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눈물에 대한 고찰 [문화 전반]

나 울본데, 울면 안 돼?
글 입력 2021.05.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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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울보였다. 혼나서 울고, 주사 맞기 무서워서 울고, 오빠와 싸우다 울고. 무슨 울 일이 그리도 많은지 툭하면 울었다. 참아보려 애써도 속으로 내가 당한 일을 짚어보다 억울하다는 판단이 서면 무조건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울보인 주제에 자존심은 세서 남 앞에서 우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울면 괜히 지는 것 같았고, 내가 하는 말들이 떼쓰는 것처럼 들리는 게 싫었다. 하지만 툭하면 터지는 눈물샘은 눈치라곤 쥐뿔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인 눈물을 얼른 닦아 남이 못 보게 감추는 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주말 오후의 치과는 붐볐고, 나는 예약손님임에도 침대에 누워 한참을 대기해야 했다. 머리 위의 형광등과 옆방의 대화소리, 지잉, 하고 울리는 기계소리.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져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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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옆방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있는 힘껏 울어재끼는 것이 금방 그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소리 내어 울어본 것이 언제 적이더라.’


언제부턴가 눈물 흘리는 일이 손에 꼽게 줄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일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것일까. 평소와 같은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을 가만히 곱씹는다.




제 1장. 과거의 눈물 돌아보기



Q1. 울보시절 어떤 때 눈물이 났었나?


A. 오랜 친구가 이사 가던 날, 아끼던 물건을 엄마가 말도 없이 버린 날, 반 친구들이 다보는 곳에서 축구공에 머리를 맞은 날, 억울하게 선생님께 혼난 날. 주로 부끄럽거나 억울한 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생각을 멈추면 괜찮은데 머릿속으로 있던 일을 되짚어보다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솟아났던 것 같다.



Q2. 왜 울었나?


A. 울기 싫은데도 눈물이 날 때가 있고, 울고 싶어서 울 때가 있었다. 울고 싶어서 울 때는 잘 없긴 했지만 뭐 그런 거다.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알아달라는 거. 오빠와 한참 싸우다 몇 대 얻어맞았을 때 부모님에게 달려가 이르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크게 울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듣고 알아서 달려오길 바라면서.



Q3. 울 때 무슨 소리를 들었나?


A. 당연히 울지 말란 소리를 들었다. 더 어릴 땐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준다는 귀여운 협박이었던 것 같은데,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는 울면 혼나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좋게 달래는 말이든, 혼내든, 웃겨주든 결국엔 울지 말라는 얘기였다. 아무도 울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Q4. 울 때 무슨 감정을 느꼈나?


A. 창피했다. 울음을 터지게 한 감정은 다양하겠지만 울면서 느낀 건 창피함이 거의 전부인 것 같다.



Q5. 어떻게 울었나?


A. 위에서도 계속 말했듯, 나는 남들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하고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눈물을 참으려 했다. 아이유의 노래처럼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떠 눈물이 흐르지 않게 했다. 짐짓 눈을 비비는 척 몰래 눈물을 닦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이런 행동이 더 웃겼을 것 같다)


그보다 더 웃긴 때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이 날 때다. 가족 앞에서 우는 건 그렇게 창피하진 않은데, 내가 하는 말들이 떼쓰는 것처럼 들리는 게 싫었다. 그렇게 참고 참다 결국엔 억울함을 털어놓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이다. 최악이다. 눈물에 뭉개져 들리지도 않는 말들을 발악하듯 숨 쉴 틈 없이 쏘아붙이는 나와 황당한 표정의 가족들. 나는 한번 눈물을 터뜨리면 잘 그치지 못했는데, 겨우 눈물을 멈춘 후에도 연신 딸꾹질을 해댔다. 봇물 터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Q6. 눈물은 무슨 기능을 했나?


A. 사실 이건 내가 울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한데, 눈물은 사람을 그 상황에서 가장 불쌍한 이로 만들어준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사과하거나 그를 달래줘야 한다. 설사 잘못이 있더라도 우는 이에게 책망하는 말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한 때 미디어에서는 ‘눈물은 여자의 무기’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눈물이 여자의 무기라니, 말도 안 되는 프레이밍이다. 이 놈의 세상은 이제 눈물도 마음대로 흘릴 수 없게 한다)




제 2장. 성인이 된 울보



Q1. 최근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


A. 최근 다음 웹툰 ‘신의 태궁’을 보며 오열했다.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 억울한데 담담해보여서 내가 다 눈물이 나더라.(동양풍의 스토리가 탄탄한 눈물 나는 로맨스 서사를 좋아한다면 읽어보길) 한바탕 눈물을 흘리다 거실에 나왔더니 엄마가 발간 눈가를 보고는 걱정하는 바람에 화제를 돌리느라 진땀을 뺐다.



Q2. 지금은 울보가 아닌가? 변했나?


A. 사실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다. 예전만큼 잘 울지는 않고, 울만한 일도 잘 없지만 요즘도 여전히 별거 아닌 일로 눈물이 난다. 특히 슬픈 만화나 휴먼 다큐멘터리를 볼 때 가장 많이 운다.


나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를 울리는 상황과 우는 나를 둘러싼 반응이다. 선생님께 혼나거나 오빠와 싸운 일로 울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혼자 있을 때 아프면 눈물이 나더란 말이다. 그렇게 눈물은 여전히 많은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대하는 반응들이 달라졌다.


우는 13살과 우는 23살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느끼는 내 입장에선 달라진 반응들이 야속하다.



Q3. 어른이 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단순히 성인 말고,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하는 대상)


A. 사실 상상이 잘 안 된다. 드라마에서 가끔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본다. 그런 이들은 대개 엄청난 이유로 운다.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인생에서 연달아 실패를 경험하고, 반복되는 좌절에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혹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가족과 극적으로 재회했을 때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 것을 보다보면 어른은 저런 때가 아니면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른도 넘어지거나 배탈이 났을 때, 상사에게 혼났을 때마다 눈물이 차오를 텐데, 그럴 때마다 우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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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울면 안 돼? 왜?



Q1. 눈물은 나쁜가?


A. 아니다. 난 오히려 울만한 일이 줄어든 지금, 일부러 새벽에 혼자 휴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서 뭔가 개운하고, 안정되는 느낌이 좋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눈물은 사실 나쁘지 않다. 특히 눈물을 제때 흘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상 시기를 놓친 눈물은 줄곧 마음에 남아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더라. 때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은 ‘어른답지 못 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몰라도 나 자신에겐 도움이 된다.



Q2. 그런데 왜 울지 말라고 할까?


A. 물론 울지 말아야 할 상황은 분명히 있다. 나의 감정 표현으로 남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 되고, 남에게 하는 감정표현에 눈물이 섞이는 것도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늘 ‘울지 마’ 한다. 우는 것은 창피한 것이고, 어른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

 

우리는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되기 위해 눈물 참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울고 싶어진다.

 

큰소리로 울고 싶고, 볼에 흐른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힘들다 소리 내어 말하고 싶고, 코가 발개질 때까지 문질러 닦다 코를 시원스레 팽하고 풀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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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눈물을 돌아보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많은 눈물을 참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아빠도 이런 식으로 눈물을 참아가며 어른이 되었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은 혼자서 눈물을 흘려보내고, 슬픈 일에 자연스레 눈물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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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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