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력과 개인적 거리두기 - 노력의 기쁨과 슬픔

글 입력 2021.05.2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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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만큼 완벽한 서사가 있을까. 처음과 끝의 간극을 멀찍이 두는 도구로 노력이 사용될 때의 희열감과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력이라는 두 글자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노력을 놓지 못한다. 노력은 우리의 구원자인 동시에 어릴 때부터 학습된 동반자이다.

 

노력을 내려놓는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행위이다. 스스로 도태되기를 선택하지 않은 이상, 노력은 가정-학교-직장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특히, 과열된 경쟁의 양상이 점점 커지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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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력이 당연한 사람들에게 실은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저자는 철학자답게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였고, 자신의 의견에 적절하게 적용될 만한 다른 분야의 예시도 들어가며 주장한다. 노력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 말하는 이 책은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것들과 노력하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담겨있다.

   

 

 

노력의 기쁨


 

 

“모든 일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계속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되 조금씩 나아지기만 하면 된다.”

 

- 26p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작’에 온 힘을 다한다. 정각이 되면 공부를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나 새해가 되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는 마음가짐 말이다. 이는 정각과 새해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하나의 숫자에 불과 한다는 사실의 외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고유하게 특별한 의미라도 깃들은 듯 때와 상황이 자신에게 맞춰 들 때까지 ‘시작’하는 순간을 고대한다.

 

책에는 스탕달이라는 인물이 때와 상황이 자신에게 맞춰들기만을 기다리다 10년이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이야기를 예시로 들었다. 천재적인 영감이 떠오를 때 펜을 집어 글을 시작하겠다고 한 다짐은 10년 동안 지속됐다. 아무런 성과 없이.

 

인터넷을 하다 보면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의 견해가 담긴 글이 보일 때가 있다. 나의 흥미를 유발하는 제목을 발견할 때면 어김없이 눌러 또 하나의 새로운 사람의 새로운 생각을 읽곤 한다. 우연히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글쓰기 학원에 다녔을 때 친구의 천부적인 재능이 부럽고 무섭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친구처럼 기막힌 문장이 나오지 않았고, 한 집단 내에서 재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구분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여전히 글을 쓰는 자신과 펜을 놓은 지 오래된 친구를 비교했을 때, 그제 서야 자신의 글이 상당히 발전했음을 깨달았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늘 수밖에 없었다고.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든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도 같은 바를 주장한다. 무언가를 시작할 필요 없이 그냥 계속하기만 하면 된다고. 큰 결심은 할 필요가 없다고. ‘계속’된 시간 안에서 누적된 지속성은 우리에게 통용되는 노력과도 같고, 때로는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대단한 결심 따위는 잠시 넣어두고 그냥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와 근접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력의 슬픔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아는가. 모든 것에 있어서 최소한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서는 달인이 된다는 법칙을 말한다. 몇 년 전 티브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한 내용이 전파를 탔고, 그 속에는 약 1만 시간을 투자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머릿속은 1만 시간의 법칙이 달인이 위해 필수적으로 도달해야 할 기준에 이르렀고, 나도 이 법칙에 대해 크게 부정한 적은 없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말이 틀렸다면 너무 절망적이지 않나.

 

저자는 골프의 달인이 되기 위해 1만 시간을 투자하려 계획한 댄의 사례를 통해 이 법칙을 부정한다. 재능 없이 노력만으로 위대함을 이룩해줄 마법의 숫자 같은 건 없다고. 이질감이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 하나 따라잡기 힘들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천재가 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실은 그 흉내도 내지 못한다는 말은 슬픔을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껏 미디어로 봐왔던 ‘원래는 음치, 몸치였는데 연습생 기간 내내 죽어라 연습했더니 메인 보컬, 메인 댄서가 됐어요.’ 등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단 건지, 실낱같은 희망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게 아닌지, 많은 반발심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어도 이 대목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절망감에 휩싸이기 싫었다.

 

아마 내가 저자의 견해를 부정하는 이유에는 그 주장이 틀렸다고 확신하는 마음과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될놈될*’의 공식이 참이라는 사실은 나 같은 보통의 보통과도 같은 일반인에게 좌절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저자의 견해에 반하는 나는 정성을 다해 거대하게 부풀린 노력이 비눗방울처럼 한순간 터져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될놈될: ‘될 놈은 된다.’의 줄임말. 성공할 사람은 악재 속에서도 어떻게든 성공하게 된다는 뜻.

 

 

 

노력의 소멸


  

‘나 이번에 정말 많이 노력했어,’는 대개 자신이 목표를 위해 투자한 시간, 돈, 정신 등이 온전히 존재할 때, 이를 증명하고자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다. 마치 산 정상에 있는 목표에 닿기 위해 등반하는 내내 무언가를 계속 의도적으로 지불하고 그런 자신의 행동을 인지한 채, 그에 따른 타당한 대가가 따라오기를 바라며 집착하는 모습과도 같다. 투자와 결과가 비례하지 않으면 절망이 온몸을 뒤덮듯이 내가 이만큼의 투자를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라는 생각은 어떨 땐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그 목표에 너무 매달리지 말 것.”
 

- 214p

 

 

저자는 대학생 시절 과외를 맡은 학생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학생의 반응과 책을 읽는 나의 반응은 일치했다. 왜? 그게 말이 되나? 사람들이 희망할 때 의존하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라는 문구를 부정하는 건가? 이 반응에 대한 피드백은 이렇다. 철학 점수를 올리기 위해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점수’라는 목표에 매달리며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아닌 철학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즉, 작위적인 행동이 아닌 자연스러움을 추구할 것을 권고한다.

 

덧붙여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여 주변의 상황이나 최종적인 목표를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감정에 빠지면 그 일을 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 공부를 사랑하는 사람이 책과 마주하는 시간에 몰입하면 자연스레 전국적인 수치로 증명되듯, 악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손에 쥐어진 기구를 조율하는 데 몰입하면 자연스레 최고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되듯이 말이다. 특정 분야와 사랑에 빠진다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전혀 예상치 못한 높이에서 지면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례가 있다. 부가적인 설명이 불필요한 ‘방탄소년단’, 이들은 두 달 전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해 자신들이 가졌던 부담과 두려움, 무서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중 이런 말이 지나갔다.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저희는 저희 할 일을 되게 열심히 한 것뿐인데···’ 현 글의 논점에 맞게 이 구절만 잠시 뽑아 바라보자. 예기치 못한 미국 진출, 업적이라 칭해지는 기록들, 이 모든 것들은 그들뿐만 아니라 늘 옆에서 지켜본 팬들과 지인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고, 애초에 미국 진출을 목표로 삼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여 압도적인 감정에 빠진 결과, 모두가 알고 있는 대대적인 성과를 낳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팬들의 도움과 시대적인 흐름과 잘 맞물려 모든 게 완벽한 합을 이룬 면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나 자기 일과 사랑에 빠져 의도적인 노력의 소멸과 자연스러운 몰입의 생성이 있었다는 것이 본질임은 분명하다.

 

때로는 우리가 칭하는 ‘노력’이 소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내려놓기’였다. 내려놓는 게 가장 힘든 나에게 생각을 멈추고 내려놓으라는 말은 앞의 내용을 잊을 만큼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수면시간마저도 활동적이고 비현실적인 꿈에 지배당해 새벽에 깨는 일이 허다한 머릿속은 비수면 상태에서 생각이 그치는 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의 생각은 공상에 지나지 않지만 두려움이 다가올 때면 상상력은 무한하게 팽창했고, 무한히 팽창된 상상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또다시 무한한 걱정을 낳았다.

 

두려움이 낳은 걱정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노력을 가하게 만들었고, 결국 보잘것없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결과를 내었다. 내려놓는 법을 몰라 반복된 행동으로 굴러가는 나는 끝끝내 지치고 무너져 버리곤 만다.

   

 
“과도한 생각은 존재 전체를 오염시키고 심지어 위협한다.”
 

- 168p

 

 

과도한 생각은 행복마저 잠식해버린다. 어느 순간 행복한 일이 있으면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할까에 대한 불안과 행복과 불행은 공존한다는 생각에 온전히 환희의 감정을 즐기지 못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환희를 온전히 누리려면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인지는 하면서도 제대로 실천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면 그 순간만큼이라도 잠시 내려놔야 하는데, 나는 이게 참 어렵다. 내 발목을 잡는 이 집착을 버리는 날이 올해가 가기 전에는 오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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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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