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자크와 흰 테니스 운동화를 신은 소녀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5.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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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소설과 동명의 영화
Balzac and the Little Chinese Seamstress (2002)의 스틸컷

 


다이 시지에는 프랑스에서 영화감독과 소설가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예술가이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되어 쓰촨성에 하방(下放) 되어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재교육을 받고, 이 시기의 경험을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라는 자전적 소설로 담아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속 주인공 ‘나’와 친구 ‘뤄’의 아버지는 이름 높은 치과의사였으나 하루아침에 반동분자로 몰렸고, 이에 소년들도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몰려 시골로 ‘재교육’을 받기 위해 배치된다. 산골에서 똥지게를 나르고, 탄광 일도 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두 소년은 또 다른 친구인 ‘안경잡이’로부터 얻게 된 서양의 문명인 발자크의 소설을 읽게 된다.

 

그들은 친구였던 바느질 소녀에게도 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를 교양 있는 소녀로 계몽시키려고 한다. 결국 책의 마지막 장면에 바느질 소녀는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깨닫고 마을을 떠나며 마무리된다.

 

재교육을 받는 두 소년과 산골에 파묻혀 살아가던 소녀, 그리고 그들이 접한 낯설고 매혹적인 서양의 문학과 자유의 세계를 문화대혁명과 다이 시지에의 비판, 억압의 시대에 더욱더 빛나는 문학의 힘, 책이 주는 계몽과 희망의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1. 문화대혁명이라는 암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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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반부에 서양의 문물인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에게 촌장이 윽박지르자 변명하는듯한 대사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당시 상황을 압축적이고 유머러스하게 포착해낸다.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는 겁니다.”(11p)

 

18세기의 유럽을 살다간 모차르트가 마오쩌둥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소년의 짧은 대사는 이성과 논리가 부재하고 마오쩌둥과 공산당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충절만으로 생존해야 하는 시대인 문화대혁명을 비꼰다. 작가의 대담한 풍자적 문장은 작품 속에 웃음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한편,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마오쩌둥의 책 외엔 모든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다. 마오쩌둥이라는 존재를 우상화하고 애국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극단적인 이념 논리를 작동시켜 공산주의 사상으로 세뇌당하던 소년들은 문학을 통해 이념 정치에서 벗어난 입체적이고 다양한 인물과 감정을 맞닥뜨린다.

 

발자크를 비롯해 위고, 스탕달, 뒤마,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등의 작가의 책을 발견한 순간의 묘사는 이러하다. 소년들의 대화를 읽으며 문화대혁명에 대한 작가의 직접적인 비판이 놀랍기도 했다.

 

 

“영화의 한 장면, 은행 강도들이 지폐가 가득 든 가방을 열었을 때가 생각나…….”

“기쁨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 않아?”

“아니, 난 증오심만 나는걸.”

“나도 그래. 이런 책들을 읽지 못하게 금지한 자들이 모두 가증스러워.” (131p)

 

 

 

2. 암흑기 속 숨겨진 문학이라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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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본성을 억압한다고 한들 어떻게 인간이 억눌린 채로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안경잡이’를 통해 얻은 서양의 역동적인 문학이 두 소년에게 준 충격은 그들의 마음속 감정들을 일깨웠다. 공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이성과의 사랑과 같은 입체적인 주제들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삶을 갈망하게 했다.

 

사실 문학을 접하기 전에도 소년들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영화의 내용을 말로 풀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곤 했었는데, 문학을 접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안경잡이’의 비밀 가방에서 금지된 과일을 맛보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중국이나 북한, 심지어는 알바니아 영화 중에서 하나를 골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나의 교양과목이었던 공격적 프롤레타리아의 사실주의를 그린 그 영화들은 이제 나에게는 인간의 욕망과 진정한 고통, 특히 삶과는 아주 동떨어져 보여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이야기하는 고생을 할 만큼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170p)

 

 

책의 후반부에 바느질 소녀는 뤄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당시 그들은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였기에 아이를 낳는 선택지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낙태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소년은 『위르쉴 미루에』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책 『장 크리스토프』를 뇌물로 의사에게 약속하며 낙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문학책을 뇌물로 주어 원하는 것을 얻는 사회라니, 책을 사랑하는 인민들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 성장기를 겪었던 중국의 작가 '위화' 역시 문화대혁명 시절 서양의 문학책들을 몰래 읽고 환희에 젖었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서점에서 마오쩌둥이 작가가 아닌 다양한 책들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 새벽같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아 겨우 책을 구매하곤 했다고 자신의 에세이에 기록했다.

 

억눌린 시절 속 중국인들이 얼마나 자유를 그리워하고, 인간에게 문학이란 삶에 강렬한 갈망을 준다는 사실을 작가들의 서술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3. 발자크와 흰 테니스 운동화를 신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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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뤄’는 소녀에게 발자크와 다른 책들을 계속 이야기해주고 사실 소녀를 교양 있는 처녀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을 뜬 소녀는 현실에서 머무르며 소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만 만족하는 ‘청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하러 떠나는 ‘주인공’이 된다. 어쩌면 소녀는 뤄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세계를 사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252p)

 

 

위의 문장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이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나는 이 문장 속에 담긴 여자의 아름다움을 단순히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남자용 재킷에 단발로 친 머리, 흰 테니스 운동화를 신은 소녀는 아버지에게도, 소년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장기 여행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소녀는 오랜 기간 생각하고 떠날 채비를 마쳐 새 삶을 향해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소년들이 소녀를 촌뜨기 처녀에서 교양 있고 세련된 여성으로 계몽시키겠다는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녀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소년들을 뿌리치고 홀로 마을을 떠난다. 소녀가 대도시로 떠나는 장면으로 소설이 마무리됨으로써 그 이후의 삶을 비춰주지 않는 것은 제법 아쉽기도 하다.

 

1970년대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중국에서 미성년의 소녀가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현실적인 물음을 떠올리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마치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처럼, 깨달은 여성이 문을 박차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결말은 억압을 거부하는 면에서 카타르시스적 매혹을 선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위태롭다.

 

하지만 작가가 ‘부르주아 지식인’ 태생인 두 ‘소년’을 놔두고, 산골에서 살아온 ‘촌뜨기’인 ‘소녀’를 우물 밖으로 나아가게 한 이유는 어쩌면 그 지점에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소년들에게 계몽의 대상이었던 소녀가 계몽의 주체가 되는 결말을 선택하여 더 극적인 해방감을 부여하고 지나온 어두운 과거를 반전시켜 보고 싶은 마음. 공산주의가 미처 제거하지 못한 빛을 향한 원초적 본능을 품고 있던 인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희망을 전달하는데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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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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