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니까 -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IMF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소년은 자랐고, 다시 꿈을 꾼다
글 입력 2021.04.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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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2일 IMF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많은 기업의 파산과 부도, 다량의 실직이 이어졌다.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에서 텍스트로만 접했던 IMF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외환위기는 지나갔고 경제가 정상화되었고 IMF의 고통은 잊혔다. 그러나 여기 지금도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며 삶과 분투하는 개인이 있다.

 

 

 

 

 

IMF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세대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는 '권무순'과 '박태원'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풍족한 어린 시절을 지냈으나 IMF로 빈곤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겨우 초등학생일 때 무순과 태원은 가정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들은 그 고통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지상에 있던 30평이 넘던 집이 점점 작아져 지하로 내려갔다. 평화롭던 집엔 빨간 딱지가 붙었고 엄마는 노이로제를 앓게 되고 부모님은 헤어졌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무순은 꿈꾸던 바둑 프로기사를 포기하게 된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무순이 포기를 쉽게 여기게 된 것이. 무순은 바둑을 포기하던 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깔끔하게 털어낸다. 10대 초반 소년이 포기를 쉽게 여기는 모습은 평범한 또래의 모습이 아니었다.

 

젊음의 상징은 도전이지만 그는 맘껏 도전할 기회를 잃었다. 청춘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불안과 고통의 유년시절을 보내온 무순에게 마음 깊은 곳 트라우마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가는 빚을 지고 있다


 

 

 

어른이 겪는 IMF와 아이가 겪는 IMF는 다르다. 어른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IMF에 의해 사회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그 시스템 안에서 무순이는 가정과 사회에게 지원이나 돌봄을 받지 못했다.

 

IMF로 인해 붕괴된 가정에겐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책임은 가정에게 전가되었고 급기야 아이들까지 책임을 떠맡았다. 결국 최약자인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상처가 치유되든 아니든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국가는 세상의 무순이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어느 날 무순의 부모가 중학생 때부터 무순을 야단치지 않은 이유를 말해준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느끼는 미안함이며, 너희가 알아서 잘 할 거란 걸 믿기 때문이다.'

 

무순은 대답한다. “내가 잘 알아서 할게요.”

 

그 말에서 주체성, 주인의식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만이 담겨있는 말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린 아이의 분노와 불신, 허무함, 포기의 목소리도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돌봐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관계의 단절로도 읽을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되는 


 

어두운 유년기를 짊어지고 무순은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의 길을 걸어보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차갑다. 무순을 규정짓는 시선 때문이다. 사회의 시선으로 본 무순은 27살에 평범한 4년제 대학을 나왔고 직장이 없고 노이로제에 걸린 어머니가 계시고 이혼한 가족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안다. 무순이 그렇게 힘들게 살던 이유는 자신의 탓이 아니었다. 책임을 오롯이 혼자 짊어졌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운데, 책임을 떠밀었던 사회는 기준을 제시하며 그에게 짐을 더 얹는다.

 

무순은 사람을 범주로 묶어서 규정짓는 사회의 기준을 벗어던지고 싶다. 기득권이 만들었을 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지위나 권력을 획득하지 못한 패자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그가 만들어왔던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이런 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저 '권무순'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자신은 사회적인 패자가 아님을 역설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 진지하게 뭐든 열심히 하며 그 나름대로 행복을 찾고 살고 있다. ‘나는 내 개인 자체로 존재하는 존엄한 사람이야.’

 

 

 

세상을 가로질러 달리다


 

 

 

기회를 빼앗기고 지하로 밀려나는 상황에서도 무순은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샌드위치 집에서 알바를 하고 밤엔 '바나나 우주선'이란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무순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부산부터 서울까지 470킬로미터에 달하는 러닝을 하게 된다. 오로지 자신의 육체로만 나가는 정직한 시간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나고 태원과 다투기도 하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달리기의 막바지 무순은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한다. 그것은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경치였다.

 

 

 

 

결승선에 도착 직전 서울의 야경을 멀리서 바라본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지금 딛고 서 있는 곳에선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봐야 내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진정한 자신의 위치가 보인다.


달리기를 완주했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 목표를 이루고 성공을 했다는 뜻이다. 처음으로 ‘나 알아서 할게’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기회를 잡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달리기를 통해, 성공의 경험을 통해 무순은 그 힘을 얻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려왔다는 건 대한민국을 가로질러 온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곳곳을 누비며 뛰어다녔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세상을 봄으로 인해 미래를 설계할 힘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니까


 

 

 

달리기를 완주하고 무순과 태원은 기분 좋은 걸음으로 서울 길거리를 걸으며 아르바이트하던 서브웨이에 도착한다. 약 1년 뒤 무순은 다시 같은 거리를 걷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서브웨이와 옥탑방이 철거되었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고 생기 넘치게 일을 하던 공간과 철거되어 텅 비어있고 어둡고 칙칙한 공간이 교차된다.

 

 

 

 

다시금 무순은 사회의 어둠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여전히 달리고 있다. 희망을 찾아가려고 거센 숨을 내쉬며 어두운 숲속을 달린다. 그는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아는 사람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희망이 있는 젊은이다. 세상은 자꾸 그의 의지를 꺾으려 하지만 무순은 꺾이지 않는다.

 

 

 

 

달리기를 하고 1년이 지난 시점, 무순은 꿈을 안고 찾았던 서울을 떠난다. 옥탑방과 서브웨이가 철거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옥탑방의 벽을 허물고 다시 이어 붙이는 역재생을 연출한다.

 

세상은 개인을 파편화하려 하고 해체시키려 한다. 사람의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본다. 대학은 어디를 나왔는가? 좋은 직장에 다니는가? 외모는 준수한가? 무수한 기준 앞에서 개인은 범주화되고 파편화된다.

 

하지만 조각났던 벽이 다시 붙듯 파편화된 개인은 스스로를 붙여나간다. 자신의 삶을 살며 나를 찾는 것이 나를 이어붙이는 방법인 것이다. 파편화되었던 무순이 그의 삶을 살아감에 따라 이어붙여질 것임을 기대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엔 IMF의 직격탄을 맞은 무순이들이 많다. 그중엔 주저앉은 사람도, 무순이처럼 뛰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번 그들에게 빚을 진 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그 희망이 이룰 수 있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사려 깊은 관심으로 무순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건네야 한다.

 

세계를 덮친 팬데믹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많은 가정들이 붕괴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무순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공동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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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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