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엄있는 삶에 관하여 - 노매드랜드 [영화]

글 입력 2021.05.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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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마치 표준화된 삶이 있고 그것을 벗어난 삶은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회가 제시해주는 삶의 형태를 따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방식도 존재할 수 있다. 여기 유목민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사회에서 제시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가 감히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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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삶을 선택한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들의 삶은 불편한 것 투성이다.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하지도 못하고, 혹독한 겨울을 좁은 벤에서 견뎌야 하며, 생활유지를 위해 겨울에는 물류창고에서 일하고, 여름에는 국립공원에서 일을 하는 육체노동으로 한정이 되어 있다.

 

하지만 펀은 묵묵히 그 일들을 한다. 계절이 바뀌면 또 어딘가로 떠나 한시적인 일을 하고, 아는 사람에게 새로운 일을 소개받기도 한다. 영화에서 그녀가 한 일들만 4가지 정도가 된다. 그 노동들에서 일반인들이 직장에서 겪는 사회생활의 고단함과 다르지 않은 육체노동의 고단함이 느껴질 뿐이다.

 

일을 마치고 그녀가 즐기는 자연과 어우러진 여가생활은 오히려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훌륭한 더없이 만족스러운 삶으로 보인다. 이처럼 영화는 그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만 결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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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또 다른 노매드인인 펀의 친구 스왱키는 암 선고를 받고 남은 인생이 7,8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알래스카에서 마지막을 보낼 것이라고 하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알래스카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병원에서 비참히 여생을 보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짓기를 택한다.


그들 개인의 그리고 펀의 속사정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찾을 수는 있지만, 노매드 인들은 사회를 탓하지도, 자기 연민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환경대로 삶을 적응한다. 밴을 개조하고, 변기 대신 쓸 통을 준비하고, 시장을 열고, 파티를 하고 나름대로의 삶의 즐거움을 찾아낸다. 이런 그들의 삶에서 우리는 삶의 선택지가 많지 않을지라도 그 안에서의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았다. 인생이 지옥 같다면 그건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트에서 그녀는 우연히 정주생활을 할 때 알던 사람을 마트에서 마주친다. 그녀의 벤에서의 생활을 아는 지인은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행동하며 자신의 집에서 지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펀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그녀가 홈리스(homeless)냐고 묻는 예전 자신이 가르친 학생의 질문에 “아니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houseless)야.”라고 답한다.

 

여기서 홈리스는 우리가 아는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다. 그들은 어떤 것도 선택하기를 거부하고 제도권 안에서 살아갈 의지도, 그렇다고 제도권 밖으로 나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하우스리스는 자신의 의지로 정착되지 않은 거주형태를 거부하고, 유목하는 삶의 형태를 스스로 택한 이들이다. 광산도시의 몰락으로 몇 가지 없는 선택권 안에서 택한 인생이지만, 그녀는 본인의 삶을 비참히 여기지 않고 사람들의 동정을 결코 바라지도 않는다.

 

 

 

영원한 작별은 없다.


 

노마드족들 간의 연대가 인상 깊었다. 다 제각각의 이유로 노매드 인의 삶은 자처한 그들은 대체로 노년의 백인들이다. 연금으로 남은 생을 꾸려갈 수 없어서 유랑 생을 선택한 이도 있고, 남은 인생을 즐기기 위해 방랑하는 삶을 선택한 이도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이웃이자 친구 삼아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혼자 꾸리는 삶의 외로움을 달랜다. 짧은 관계를 맺고 헤어지며 그들은 “잘 가” 가 아닌 “또 보자”는 작별인사를 한다. “See you down the road.” 이 문장하나에 담겨져 있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도로위의 생활을 견디게 해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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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작


 

영화의 초반에 그녀는 자신의 유랑생활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밴을 구입한다. 펀은 지역경제의 붕괴로 폐허가 된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그녀의 남편조차 암으로 죽어버린 그녀에게 이 마을에 남을 이유는 없다. 사실 유랑생활의 시작은 반은 어쩔 수 없었던 선택으로 보인다. 그녀는 영화 내내 남편을 그리워하며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하지만 몇 계절이 지나가는 유랑생활을 하고 그녀 안에서 내재되어 있던 유랑민으로서의 본성은 이 생활을 아주 잘 적응해 나간다.

 

영화의 후반부 펀은 지붕 아래의 생활을 두 번 제안 (그녀의 언니와 공동체에서 만난 데이브) 받지만 그녀는 그들을 거절한다. 그리고 데이브와의 추억이 깃든 폐허가 된 도시로 돌아가 과거와의 완전한 작별을 감행함으로써 그녀 안에 내재해 있던 본성과도 같은 유랑민의 삶을 진정으로 시작한다. 결연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과거를 정리하고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낼 그녀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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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에서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 두어야 하네…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데미안>
 


남편과 사회안에서의 관계, 안정된 집으로 인해 정주생활을 했던 그녀는, 그 모든 것이 없어진 지금 노마드의 삶을 시작했다. 우리를 안전하게 감싸는 사회적관계와 체계들을 들어내도 이 삶의 방식을 내가 선택할 것인가? 정주하는 삶은 과연 인간의 본연의 삶의 모습일까. 영화를 보고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질문이다.

 

 

[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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