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유가 '그 시절'을 기억하는 방법 [음악]

글 입력 2021.04.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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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아이유가 컴백했다. 자신의 마지막 20대를 장식하는 앨범이라는 소식은 컴백하기 전부터 엄청난 화제성을 띄었다. 특히나 이번에 발매한 ‘라일락’은 아이유의 음악적 특징 중 하나인 ‘나이 시리즈’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이유의 스물아홉은 어떤 이야기로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증폭되었다.

 

아이유는 2015년에 발매한 스물셋을 시작으로 팔레트, 에잇, 라일락까지 그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 상태를 가사에 녹여내 일명 ‘나이 노래’를 선보였다. 당장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사실을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그때의 ‘나’는 쉽사리 잊히기 마련이다.

 

노래를 통해 그때의 ‘나’와 ‘너’를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이유는 ‘나이’라는 콘셉트의 노래를 하나씩 발표했다. 그 노래들은 매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고, 아이유의 음악에 특별함을 더해줬다.

 

 

 

스물셋, 혼란과 불안


 

 

 

스물셋은 이전까지 아이유의 곡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곡이다. 조금은 도발적이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담은 자전적인 이야기로만 구성된다. 가사는 양가적인 것들의 나열로 마치 변덕쟁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떨기 스물셋 좀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사회에서 건네는 ‘어른’이라는 옷을 손에 쥔 채 안절부절못하는, 진로에 대한 확신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알지 못한 채 한가운데 서 있는, 그런 나이가 스물셋이지 않을까. 갑작스레 어른이 된 것만 같은데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한 느낌이 강한 시기.

 

곡을 발매했을 당시에는 이전 대비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건방지다.’ 혹은 ‘너무 솔직하다.’ 등의 평이 꽤 존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물셋’이라는 곡은 일종의 신년인사로 자리 잡았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전국의 스물세 살이 이 곡들 들음으로써, 신년 때마다 차트에 진입하는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실제로 해마다 스물셋이 되는 사람들이 아이유에게 너무 공감된다며 노래 가사가 자신의 상태와 같다는 말을 전한다고도 한다.

 

시간의 구애 없이 시대를 거슬러 노래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유는 노래를 통해 시대를 거스르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을 찾았고, 이 곡이 첫 발자국이다.

 

 

 

팔레트, 성장과 받아들임


 

 

 

팔레트는 아이유가 스스로 인생의 기점이 된 시기라고 언급한 해에 발매한 곡으로 그녀가 25살이 되던 때였다.

 

앞서 스물셋에서는 눈앞에 놓인 많은 갈림길 중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지 몰랐다면, 팔레트에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인지하고 덤덤히 걸어가는 느낌이다. 설령 그 길이 틀렸다 하더라도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스물셋의 키워드가 ‘혼란’이었다면 팔레트는 ‘인정’이다.

 

이 곡의 가장 큰 메시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는 가사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취향, 상태 등을 하나씩 언급하며 ‘맞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직설적인 가사를 통해 표현한다.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

하긴 그래도 여전히

코린 음악은 좋더라

Hot Pink보다

진한 보라색을 더 좋아해

또 뭐더라 단추 있는

Pajamas, Lipstick

좀 짓궂은 장난들

 

 

절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난주에 기고한 오피니언의 제목이 [나는 나를 잘 알지만, 잘 모른다.]였다. 말 그대로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혼란스럽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올해로 25살이 된 나는 지금에서야 팔레트의 가사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안다는 것,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사람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 이기에, 이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움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숙제이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곡인 팔레트, 부디 올해가 가기 전에 나도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미워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팔레트 가사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특히 ‘날 미워하는 거 알아’라는 말은 일순간 흘려보내기엔 너무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는 타인에게 미움을 사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습성이 있다. 애초에 누군가를 만날 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는 타인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함도 어느 정도 포함되지 않는가.

 

누군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힘들게 생성된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인정이 필요하고,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담담함과 평안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담담함과 평안함을 만들기 위해 그 속에서 몸부림치던 슬픔과 혼란이 3초에 불과한 이 가사에 전부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에잇, 무력감과 그리움


 

 

 

스물셋과 팔레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 수필이라면 에잇은 ‘너’라는 가상의 인물을 사용해 자신의 스물여덟을 고백한 짧은 소설과도 같다. 스물여덟의 아이유는 무기력함과 그리움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개인적인 정서로부터 오는 것인지 재해로 인해 함께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부터 오는 것인지 혹은 둘 모두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슬프지 않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오렌지 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마음을 가사에 녹여냈다.

    

 

지나듯 날 위로하던 누구의 말대로 고작

한 뼘짜리 추억을 잊는 게 참 쉽지 않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날 붙드는 그곳에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작년 한 해는 팬데믹이 창궐하면서 모두가 잃어버린 일상으로 인해 무력감에 빠졌었다.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를 거 없지만, 작년 초 국내에 본격적으로 대유행이 일어나면서 처음 맞닥뜨린 현실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개학이 미뤄지고,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하나둘 일자리를 잃어가는 사회는 무력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이 우울감에 잠식되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던 나에게 아이유는 에잇을 통해 잠시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단순히 노래가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던 무력감과 그리움을 아이유만의 감성으로 표현한 가사가 예쁘지만, 왠지 모르게 슬프게 다가왔기 때문에 가사를 곱씹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잇이 발매한 지 1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보편성’이라 생각한다. 앞서 두 곡과 마찬가지로 스물여덟 아이유의 상태를 표현한 곡이긴 하지만, 무기력함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일생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해라는 시기성에 구애받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라일락, 행복했던 20대와의 이별


 

 

 

라일락은 올해로 29살을 맞이한 아이유가 자신의 화려했던 20대를 기쁘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곡이다. 라일락의 꽃말인 ‘젊은 날의 추억’처럼 자신의 20대는 봄날이었고, 절정이었고, 꽃잎과도 같았다며 20대와의 작별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우리 둘의 마지막 페이지를 잘 부탁해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

Love me only till this spring

오 라일락 꽃이 지는 날 good bye

이런 결말이 어울려

안녕 꽃잎 같은 안녕

하이얀 우리 봄날의 climax

아 얼마나 기쁜 일이야

 

 

나이가 들어가면서 앞자리가 바뀜을 가장 실감할 때는 아마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청춘’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20대와 달리 30대는 ‘사회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괜스레 앞자리가 3으로 바뀌게 되면 더는 인생에서 빛나는 시기는 없다며 단정 짓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 어떤 아홉수보다 20대의 아홉수를 가장 슬퍼하는 것 같다.

 

한때 성인이 된 후부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공포를 느끼며, 어느 순간 30대가 되어버린 미래를 그리고는 걱정 어린 상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적이 있었다. 30대가 되어버리면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허용되지 않는, 온전히 책임감의 무게를 혼자서 짊어야 할 모습이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고, 심지어는 아트인사이트의 지원서에 ‘나의 30대가 기대된다.’는 말을 적기도 했다. 가깝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29살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지난 20대를 보내줄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라일락의 노랫말처럼 쓸쓸하지 않게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고 싶다.

 

*

 

방 청소를 하다가 옛날 물건이 나왔을 때, 사진첩 속 지난 시간의 자신을 발견할 때, 오고 가는 대화 속 추억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허공에 흩뿌려질 때, 우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 과거의 자신과 맞물려있는 하나의 사물 또는 추상적인 어떤 것과 우연히 마주하는 순간, 우주 속에 떠다니는 별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로 응집된 후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지나버린 어느 지점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적절한 매개체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시대의 Gee를 들으면 형형색색의 스키니 진을 입고 게 다리 춤을 췄던 기억이, 원더걸스의 Tell me를 들으면 따로 합을 맞추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같은 동작을 했던 모습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 노래를 듣게 된다면, 과거 그 나이였던 자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갈 것 같다. 비록 어디까지나 가사는 아이유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더 많을 것이다.

 

만약 미래의 내가 스물다섯의 나를 떠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망설임 없이 아이유의 팔레트를 재생시키고 싶다. 아이유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나이라는 공통점이 담긴 노래가 귓속으로 흘러들어 온다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함께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참고: ‘아이유- 에잇’ 앨범 소개

 

 

지은정.jpg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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