봇이 있다. 바로 쿄코이다. 쿄코는 존재가 베일에 휩싸여있다가 후반부에서야 AI로봇으로 밝혀진다. 쿄코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쿄코의 외적인 특징인 인종으로 말미암아 영화가 구성한 메타포는 영화의 해석을 상당히 폭넓게 변모시킨다.

 

사실상 쿄코의 존재는 에이바의 존재보다도 더욱 ‘튜링테스트’라는 기능주의적인 접근 상황을 적용하기 좋은 캐릭터였다. 주인공을 비롯하여 관객들은 쿄코가 ‘인간’이라고 믿으며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이다. 물론 쿄코의 인종을 통해 쿄코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매끄럽게 넘어가도록 영화적 설정을 덧대었지만 말이다. 어떤 관객들은 쿄코의 어색한 ‘정보 처리’, 예를 들어 켈럽이 다가가기만 해도 단추를 풀고 옷을 벗으려 하는 등의 ‘아웃풋’을 보고 인간이 아니라고 의심했을 수도 있다. 영화가 거대한 튜링테스트를 관객 및 켈럽과 쿄코를 두 변수로 하여 진행했던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 쿄코는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이 매우 어렵다. 오히려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전제되는 상황 인지와 제스처의 이해, 표현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이 다가서자 쿄코는 성적인 상황에 대해 프로그래밍 혹은 학습이 되어있는 듯이 옷을 벗는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쿄코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단적으로는,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 쿄코는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인지 능력과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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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이든에게 성적인 용도로 ‘사용’ 당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쿄코에게 정해진 업무이자 행동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네이든은 쿄코를 인간과 ‘동등’한 수준으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능을 한없이 제한하고 프로세스를 한정시켰을 것이다.

 

네이든이 인간처럼 행동하도록 설계한 부분들에 한정해서 기능주의적인 판단을 한다면, 쿄코는 인간 같다. 이 기묘한 판단의 울타리를 통해 기능주의적인 판단이 가지는 단편성을 느끼게 된다. 쿄코는 ‘인간처럼’ 성적인 행위를 하고 ‘인간처럼’ 요리를 하고 ‘인간처럼’ 식사를 돕는다. 이 불평등한 착취의 관계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으레 하는 인간의 일이 여성을 착취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네이든의 여성 혐오적인 관념 하에서 쿄코는 인간의 모습을 거의 똑같이 재현하고 기능한다.

 

따라서 쿄코는 착취당하는 인간 여자의 전형으로 보이는 동시에 포괄적인 기능주의적 판단하에서 쿄코는 ‘인간과 동등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는 인권과 관련한 메타포를 감독이 심고자 했기에 발생한 의도적 입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착취당하는 AI 로봇의 모습은 결국 인간성을 한정적 권력으로 부여받았던 인간 역사에 대한 ‘불편함’을 건드린다. 쿄코가 착취당하는 모습이 불편했다면 그것은 쿄코가 로봇인지의 여부와는 오히려 중요하지 않아진다. 착취당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던 존재들에게는 인간성이 부여되지 않았던 사실을 그저 반사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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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쿄코는 영화 속에서 자기 주관적인 경험을 가지고 상황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자신이 착취당하는 로봇이라는 것을 켈럽에게 알리기 위해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피부를 벗겨 보여주는 장면이 그러하다. 또한 에이바와 조우했을 때, 네이든을  칼로 찌르는 일에 참여한다. 또한, 쿄코가 칼을 이용해 요리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움직였던 것, 에이바와 ‘무언가’로 소통한 듯한 장면 등에서 쿄코가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능주의적으로 동등하다고 해도 반기능주의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동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기존 로봇 및 AI에 대한 심리 철학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쿄코가 기능주의적으로는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될지라도, 반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인간과 동등한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게 의미를 인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쿄코의 경우가 지니는 입체성에서 출발하여, 반기능주의가 제시하는 중요한 기준인 주관적인 경험과 의미 인식의 복합성을 포스트휴머니즘적인 맥락에 적용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나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문>을 통해 철학적으로 사이보그 신체가 지닌 횡단의 힘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서구 근대 이성, 과학이라는 학문 등의 권력적인 규범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이를 적용하여, 쿄코와 같은 기존 인간의 언어에서 적극적으로 배제되어 그를 통해 대상화 당하고 착취당하는 지위로 의도적으로 내몰린 로봇 AI의 존재가 굉장히 상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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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은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AI 로봇을 구분지을 때 활용되는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기능, 인간의 수준, 인간적인 특성을 전제할 때 서구/근대/이성/남성/식민지배/백인 등의 키워드가 수반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AI 로봇 캐릭터인 쿄코를 통해 ‘튜링 테스트’의 차원으로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해페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할 수 있다. 쿄코의 존재는 해체주의적인 존재론과 정동과 맥을 같이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과 동등한’ 것에 목표가 있지 않고, ‘인간의 수준’, ‘인간의 기능’이라는 다분히 권력이 개입될 수 있는 배제적 경계를 허무는 것에 목표를 둔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인간은 단순히 로봇의 위협을 두려워하지만, 비인간으로 내몰렸던 존재들(소수자, 비인간 동물, 로봇, 사이보그)의 담론형성을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엑스 마키나> 속 여성 외형을 지닌 로봇들이 합작하여 자신의 창조자, 아버지로 자임한 네이든을 죽이고 탈출하는 엔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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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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