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모의 꿈 [사람]

글 입력 2021.04.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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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나는 네모를 동경했다.

 

그중에서도 정사각형은 완벽함을 시각화한 것이라 확신했다. 쭉 뻗은 네 개의 선들이 만나 또 저와 같은 모양의 직각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정말 안정을 위해 탄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했다. 네모가 보여주는 정제와 규칙성은 적어도 세상의 이치 정도는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왜, 노래도 있지 않나.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네모난 것들뿐인데! 세상을 이루는 것들이 다 네모처럼 생긴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네모 예찬론자라고 확신했다.

 

지구는 둥근데 왜 세상의 것들은 네모난가에 대해 의아해 하지만 가사를 보라. ’네모’라는 말만 37번이 나온다. 이것은 동그라미를 방패로 세상이 네모의 이치를 따른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어? 정말 세상이 다 네모나네 하고 느끼게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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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네모를 동경하게 된 까닭에는 네모가 어디에 내놔도, 어떻게 생겨먹어도 늘 평정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가장 유명하고 인기 많은 도형 삼 인방을 살펴보자.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귀엽다. 통통 튀고 발랄하다. 그러나 그만큼 불안정하다. 귀여운 두 볼을 잡고 쭉 늘려버리면 그 후부터는 원이 아닌 타원이 된다.

 

세모는 어떠한가. 세모는 셋 중에서도 가장 튄다. 개성도 강하고 가장 예술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편차가 심하다. 제가 믿는 구석, 제가 자신 있는 부분으로만 뻗어서는 개중에는 제대로 균형 잡기도 힘든 애들도 많다. 나머지 빈 두 쪽은 힘이 없다는 말이다.

 

네모. 가장 균형 잡힌 도형. 어느 쪽으로 세워도 세워진다. 두 발과 몸을 바닥에 딱 붙이고 서서는, 위로 뻗어 가장 완벽한 자세를 잡고 있으니 어떤 때라도 쉽게 흔들릴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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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모의 힘은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발휘된다. 네모는 여유로운 성정 덕에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네모와 어울리면 불안할 일이 없다. 원도, 세모도, 각이 몇 개든, 곡선이 있든 없든 어떤 도형이 와도 제 위로 올리기만 하면 균형을 잃지 않는다. 그의 반듯한 직선들은 딱 버티고 서서 기댈 구석을 만들어주었다. 네모는 그런 배려를 하면서도 자신을 놓지 않았다. 언제나 네모였고, 언제나 반듯했다. 저를 숙이거나 깎아내지 않았다. 계속 네모인 채로, 네모는 네모로서 빛났다.

 

네모는 저와 같은 네모들과 어울릴 때 가장 아름다웠는데,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다른 누군가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어 보였다. 그것은 네모들만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건조하지만 안정적인 분위기는 다른 도형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네모들의 합체는 모두가 사랑했다. 지면에 그저 직각으로 선만 그어내기만 해도 그것이 모두 네모들이 펼친 우정의 향연으로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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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를 동경하는 나는 그럼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고르기 위해 수십 시간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뱉은 나는 그냥 도형이겠지. 네모도, 세모도, 동그라미도, 네모가 되지 못한 사다리꼴이나 평행사변형도 다 해당되는 그저 수많은 도형 중 하나. 이름 없이 떠도는 낯선 도형일뿐이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본래는 수많은 도형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트리오-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동경하던 평범한 다각형 중 하나였다. 그들을 바라만 보던 나의 욕심은 커져서 그들을 닮고 싶었고, 무작정 그들을 따라 했다. 어느 날은 동그라미, 어느 날은 세모, 어느 날은 네모. 또 어느 날은 전혀 다른 무언가. 그렇게 나는 아주 애매한 도형이 되었다. 네모는 절대 아니고 동그라미처럼 곡선도 있지만 세모가 되려다 일그러진 그런 얼굴. 그렇게 망가진 나는 나를 미워했다.

 

이왕 위의 트리오를 닮을 거라면 매력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잘 엮어서 태어나기나 하지, 괜히 욕심만 부리다 과해져 민낯만도 못한 화장처럼 나는 울퉁불퉁하고 부담스러웠다.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하는 나를 누가 편하게 생각할까. 모두가 날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뒤에 가서 얘기하겠지, 이번엔 어떤 걸 따라 하려고 애쓸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네모가 되고 싶었다. 이 애매하게 파이고 튀어나온 부분들을 잘라내고, 나도 빈틈없이 꽉 들어찬 완벽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나를 이루는 신체를 무자비하게 잘라내면 결국 아주 작은 일부만 남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잘려나간 곳곳에 저장된 기억들과 재주들을 잃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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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화 수술을 앞둔 나흘 전, 네모와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여전했다. 동그란 동그라미, 세모난 세모, 네모난 네모. 네모난 네모. 나도 곧 저렇게 되겠지. 네모가 될 미래를 꿈꾸며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의 내 모습을 즐겨보자 싶었다.

 

한참을 재밌게 놀던 우리는 지쳐 하나둘씩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의 옆에 네모가 기대었다. 움푹 파인 내 옆구리로 동그라미가 와 앉았다. 밑으로는 세모가 와서 내 울퉁불퉁한 틈새를 꿰찼다. 당연히 나와 그들 사이엔 메꿔지지 않은 구멍들이 많았다. 그 사이로 밀도가 빠져나갔다.

 

네모와 나의 왼쪽 뺨은 길이가 달라서 네모는 나를 향해 숙여야 했고, 동그라미의 큰 몸은 다 들어가지 못하고 욱여 넣어졌다. 세모는 말할 것도 없었다. 벌어진 공백으로 밀도가 빠져나갔지만 그런 것치고는, 의외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듯하다. 네모가 말했다. 너의 모양이 다 다른 덕분에 우리 모두가 알맞은 곳곳에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이 네모는 부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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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의 동경에게 산 부러움이 주는 벅차오름을 느껴 본 이가 얼마나 있을까. 나의 완벽한 상대가 나의 부족함을 부러워했다. 얼마나 고결한 비극인가. 그의 부러움을 어리석게도 댕강 잘라낼 뻔했다. 왜 나는 그의 부러움을 치부라 여긴 것이었을까.

 

나는 네모가 되길 원했나, 네모라는 이름을 갖길 원했나. 네모로 보이길 원했나, 이름만 있다면 세모든 동그라미든 상관이 없었을까. 집에 돌아와 곧바로 수술을 취소했다. 부질없는 환상이 걷힌 후, 나는 비로소 내 일그러짐을 똑바로 마주했다. 동그라미가 있던 자리의 원이 커졌다. 세모의 기울기를 따라 밑동도 벌어졌다.

 

나는 '일그러진' 것이 아니었다. 만나는 이에 따라서, 맞대는 면에 따라서 내가 '일그러뜨린' 것이다.  비로소 나는 나를 알았다. 나를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어느 것과도 완벽히 맞아 들어찰 수는 없지만, 나는 누구라고 완벽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누구와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틈을 나누고 모양을 맞춰갈 수 있는

 

애매하지만 무한한 도형.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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