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사람'에서 '옳은 사람'이 되기까지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장통
글 입력 2021.05.1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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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사회가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제껏 당연하다 여겨왔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았고, 절대 바뀔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말을 한 문장으로 다시 말하자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여성의 목소리가 전보다 크게 반영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에 있어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렇지 않음’이 압도적으로 많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현시대의 여성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미스 아메리카나’라는 영화를 추천받은 적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여자로 살아가는 건 별반 다를 거 없다는 친구의 말은 그날을 이후로 머릿속에서 종적을 감췄지만, 며칠 전 불현듯 떠올라 나를 영화로까지 이끌게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인 그녀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미스 아메리카나’는 화려한 톱스타에 가려진 일상을 넘어 여자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 안에는 부서지고 망가지며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과 수동적인 사람에서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화하는 그녀의 ‘성장통’이 담겨있다.

 


 

좋은 사람(Good girl)의 기준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인식되는 자신의 모습이 ‘좋은 사람’으로 비치길 바란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깨트림에도 불구하고 내면으로부터 오는 희열감보다 타인의 칭찬 한마디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모습은 좋은 평판에 목말라 있는 인간군상을 여실히 나타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너희가 바라던 모습을 갖춘 사람은 나야’라는 알량한 생각 따위에 지배받도록 교육된 시스템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어렸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 하에 자라왔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사람’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되고,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무수한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를 충족시키고자 타인이 설계한 ‘좋은 사람’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자신의 몸을 끼우는 삶을 살아왔다.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얇아져도 공연이 끝나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문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 당연함이자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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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굳건한 신념은 2009년 VMA 시상식에서 있었던 카니예 웨스트의 돌발행동을 시작으로 조금씩 흔들렸다. 당시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을 받아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 카니예 웨스트는 갑작스럽게 무대에 난입하고는 마이크를 뺏어 들어,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았어야 했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무례한 행동을 벌였다. 관중들의 야유와 비난은 카니예에게 향했지만, 그때의 테일러는 모든 비난이 오로지 자신에게 향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여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 살아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고, 좋은 앨범을 만들었고, 상이라는 공인된 칭찬을 받았다.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따라 걸어온 자신에게 이 상황은 발생하면 안 되는 거였다. 설령 그 비난과 야유가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더라도 스스로 이러한 감정을 느껴선 안 됐었다. 이 모든 건 그녀의 신념체계 안에서 절대 성립되지 않는 공식이었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죠.”

 

- 미스 아메리카나 중

 

 

 

부서지고 망가져도


 

‘빠’만 있는 사람은 그냥 스타고 ‘빠’와 ‘까’가 있어야 진정한 슈퍼스타다, 가수 나훈아의 유명한 어록이다. 반짝이고 높이 있는 별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가지고 싶어 하는 동시에 망가트리고 싶어 한다. 작은 흠집이 하나만 보여도 별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끔 빛을 없애려 하고 어떻게든 끌어 내리려 애쓴다. 테일러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슈퍼스타여서일까 그녀는 늘 크고 작은 구설에 휘말렸다. 그중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사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카니예와의 악연과 라디오 DJ 성추행 사건이다.

 

VMA 사건 이후 카니예는 2016년 테일러를 욕하는 가사가 담긴 ‘Famous’를 발매했다. 이에 테일러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라며 의견을 밝혔지만 카니예 측에서 조작된 녹음본(테일러가 해당 가사를 허락하는 내용이 담긴)을 증거로 내세웠고, 그녀는 한순간에 모든 사람의 먹잇감이 되었다. 남성 편력이 심한 사람, 희생양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 가식적인 뱀처럼 보이는 사람, 그리고 살이 조금 쪘다는 이유로 임신설이 불거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언론에서조차 그녀를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며 모든 언행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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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사건으로는 라디오 DJ 사건이 있는데, 이는 몇 년 전 라디오 DJ에게 성추행당하고 2017년 소송에 이르렀다. DJ는 테일러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행동을 했고 이는 명백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성추행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승소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치욕적이었기 때문에 성취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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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오고 간 질문들이다. 테일러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도 모든 여성에게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도 피해자에게 공격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도 전부 화가 났다고 했다. 7명의 목격자와 사진이 있었기에 승소를 할 수 있었지만 만약 아무도 못 본 상태에서 강간을 당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어떤 여성도 이에 대한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카니예와의 악연이 생긴 뒤 테일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 일로 생긴 상처와 자신을 뒤덮은 조롱과 비난, 힘들었던 모든 일을 [Reputation]에 담아 발매함으로써 다시 한번 정상에 올라 보란 듯이 증명해 보였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그녀는 조금 달라졌다. 자신을 옭아매며 굳건히 버티고 있던 신념을 스스로 깨부수고 자신의 목소리를 한 음 한 음 내기 시작했다.

 

가장 파격적인 행보로는 정치적 목소리를 낸 것이다. 유명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주제가 유명인의 입에서 나와 공개적으로 전파를 타는 순간 그 영향력과 파장은 극에 달한다. 특히 컨트리 음악계는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문율이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행보는 상상이상으로 파격적이었고 충격을 선사했다.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테일러는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폭력방지법의 재승인과 동성애자 결혼 법 두 가지를 모두 반대한 의원이 테네시주에 출마한다는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에 충분한 이유 거리였다. 테일러에게 있어 정치적 발언은 단순히 커리어에 지장을 주는 것을 넘어 안전에 위협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고 SNS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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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용기 어린 목소리가 전체 투표 결과를 바꾸어 놓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의 변화는 일으켰다. SNS를 통해 입장 표명을 한 이후 약 5만 명에 달하는 새로운 투표 등록자가 생겼고, 스스로 신념을 하나씩 깨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옳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나아갔다.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했죠. 갖다 버려야 하는 거예요. 또 가지지 않으려고 저항하고요. 걸레 같은 여자는 없고 계집년이란 말은 없어요.”

 

- 미스 아메리카나 중

 

 

 

여자 연예인의 삶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고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성차별은 존재한다. 그것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든, 남성을 차별하는 것이든. 그중 여성으로써의 차별이 예부터 지금까지, 작은 화면 속에서 매일같이 보이는 것을 한 가지 말하자면 ‘여자 연예인의 삶’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연예인들의 작은 행실 하나하나가 예기치 못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자신의 행실에 더욱이 조심스럽다. 이미지가 전부인 직업인만큼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보일 때엔 딱 죽기 직전만큼의 욕설과 비난, 갖은 조롱이 따라오곤 한다. 그리고 그 비난에는 공평성이 보일 듯 말 듯 매우 흐릿하게 존재한다.

 

가십이 끊이지 않는 연예계를 보며 늘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여자 연예인에게만 야박한가. 스캔들이 터지면 비난과 이미지 손실, 성희롱을 얻는 건 주로 여자 쪽이다. 남녀 연예인이 대화하면 여우 같다는 이유로 악플이 달리는 건 여자 쪽이다.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 것뿐인데 누군가를 따라 한다며 조롱받고, 1초에 지나지 않는 표정이 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너무도 작고 사소한 것들로 하루하루 욕설과 조롱 속에 살아가는 여자 연예인들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단단히 버텨줘서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인터뷰를 통해 여자 연예인으로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근데 여자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긴 해요. 여자 가수에게는 잣대가 엄격하죠. 열애설, 스캔들이 터져도 여자 연예인이 더 타격이 크니까요. 댓글만 봐도 남자 연예인과는 너무 달라요. 인신공격에, 성희롱에··· (중략) 가끔은 억울한 거죠. 지금 이 인터뷰를 싫어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 선미

 

“여성 아이돌로 살아가는 건 돛단배와 같다. 악플 등 이런저런 평가에 휩쓸리지만 결국 살아남아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거친 풍파를 견뎌내는 건 자기의 몫이다.” - 수지

 

 

나는 할리우드라 불리는 해외 연예계에 대해선 굉장히 무지한 편이다. 그들의 작품이나 음악만 감상하지, 살벌하다고 소문난 연애 사정과 원수지간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마찬가지로 해외 연예계가 어떠한 시스템과 제도로 굴러가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한 가지 확실히 알겠는 건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여자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절대 순탄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여성들은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전진했고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것들에 변화를 주었다. ‘Only the young can run(오직 젊은이들만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다)’, 테일러의 외침처럼 앞으로의 젊은이들만이 현세대의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아 구축할 수 있다. ‘옳은 일’을 하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다.

 

*

 

수많은 여자 연예인의 인터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여자, 우리가 그리 약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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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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