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유의 가지를 뻗어 나가는 법 - 존재와 사유

삶은 존재의 여행이다
글 입력 2021.04.1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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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풍경뿐만 아니라 매일 보는 인터넷 기사,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면 스쳐 지나가는 활자, 이미지들. 쉴새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소한 풍경, 사물, 단어 하나가 어떤 사유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지나갔던 길을 다시 지나가면서 유년기를 회상하기도 하고, 친구나 가족과 비슷한 사람을 보고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전혀 다른 것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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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사유>의 저자 이보균은 일상에서 마주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신의 깊은 사유를 글로 펼쳐나간다. 배려, 시선, 인식, 연결, 시간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58편의 짧은 글을 엮어냈다.

 

저자는 <독서경영> <출판저널> <포브스> 등에 일상과 리더십에 관한 글을 기고해 왔으며, 경영인으로 활동한 경험을 담아 인문경영서 《스펙트럼》을 출간하기도 했다. 경영인, 기업인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냉철한 사람일 것이고, 글에서도 그런 성향이 돋보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저자가 써 내려간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에 감탄했다.

 

 

“산에서 보는 일출은 빠르다. 능선을 타고 말 달리듯 속도감이 있다. 힘차게 산을 딛고 뜨겁게 솟으며 숲과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피더니, 갑자기 잔 가지를 활활 태우며 성큼 붉게 솟는다. 뜨거운 기운이 확 열리고 언 대지를 스친다. 화음처럼 숲은 흰 구름을 피워 올린다. 꿈이 있는 모든 것은 온기를 가지고 있지. 나무와 맞는 일출, 봄에 가까워지는 느낌은 추울수록 새롭다.”

 

<존재와 사유> p. 187.

 

 

저자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을, 한 편의 그림을 그리듯이 섬세하게 묘사한다. 시를 읽는 기분으로 천천히 한 글자씩 읽다 보면 글 속의 풍경에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를 읽는 것은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저자와 오랜 시간 대화하는 것과 같다. 대화할 때도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이 있고 상대방에게 질문을 해가며 소통하는 사람이 있듯이, 책을 읽을 때도 ‘이 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쉽고 빠르게 읽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남은 게 뭐지?’하는 의문이 드는 책도 있다. 읽는 사람의 내면에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불러일으키는 책이 있고, 아무런 울림 없이 지나가는 책도 있다. 타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흥미로운 동시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와 사유> 또한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감상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넘나들며 균형을 유지한다. 저자의 사유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풍경에서 시작해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뻗어 나가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우리나라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떠올리고, ‘암 투병 미화원을 위한 모금 운동’ 뉴스를 보고 아파트를 향한 현대인들의 욕망을 떠올린다. 결코 우리와 무관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잊어버리기도 쉬운 일들이다.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억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사유의 핵심이다.

 

 

“쉬지 않고 움직이고 명멸하는 파편화된 뉴스와 정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필요한 정보는 활용하되 휩쓸려 함몰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은 지식이 아닌 느린 시간의 가치를 찾고 지속하는 행동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다. 기실 뉴스를 훑고 정보를 서핑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지식의 연결과 사유를 통해 내적인 힘이 되어야 진정 아는 것이다.”

 

<존재와 사유> p. 236.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되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적이라고 느꼈던 구절을 인용해 본다. 원하는 정보를 간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매일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보게 되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스스로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나가는 대신, 다양한 매체가 내 몫의 사유를 대신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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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사유>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말하면 ‘사유를 하자’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유를 왜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답을 찾게 될 것이다. 사유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이 와 닿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재밌어 보여서 해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다양한 주제로 사유를 전개하고, 유려한 문장을 쓰는 저자가 부러워서 따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일 수도 있다.

 

3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통해 저자는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그로부터 사유를 뿌리내리고,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것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화려한 풍경을 그냥 바라볼 것인가, 그 틈에서 생각의 씨앗을 찾아낼 것인가?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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