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는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이 시대의 청춘이 살아가는 법
글 입력 2021.04.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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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코로나 시대, 요즘 '푸르른 청춘'은 옛말이다. 모든 세대가 고통을 분담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직을 위해 애써도 돌아오는 건 '우수한 역량에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라는 완곡하지만 분명한 거절. 일자리 마련을 넘어 이제 내 집 마련도 꿈 같은 시기다. 게다가 청년들의 사회적 고립과 청년 고독사 문제까지 대두되는 시점이다.
 
이런 냉담한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은 실패와 포기에 익숙해진다. 당신을 받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에 '아무렴, 내가 부족해서겠지'라며 자신을 다독이고 미래를 기약한다. 원망과 절망에 시간을 내줄 틈도 없으니 말이다. 봄날의 새싹이 돋고 자라나기도 전에 바짝 말라 휘어질 처지다.

그런데,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사에 아픈 흔적으로 남은 IMF 외환 위기다. 국내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수많은 사람이 실직하고 거리로 내몰리며 가정의 해체를 겪게 된 사건. 그 영향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 청년이 되었고, 세상은 다시금 청년들을 시험하는 듯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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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 세상을 가로질러>는 위기에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청년 '권무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IMF 외환 위기로 가난과 가정의 해체를 겪는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병에 앓게 되며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했던 바둑을 포기하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집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그는 수원의 본가를 '물리적인 집'이라고 묘사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살이. 지하 연습실을 거쳐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는 무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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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무순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도전에 주목한다. 그는 바둑, 음악, 복싱 등 다양한 분야에 모험을 시도해 왔다. 낮에는 서브웨이 알바생으로, 저녁엔 밴드 멤버로, 때때로 복싱에 도전하기도 하면서.
 
어느 하나 녹록지 않지만, 무순은 좀처럼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어려운 현실 앞에서 자신을 포함한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그저 매 순간 마주한 현실에 집중하며 묵묵히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실패와 회복을 반복하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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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또 다른 도전을 결심한다. 친구 '박태원'과 함께 부산에서 서울까지 470km에 달하는 달리기 여행을 떠난 것이다. 우리나라를 가로지르는 11일간의 국토 대장정.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저 뛰고 싶었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자신과 함께할 튼튼한 러닝화 하나, 든든한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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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낯선 길을 헤쳐나가며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마주하고 삶의 원동력을 얻는다. 태원은 노을로 물든 풍경 앞에서 “살아있어서 좋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밖으로 꺼내기도 한다.
 
위기와 갑작스러운 갈등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비가 쏟아지고, 막다른 길목에 닿아도 주저하지 않는다. 조금 비를 맞더라도 우비를 입고, 막힌 길은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달리기를 통해 어떤 암울한 상황도 타개해 나가는 지혜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무순은 뛰면서 어릴 때 주짓수 관장님이 종종 건넸던 말을 떠올린다. “이겨내!”

누군가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안다. 그 세 글자가 가진 힘과 울림은 평소에 듣던 그것이 아니었다.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고 우울의 문턱을 넘나드는 나에게 그 흔한 응원은 어떤 대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주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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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무순의 일상은 달리기에서 만난 자연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옥탑방과 서브웨이가 철거하게 되면서 그는 치열했던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순'은 좌절 대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되짚어 보면, 무순은 한결같이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생계를 위해 알바를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했고 그것을 계기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카페에서 흘러나온 음악을 흥얼거리다, 어느새 무대에 오르는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 열정적인 승부욕으로 시작한 복싱에서 KO 참패를 당해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무순의 생은 그야말로 한두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청춘이다.

영화 말미에는, 무순이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야기한다. '화목한 가정 꾸리기'. 나는 이 꿈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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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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