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한한 생의 '무(無)' [문학]

글 입력 2021.05.26 12: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남성이 지배해온 문학사 속에서 여성 작가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몇 안 되는 귀중한 흔적 중,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묵직한 존재를 뽐내며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디킨슨 특유의 담담한 필체와 특이한 형식은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효과를 가중시킨다. 시는 산문에 비해 훨씬 간결하고 간단한 형식을 가진 장르인데, 디킨슨은 시의 그러한 특성을 더욱 함축적으로 품어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생전 천착했던 여러 주제들 중 하나의 큰 가지는 인간 삶에 자리한 끊임없는 ‘무(無; nothingness)’이다. 무(無)는 아예 텅 빈 상태를 가리키는 ‘공(空)’ 혹은 ‘존재의 결핍’으로 해석된다. 디킨슨은 이 ‘무’에 대한 고찰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에서 풀어낸다. 시 Silence is all we dread에서는 ‘무’를 침묵이라는 감각적인 방식으로 구현했으며, 시 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의 경우 고독이라는 감정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했다.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처럼 존재론적 차원으로 주제를 끌고 와 죽음에 비유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두 시는 ‘무’를 공포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는 반면 세 번째 시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며 인간의 필멸성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긍정과 부정을 넘나들며 주제를 다채롭게 해부하는 디킨슨의 태도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선택한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각 시 속 묘사된 ‘무’의 모습은 연약한 인간의 삶을 하나로 관통한다. 무한한 비가시적인 가치들 앞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은 여과 없이 드러난다. 디킨슨이 강조한 삶의 통제 불가능성은 독자의 마음에 강렬한 파문을 남기며 떨어진다.

 

 

 

감각적으로 ‘무’를 묘사한 Silence is all we dread


  

 

Silence is all we dread


Silence is all we dread.

There’s Ransom in a Voice—

But Silence is Infinity.

Himself have not a face.

 

 

Silence is all we dread는 오직 네 개의 행으로만 이루어진 아주 간결한 시로, 작가는 ‘무’를 ‘침묵(silence)’에 빗대어 청각적으로 표현하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공포와 두려움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낸다.

 

화자는 첫 번째 행에서 단호한 어조로 침묵을 두려움으로 규정하며 시작한다. ‘all’이라는 한정사에서 잘 드러나듯, 살아있는 인간 모두 예외 없이 침묵이 가져오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침묵은 형체와 소리가 없어 아예 감각할 수 없으니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도, 확실한 정체를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침묵은 무한하다. 형체 없음, 소리 없음, 감각 불가능함, 그리고 무한함은 모두 ‘무’의 특성이다. 디킨슨은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비어있음(空)’이 인간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존재적 공허함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리를 통해 소통 및 교감하는 인간에게 불청(不聽)은 공포다. 이러한 측면에서 침묵은 관계의 단절이자 고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타인과 함께 있어도 적막한 우주 속에서 홀로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 때문에 화자는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차라리 ‘소리’가 낫다고 주장한다. (‘침묵’과 대비되는 ‘목소리’는 몸값이 지급되어야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때로는 지독한 소음 가운데 머물러야 할 수도 있지만 삶은 본디 시끄럽고 우리는 소음에 익숙하다. 이와 반대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삶을 낯설게 만드는 침묵과 같은 ‘무’ 앞에서 인간은 그저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고독이라는 감정으로 그려낸 ‘무’, 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


  

 

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 (777)


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 —

And would as soon surmise

As in its Grave go plumbing

To ascertain the size —


The Loneliness whose worst alarm

Is lest itself should see —

And perish from before itself

For just a scrutiny —


The Horror not to be surveyed —

But skirted in the Dark —

With Consciousness suspended —

And Being under Lock —


I fear me this — is Loneliness —

The Maker of the soul

Its Caverns and its Corridors

Illuminate — or seal —

 

 

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에서 디킨슨은 인간 삶의 ‘무’를 ‘고독(loneliness)’으로 풀어낸다. 첫 행에서 화자는 고독의 특징으로 소리의 부재를 언급하며 다시 한번 침묵을 조명한다. 이어 외로움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오직 죽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결코 고독의 무한한 크기를 알 수 없다는 불가능성의 반증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고독을 ‘최악의 알람’이라고 표현하며, 고독 자체가 형체가 없어 우리가 목격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인간은 무형의 고독 앞에서 텅 빈 존재로 전락한다. 때로 고독은 공포로 찾아온다. 감각할 수 없어서 침묵을 두려워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형체 없는 외로움 또한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된다. 화자는 이 끔찍한 고독을 어둠에 비유한다. 비가시성과 어둠, 그리고 공포는 한데 연결되어 고독을 향한 화자의 시선을 드러낸다.

 

외로움은 우리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인간에게 내재한 고독은 잠김이 풀릴 때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와 존재를 잠식한다. 그러한 이유로 화자는 고독이 두렵다고 직접적으로 고백한다(“I fear me this—is Loneliness—“). 이는 시에 드러난 화자의 태도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또한 들리지 않고, 크기도 잴 수 없고, 보이지 않고 감춰져 있어서 관찰 불가능하다는 점은 디킨슨이 말하는 ‘침묵’의 속성과도 매우 유사하다. 디킨슨은 침묵과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연결된 상태로 규정하는 듯하다.

 

디킨슨은 고독이라는 감정적 공허를 통해 ‘무’를 표현한다. 삶에서 인간이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허무함—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함—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 것 같은 비어있음을 시의 언어로 구현해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A Clean, Well-Lighted Place’에서 바텐더는 스페인어 ‘nada(nothing; 허무)’를 집어넣은 주기도문을 외우며 삶을 잠식한 공허에 대한 착잡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탄식한다. “허무에 계신 우리의 허무님, 당신의 이름으로 허무해지시고, 당신의 왕국이 허무하소서. […] 허무로 가득한 허무를 찬미하라, 허무가 그대와 함께하리니.” 발 딛고 서 있는 공간부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끝내는 자신의 존재마저도 허무해지는 완벽한 ‘무’는 인간을 고독 속에 빠져 괴롭게 만든다. 디킨슨은 침묵에 이어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무’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표출해낸다.

 

 

 

죽음이라는 ‘무’,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479)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

He kindly stopped for me –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 – 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 – in the Ring –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

We passed the Setting Sun –


Or rather – He passed Us –

The Dews drew quivering and Chill –

For only Gossamer, my Gown –

My Tippet – only Tulle –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

The Cornice – in the Ground –


Since then – 'tis Centuries – 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

 

 

디킨슨은 ‘무’를 존재의 결핍인 '죽음(death)'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행,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는 인간이 결국 필멸의 존재이며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생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끄집어낸다. 두 번째 행에서는 의인화된 ‘죽음’이 마차를 타고 찾아와 마찬가지로 의인화된 ‘불멸’과 함께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소위 ‘죽음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화자의 능동적 선택이 아닌, 죽음이 친절하게 다가와 멈췄다는 묘사는 다시 한번 인간이 죽음을 손안에 틀어쥘 수 없음을 강조한다.

 

불멸과의 동승은 죽음의 불멸성, 즉, 죽음이 가져다주는 영원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과 모든 생명이 가진 유한성과 대비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언젠가 사라져 ‘무’가 되지만, ‘무’인 죽음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무의 영역으로 포용 및 수용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들—일과 여가의 위치를 완전히 박탈시킨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은 쉽사리 의미를 잃는다.

 

네 번째 연에서는 화자의 죽음이 비유를 통해 그려진다. 화자를 태운 마차는 무덤을 상징하는 커다란 집 앞에서 멈춘다. 이 죽음의 집에서 인간은 결국 ‘무’의 존재가 된다. 숨이 끊기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며, 끝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없어져 완벽히 ‘무’의 상태가 되고 마는 운명이다. 그러나 화자의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자는 죽음의 집에 잠시 멈췄을 뿐,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 다시 떠난다. 시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말의 머리가 영원을 향해 있다며 첫 번째 연에서 언급했던 죽음의 영원성에 대해 다시 노래한다. 필멸하는 육신은 점차 썩어 ‘무’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세계로 넘어간다.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며 영원에 닿기 전 잠시 들르는 정류장일 뿐이다.

 

앞의 두 시와 달리, 이 시에서 디킨슨은 ‘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수용한다. 디킨슨은 ‘친절’, ‘정중함’, 그리고 ‘영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죽음을 묘사함으로써 우호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그녀는 인간이 ‘무’에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유한성의 껍데기에서 탈출하여 죽음이 선물하는 불멸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보고 있다. 디킨슨에게 ‘죽음’이라는 ‘무’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디킨슨이 선택한 장치



디킨슨이 시에서 사용한 장치들은 주제가 시 속에서 잘 구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대쉬’의 사용이다. 보통 대쉬가 ‘상응’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과 달리, 앞의 세 시에서 대쉬는 일종의 호흡처럼 사용된다. ‘무’를 시의 주제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탄식하거나 울부짖지 않는다. 그러나 차분한 톤의 문장들 사이사이에 대쉬를 배치함으로써 마치 불규칙적으로 숨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화자가 마치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기를 망설이고, 고민하고, 심지어 괴로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화자의 침잠하는 고뇌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시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디킨슨은 행의 첫 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 단어의 의미는 더욱 강조되고 독자들 또한 단어가 가진 함의에 대해 재고해보는 효과가 나타난다.

 

*


디킨슨은 ‘무’라는 주제를 각각 ‘침묵(silence)’, ‘고독(loneliness)’, 그리고 ‘죽음(death)’에 비유하며 이들의 존재로 인해 삶에서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초연함을 시 속에서 표현했다. 각각 감각, 감정, 존재라는 서로 다른 접근방식을 사용했지만, 결국 세 시 모두 인간이 가진 연약함—알 수 없는 존재 앞의 공포, 내재된 고독,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디킨슨은 이 무거운 ‘무’를 그녀만의 정적인 어조를 통해 해석함으로써 삶의 여러 단편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에디터 Tag.jpg

 

 

[최미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561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12.0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