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력을 할 줄만 알았지, 방법은 없었던 나에게 - 노력의 기쁨과 슬픔

“아, 노력이란 걸 이렇게 이해할 수 있구나”
글 입력 2021.05.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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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에는 ‘노력’이란 단어가 없었다. 노력을 안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숨을 쉰다’라는 명제처럼 굳이 떠올리거나 읊을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었다는 의미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숨을 쉰다’라는 명제가 또렷이 떠오르듯, 나는 내가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노력’이라는 단어가 고민이 되어 지나치게 덮쳐오는 사람이었다. 작은 선택을 해도 꽤나 망설이는 사람인데 노력에 대한 것이라면 앞뒤 없이 그냥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고 돌아보자니 조금은 무식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겨우 증명된 것들이 그런 논리 위에 있었기에, 그리고 들려오는 채찍질 같은 말이 그러한 것이었기에 나는 노력이란 걸 했다. 아주 열심히, 내가 지쳤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최근 나의 노력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우울증이나 번아웃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게 예측되는 순간 던진 질문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단계여서 “이렇게 살다간 꼼짝없이 죽겠군!”이라며 익숙하게 농담조로 그냥 넘겨보려 했는데. 새삼 언제까지 이러기를 반복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요즘은 노력해도 매번 시원찮은 기분이었다. 노력한 만큼 성취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뿌듯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하루의 끝은 어딘가 찝찝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계속 원래 페이스대로 노력하는 일상을 살아야 했다. 그나마 할 일을 하며 오늘을 살아냈다는 안정감을 그렇게 찾아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력뿐인 삶에 노력이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는 건 많이 괴로운 일이었다.


내게 노력은 기쁨이었다. 열심히 한 만큼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성장하게 했으니까. 물론 슬픔이기도 했다. 노력하는 건 힘이 드는 일이니 분명 지치는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 노력에 얽힌 기쁨과 슬픔에 대한 논리는 특별하랄 것 없이 단순했다. 근데 지금까지의 이야기처럼, 이제는 아니었다.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꼬이고 꼬인 매듭 같은 것이 되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연했던 “노력의 기쁨과 슬픔” 자체가, 어찌 됐든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그리고 새롭게 생각해야 할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슬픔이 너무도 커져버린, 기쁨이 뭔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내 앞에 떨어졌다.


서론치고는 구구절절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런 나였기에 나는 『노력의 기쁨과 슬픔』이란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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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노력은 무용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까지 하다.”


책은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이번에도 “얼른 책 열심히 읽고 이번에는 (제발!) 리뷰를 잘 써봐야지”라고 생각하던 내 무의식 코앞에 돌연 세워진 “멈춤” 표지판처럼, 문장은 내 앞에 우뚝 세워졌다. 간신히 코는 부딪치지 않았고, 나는 그 위에 쓰인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때로 노력은 무용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까지 하다.” 완벽한 첫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문장은 내가 깨달았으면서도 애써 부정하다,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새삼 내가 정말 제대로 책을 잡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시작부터 정곡을 찔린 독자의 손에는 힘이 실렸다.


노력은 무조건 열심히 그리고 에너지를 소모하며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내게 책은 이런 질문을 반복하게 했다. 우리가 애써서 하는 노력은 진정 언제 의미가 있었는지, 그리고 의미 있던 순간이 꼭 고통스러운 노력을 수반하며 이뤄졌는지 말이다.


노력에 대한 것이 고민인 독자였던 만큼, 책 내용의 많은 부분이 와닿았다. 리뷰에서는 책을 읽으며 남긴 메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노력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장 먼저 전개하게 해준 “자세 찾기”라는 챕터의 일부를 나눠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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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긴장과 폭발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순환하는 호흡으로 보는 것이다"(139p) 

 


“난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조각가로서 이런 잘못된 작업 방식을 감히 포기하지 못했다. 언제나 힘세고 강력한 것을 만들고 싶었지만, 무슨 짓을 해도 내 작품을 볼품없이 죽어 있었다. 그런 결과물을 보면서도 나에겐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었다. 그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 오귀스트 로댕

 


책에서 만난 로댕의 말은 단어만 바꾸면 나의 이야기와 다름없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잘못된 작업 방식을 감히 포기하지 못했다. 언제나 잘 정리되고 좋은 것을 쓰고 싶었지만, 무슨 짓을 해도 내 글은 볼품없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런 결과물을 보면서도 나에겐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었다. 그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장에 얽힌 로댕과 나의 문제적 공통점은 바로 힘과 노력은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나의 상황을 책의 내용과 연결해 성찰해보니 내겐 목표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있었다. 책임감, 일을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 ‘안전하게 가야 한다’는 승리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불안이 있던 것이다. “목표가 있으면 당연히 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과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던(혹은 생각할 여지도 없다며 따랐던) 내게 다가온 새로운 전환이었다. 로댕의 삶의 고백을 보고, 그런 그가 결국 남겼던 작품들을 떠올려보고, 같은 고민을 했던 내 일상을 책 속 메시지와 함께 다시 바라보니 사뭇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일었다.


“목표를 놓치지 않고 잡긴 잡아야겠지. 근데 그걸 구태여 아플 정도로 잡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 나의 강박과 괴로움, 고통이 일의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건 아니니까. 이런 생각에 이르니, 매번 할 일을 위한 노력과 관계없이 새어나가던 감정들의 소모가 떠올랐다(어쩌면 나는 이조차 노력이라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내가 지금까지 끌고 온 노력의 형태가 내가 지속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덩어리로 뒤엉켜있었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지금껏 나는 무게를 실으면 실었지 덜어내는 법은 전혀 몰랐으니까.


이제부터라도 내 노력을 조금씩 살피면서 내게 꼭 맞는 형태를 찾아가는 가지치기를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책의 표현에 의하면 ‘내가 가장 편한 자세’와 내가 지닌 ‘에너지의 형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제는, 이 다짐에 지나친 목표 의식을 두지 않고 내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방식과 흐름을 가만히 감각하는 것으로 노력해보려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천천히 찾아가는 변화라고 생각하며.

 

 

책임감, 일을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 '안전하게 가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면 승리를 향한 집착에 작별을, 패배를 향한 공포에 이별을 고할 수 있다. 결국 행위를 할 때 순수한 즐거움만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즐거움만 남는다.

 

- 119p

 


로댕은 강력한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찾았다고 한다. “힘과 우아함은 곧잘 동맹을 맺기에 진정한 우아함은 강력하다”라는 말을 고백한 예술가의 조각은, 팽창한 근육이나 웅장한 스케일이 아닌 그가 발견한 우아함으로 그 아름다움을 드러냈고 많은 이들이 그런 그의 작품에 감동하고 그를 기억했다.


“그럼 나는?” 이제 내게 질문한다. 내 에너지가 가장 잘 발휘되는 방식과 태도는 무엇일까. 무엇이든 시작해볼 준비가 된, 내가 취할 수 있는 편한 자세는 무엇일까. 나의 순수한 즐거움은 무엇이고 그것은 언제 나타났을까. 나를 고통스럽게 소모하는 에너지가 아닌, 안정감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처음으로 ‘노력’이 아닌, 그 노력에 들어가던 나의 자세와 에너지가 지닌 방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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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노력을 다루는 여러 도구와 새로운 메시지들을 얻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지식을 얻었다는 것보다 ‘노력’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새롭게 확장되고 입체적인 모습이 되었다는 변화가 더 좋았고 소중했다. 지금껏 노력을 하다 지친 나를 탓하며 다음엔 더 힘내자고, 내게 초점을 맞춘 미약한 다짐만을 반복했지 노력 자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살펴볼 여지를 가져본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을 다르게 보는 시각이 생겼다. 단지 맹목적인 방식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능숙하고 세심하게 살펴보려는 자세를 취한 내가 보였다. 매일 그리고 많이 하던 노력이었던 만큼, 많은 질문을 하게 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게 질문한다. 지금 나의 노력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 자세와 태도가 거기 있는지, 지금 이 순간 슬기롭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감각하고 있는지, 그런 노력의 순간을 어떻게 만끽하고 있는지 말이다.


“노력해도 별 의미가 없다. 저번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런 것이다. 지쳤으니까 잠시 쉬면 괜찮아지겠지”라며 반복하던 무심한 논리에서, “아 그런데 언제까지 이러기를 반복하며 살아야하지?라며 튀어오른 의심 앞에 나타난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그 자체로 막연한 고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머물렀을 나의 질문을 다양한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게 했다.


오랜 습관과 태도를 단번에 고치기란 어렵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 역시 긴 시행착오의 과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며 1차적으로 상정해본 나의 새로운 태도, “목적을 기억하되 지나친 생각을 거두고 흘러가는 나의 에너지 속에서”라는 마음가짐으로 나를 감각하고 성찰하며 진정한 나만의 노력을 찾아보려 한다. 아마 이제부터 더 많은 과정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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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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