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희화와 조롱으로 덧칠한 대중문화 속 차별적 시선
글 입력 2021.04.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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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빈센조>의 인기가 뜨겁다. 그래서 솔직히 ‘저는 빈센조라는 드라마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두렵다. 그렇지만 용기 내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고, 대중이 간편하게 소비하는 콘텐츠들에 숨겨진 차별적 시선을 분석할 것이다. 이건 불편한 이야기다. 굳이 왜 이러한 담론을 제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뀌어왔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 글 또한 미약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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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빈센조>

 


<빈센조>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배우 김성철이 맡은 은행장 황민성은 성소수자다. 그렇지만 이 캐릭터의 설정은 호모포비아적 고정관념으로 점철되어있다. 극 중에서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부터, 그는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신체접촉을 시도한다. 목소리 톤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누가 봐도 과한 행동을 한다. 물론 그가 의존적인 마마보이이며, 데이트폭력 가해자라는 설정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왜 2021년의 화제작인 <빈센조>는 기존 미디어에서 답습해온 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옮겨 ‘조롱하기 편한 캐릭터’를 구축해야만 했을까.


이해심이 없는 코미디는 희화와 조롱으로 변한다.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에 기인하는 것이다. 누군가 특정 집단을 잘 모를 때면, 이미 알고 있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에게 그 집단의 대표성을 부여한다. 이를 설명할 때 많이 나오는 예시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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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백인 남성 중심의 할리우드 사회는 동양인에 관해 무지했다. 그래서 가장 익숙한 이미지를 지닌, 뻐드렁니와 작은 눈으로 시종일관 우스운 모습만 보이는 일본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적 시선은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어 아직도 아시안은 어눌한 영어 발음과 찢어진 눈을 가진 이들이라는 사고에 갇혀 살게 만든다. 오리엔탈리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부정적 환상이 지금까지도 아시안 혐오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서구권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고착된 상태로 재생산되어왔다. 특히 성녀(구출해야 할 대상) 혹은 창녀(정복해야 할 대상)를 구분 지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동안 왜곡된 환상으로 여성을 비추어 해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을 특정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그려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기적인 창작물은 대중이 가진 고정관념을 더욱 굳세게 만들어왔다.


혹자는 미디어 속 캐릭터의 설정에 지나친 검열과 비판을 가한다면, 자유로운 창작이 힘들어질 것이라며 걱정한다. 물론 문화예술이 성장하려면 창작자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특정 캐릭터가 어떤 사회의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지 자세히 분석한 후, 상황에 따라 다른 비판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창작자의 자유 혹은 대중의 즐거움이라는 미명 하에 상처받고 고통받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이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빈센조> 속 황민성은 대한민국의 게이다. 이 인물에게 특성을 부여하려면 우리나라의 미디어에서 성소수자 집단이 어떻게 해석되어왔는지 알아야 한다. 2013년에 방영한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는 배우 송원근이 맡은 나타샤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인물은 성소수자이지만, 드라마 후반부에서 갑자기 이제는 여자가 좋아졌다면서 자신이 ‘남자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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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로라 공주>

 


당황을 넘어 측은함이 느껴질 정도다. 성소수자를 일종의 ‘유니콘’처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드라마 속에서 게이인지, 트랜스젠더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비틀어진 여성성을 표방함으로써 개그 소재로 소비된다. 이는 시청자들이 갖는 ‘성소수자는 비정상적 존재’라는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장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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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4년이 지난 2017년에는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했다. 배우 김원해가 맡은 오돌뼈라는 인물로, 짙은 화장과 매니큐어가 특징이며 고음으로 잔소리를 내뱉고는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배우 박보영, 지수, 박형식이 주연을 맡았는데 박보영이 꾸는 꿈에서 박형식이 지수의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박보영은 꿈에서 깬 후 ‘더럽다’라는 말을 한다. 잘못된 방식으로 대상을 희화화하는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박보영은 배우로서 이 장면을 찍은 이후에 반성했다고 밝혔다.


또다시 4년이 흐른 지금은 2021년이다. 새로운 드라마 <빈센조>에서 어김없이 비슷한 게이 캐릭터가 등장하고, 대중들은 이를 통해 퀴어 집단을 이해한다. 항상 ‘남성 동성애자’로만 소수 집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려는 것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작가와 감독은 그 과정에서 배려심이나 조심스러움 없이 캐릭터를 그려냈다.


극 중 빈센조는 황민성을 유혹하기 위해 미인계를 사용하기로 하지만, 처음에는 강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자신은 정상적인 이성애자이므로 동성애자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일은 할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다. 계획을 실행할 때 사적인 감정 따위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 마피아가,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인물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를 마주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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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 샾잉 #ing

 

 

방송사는 빈센조와 황민성의 ‘브로맨스’를 지속해서 강조하여 홍보한다. 드라마의 화제성을 올리는 데 적절한 재료로서 성소수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동시에 황민성이라는 인물에 심리적 및 사회적 결함을 추가하여 결국에는 극 중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끔 한다. 평범하지 않고 정상적이지도 않은 모습으로 성소수자를 묘사하여 특정 시청자들의 힐난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면피성 설정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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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드라마뿐인가.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연극 <옥탑방 고양이>에도 주요 캐릭터로 성소수자가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게이인데, 그 또한 철저히 관습화된 이미지로 소비된다. 남자 주인공에게 추파를 던지고 여자 주인공에게는 모종의 경쟁의식을 가지며, 그렇게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전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여자 같은’ 남자는 철저히 이성애 중심 연애를 보조하는 조연에 머무른다. 보편적인 삶에 속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돌며 서커스에 나오는 동물처럼 이상하고도 신기한 존재로만 남을 뿐이다.


그나마 한국 공연계는 퀴어 친화적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렌트>, <쓰릴미>, <헤드윅>과 같이 오래된 작품부터, <제이미>, <킹키부츠>, <베어 더 뮤지컬>, <펀 홈>, <프라이드> 등 비교적 최근에 상연한 작품까지, 국내에 알려진 공연에는 다수의 성소수자 캐릭터가 나온다.


다만 성공한 작품 대부분은 해외에서 판권을 사들인 라이센스 공연이다. 그 속에서는 퀴어가 아직도 먼 나라의 판타지로만 그려질 뿐이다. 유명한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동시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한국인 성소수자 캐릭터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작년에 상연된 연극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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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는 2020년 동아연극제에서 작품상을 받고,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오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의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운 연극이지만 그들의 존재를 왜곡하지 않는다. 캐릭터가 트랜스젠더로서 살아남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지난한 순간 속에서 발화되는 농담을 공감으로 잇는다. 이때 나오는 자조적인 웃음은 관객과 배우 모두가 성소수자의 본질적인 삶을 보다 명확하게 마주할 수 있게끔 한다.


이 극을 집필한 이은용 작가는 실제 트렌스젠더다. 그는 2021년 2월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가 그의 유작이 된 것이다. ‘생존하는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작품을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던 그는 어째서 삶의 끈을 놓아야만 했을까. 타인이 살아온 인생의 굴곡을 내 입맛대로 예측하는 것은 오만한 태도이기에 죽음의 원인을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죽음을 아무 반동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이 세상이 조금은 달랐다면, 이라는 가정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죽은 이의 숨결을 붙잡고 싶어진다.


그로부터 2주 뒤에는 녹색당 정치인이었던 김기홍 활동가가, 3월에는 군인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잘 알려진 세 명의 트랜스젠더가 길지 않은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단단한 자세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이, 남모를 고통을 짊어지고도 타인에게 손을 내밀며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외쳤던 이들이 산산이 스러졌다. 심지가 끊어지도록 타오른 촛불의 온기는 아직 남아있는데, 그 불씨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김기홍 활동가의 유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그렇다. 미움은 많고 사랑은 적다. 이 처연한 현실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 체험한 아픔을 누군가 똑같이 겪는 안타까운 반복성 비극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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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이슈에서 첫째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존재를 지우지 않는 것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퀴어 축제와 관련해 ‘보지 않을 권리’를 말한 것이 떠오른다. 퀴어 축제는 존재의 선언이다. 지금껏 지워졌던 이들이 광장에 나와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며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자신을 드러낸 이들을 다시 덮어버린다면, ‘아니, 그곳에는 사람이 없어. 설령 있다 해도 나는 보지 않을 거야’라며 거부한다면 이는 존재의 소멸로 이어진다. 보편적 인권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존재의 인정이 필요하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존재를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여태껏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속에서 성소수자는 배제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남들처럼 먹고 자고 함께 가정을 이루는 정상적인 세계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언제나 주위에 있지만, 그 인물이 TV와 스크린, 무대에 들어서면 마치 어디에도 없는 존재처럼 그려지기 일쑤다. 성소수자 캐릭터를 왜곡된 시선으로 묘사하여 마치 해당 작품이 퀴어 이슈에 긍정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일그러진 인권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나마 최근 들어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 등이 호평을 받으며 LGBTQ 커뮤니티를 양지로 이끌고 있지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우리가 함께 이끌어야 할 일은 아직 많다. 대중문화는 시대를 반영하기에, 누구도 소외당하거나 상처받지 않는 시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문화와 예술 작품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며 확대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어디에도 없던 퀴어 캐릭터가 어디에나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 고(故) 이은용 작가 · 김기홍 활동가 ·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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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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