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히려 완벽한 휴일 - 포춘쿠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5.1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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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은모든 작가의 단편소설 「포춘쿠키」이다. 웹진 《비유》 2021년 4월호를 통해 발표된 「포춘쿠키」는 여유로운 휴일을 맞이하여 인천 차이나타운과 신포시장 일대를 산책하는 한 삼십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휴일의 장면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것이지만, 은모든 작가의 문법 속에서 이 지극히 평범한 장면들은 독자를 소설 속의 안온함으로 데려다준다. 무엇이 독자들을 이 소설 속으로 몰입시키는가. 이 소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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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든 작가는 2018년 한국경제 신문문예 장편소설 부문에서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장편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소설의 창작층과 독자층 모두에게 있어서 단편소설이 조금 더 주류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에서 장편소설 부문을 아예 개설하지 않는 신문사도 많거니와 문학시장에서도 단편소설을 통해 검증되어야 비로소 그 작가의 장편소설을 출판하는 경향도 은연중에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장편소설로 등단을 시도하고, 또 등단 이후에 장편소설로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은모든 작가는 등단작은 물론 현재 출판된 작품들 대부분이 중·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최근 문단에서 이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진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편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는, 말하자면 오랜 시간 독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주인공의 여러 모습들을 주변적인 사건들과 극적인 사건들 속에 녹여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매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독자들이 주인공을 지켜볼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중개할 수 있어야 한다. 극적인 장면들만을 연속적으로 모아놓거나, 반대로 일상의 모습만을 일률적으로 보여준다거나 하면 안된다. 주인공이 살아가는 시간과 독자가 책을 읽는 시간 사이의 이물감을 조절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은모든 작가의 장편소설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포춘쿠키」를 읽으면서 은모든 특유의 문법이 가진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포춘쿠키」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을 정리하고 새롭게 인천에 정착하게 된 주인공 은하의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맞이한 달콤한 휴일, 인천 곳곳을 둘러보려던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계획이 좌절되는 지점에서 발견하게 되는 낯선 광경들을 은하는 섬세하게 감각한다. 휴일을 만끽하는 은하의 시간을, 은모든 작가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너무 지루하지도 않게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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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가 인천역에서 나와 차이나타운 입구의 패루를 마주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인천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신포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는 일정이다. 인천 일대를 둘러보는 휴일을 계획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은하는 서울에서의 학원 강사 생활을 정리하고 인천에 집을 새로 구하게 되었다. 학원 원장의 강요로 휴일 없는 강사 생활을 이어온 끝에 결국 서울을 떠나 인천에서 작은 공부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예전과 달리 휴일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의 휴일을 잘 보내기 위해서 인천 곳곳을 둘러볼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인천으로 이사하고서의 첫 휴일, 은하는 여러 거리와 카페를 둘러보게 된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식당에 앉아서까지 종업원이 오기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장면. 거리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예상에 없던 소비를 하게 되는 장면. 포춘쿠키를 (그것도 두 개나)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장면. 길을 잃어서 원래 가려던 카페를 가지 못하는 장면. 그리고 간판의 딸기 에이드가 맛있어 보여 낯선 카페에 들어가는 장면. 이러한 휴일의 풍경은 낯설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이번 주말에는 집밖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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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긴장 구조는 지극히 일상적인 범위 내에서 그려진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긴장과 갈등을 촉발시키고 발전시켜서 그것을 종국에 폭발시키거나 해소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긴장을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변모시킬지가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포춘쿠키」에서는 어떠한 극적인 갈등도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은 오랜 시간 맞이할 수 없었던 ‘휴일’이라는 시간 속에 은하가 움직이게 되면서 극적인 구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구조로부터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이 초래되지는 않고, 다만 주인공이 휴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일상을 회복하려는 행보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의 굉장히 특이한 점은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가 어떠한 부담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은하는 큰맘 먹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평화로운 휴일에 은하를 위협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은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짬뽕을 먹을까 하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바뀌면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 길을 잃어도 처음 위치로 돌아와 걸음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갑자기 목이 마르면 카페를 찾아가 들어갈 수 있다. 낯선 동네에서 은하는 작은 위기들―메뉴 결정 장애, 길 잃기, 목마름―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위기는 타자로부터 촉발되는 위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해서 맞이하게 되는 위기이며 무엇보다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위기이다. 독자는 그저 은하가 휴일에 맞이하는 사소하고 기분 좋은 장면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온갖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은하의 행동들은 소중한 지침을 전해주는 것 같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불안과 극복을 경험해 볼 것. 그러니까 정말로 사소해도 되니까 이런 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시도해볼 것. 아마 휴일을 마련한다면 은하가 그랬던 것처럼 집밖에 나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20분 정도 떨어진 낯선 동네에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낯설지만 멀지는 않은 그런 공간 속에서 스스로 위기를 창출하고 그 속에서 즐겁게 활보해보기를 바란다. 문득 새로운 감상이나 활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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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은, 딸기 에이드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간 은하가 그곳에서 일하는 성지에게 자신이 샀던 포춘쿠키를 전해주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은모든 작가는 은하와 성지, 그리고 민주―은하의 친구다. 이번 글에서는 민주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였다. 다들 꼭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그려나갈 것이라고 작가 노트에서 밝혔다. 이 세 사람이 각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 또 어떤 일상과 휴일들을 그려나갈지 독자로서 굉장히 기대된다. 「포춘쿠키」는 웹진 문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감상하고 이 인물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같이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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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든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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