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금 느려도 괜찮으니까 - 문스토리

달에서 온 아이들
글 입력 2021.05.2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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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문스토리>는 택시 운전을 하는 한 남성이 희미해져 가는 기억에 미친 듯이 괴로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성의 이름은 이헌, 그는 과거 유명했던 만화 작가로 현재는 골방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이 달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한 남성(용)이 찾아온다.

 

 


달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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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문스토리를 지탱하는 줄거리는 달에 사는 ‘달의 아이’들이 멀리서 본 파란 지구를 동경하며 지구로 건너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달의 아이들은 지구의 빠른 자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지구에서의 삶에서 소외되고, 때로는 찬영(린)의 경우처럼 성별이 뒤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야속한 건 자신들이 그러한 달의 아이라는 것을 잊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거 달에서 경계 없이 얼굴과 얼굴을 맞닿아 이야기하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지던, 느려도 괜찮던 그때의 기억을 모두 잊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이 어디에서 오고 무엇을 찾아 이곳에 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분주하게 온 지구를 뛰어다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잊고 있는 것이다.


극이 진행되며 달의 아이들을 향해 생기는 애틋한 감정은, 우리가 그러한 달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서 소외되는 감정들, 어딘가를 막연히 헤매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구심, 기대어 서 있는 자그마한 공간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거기에 서 있을 가치조차 없는 것 같은 존재에 대한 괴로움. 여러모로 지구는 멋모르고 달에서 건너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뮤지컬 <문스토리>는 그런 점에서 재밌는 상상력을 빌려와 존재 자체에 위로를 전달해 준다. 조금 느린 이들에게, 지구에서의 삶이 어색한 이들에게, 너는 달의 아이라고. 너는 특별한 존재라고.




다름은 틀림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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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토리>에는 트렌스젠더 ‘린’(이자 찬영)이 등장한다. 최근 한국 로맨스 영화 전반에 분 퀴어 역풍에도, 여전히 트렌스젠더가 문화예술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충분한 서사를 부여받지 못하고 극 내에서 겉을 떠도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인 게 사실이다. 물론 트렌스젠더가 상징하는 ‘소수자’란 특성에서 그들은 사회 이면을 떠도는 캐릭터 그 자체가 되지만, 극에서만큼은 소외되지 않아야 하는 게 응당 문화 예술의 책임이다.

 

다행히도 뮤지컬 <문스토리>가 끌고 간 서사 구조에서 린이 표방하는 소수성은 다른 캐릭터를 위해 존재하지도, 이용당하지도 않았다. 린은 그 자체로서 목소리를 잃지 않고 극을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존재했다. 또한, 이는 앞선 달의 아이란 상징과 합쳐져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위안을 전달하는 역할로 작용하기 충분했다. 어떻게 보면 린은 ‘달의 아이’의 대표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극 자체의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다.

 

극 중 린의 말을 믿지 않는 이헌과 주위의 시선에 린은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제정신’의 기준은 오로지 타인에 의해 성립된다. 그 프레임 안에 갇히는 것도 나오는 것도 오로지 타인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신병’이란 단어는 오싹한 냉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채색의 세상에서 색을 띤 이들이 미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눈에 띄는 형형색색의 ‘틀린’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이 격리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이건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종종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상황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들과 다름을 ‘비정상’이라 간주하는 주위 시선에 우리는 마치 성의 요새를 높이 쌓아 올리듯,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타인과의 단절을 시도한다. 안전을 위해 내리는 조치지만, 실은 우리는 그 안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자 동시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다. 거기엔 고독과 외로움이 같이 따라온다.


뮤지컬 <문스토리>는 세상이 감춘 이들, 그리고 자신을 감춘 이들에게 소리친다. 너는 다른 것이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거기에서 나와 밝은 햇볕을 쬐어도 된다고. 극 중 린은 안타깝게 세상을 달리했지만, 우리의 결말은 다르기를 문스토리는 바랄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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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극을 보다 보면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는 이헌의 달콤한 꿈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달에서 건너와 부모가 없었기 때문에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던 유년 시절, 성별로 인해 사랑함에도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고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이를 잃어야 하는 상황까지도. 극 중 이헌에게 있어 가장 간절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그럴듯한 ‘망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허구이면 어떤가. 이헌에게 일어났던 이 모든 일이 잠시 달콤한 하룻밤의 꿈이어도, 그래서 그가 눈을 뜬 후 마주하게 된 건 전날과 똑같은 삶의 무게가 짓누르는 천장이면 어떤가. 산다는 것은 유치하고 비참하지만 때로는 그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그래서 이 극에 위로를 받고 떠나는 이들이 받은 그 위로가 일시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평생 계속되길 바란다. 꼭 달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아득한 곳을 상상하는 건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극의 마지막 이헌은 지구에 남아 조금 더 세상을 경험해 보기로 하고 용은 그가 사랑하는 달로 돌아간다. 용은 그렇게 달에 남아 지구로 간 달의 아이들을 모두 궁금해하고 그들을 지켜봐 줄 것이다. 달은 지구의 유일한 자연 위성으로 늘 지구를 지켜본다.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면, 고개를 올려 달을 바라봐도 좋을 거 같다. 그곳에는 우리 존재 자체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밝게 웃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달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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