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명화 속 숨겨진 반전에 대하여 -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명화와 가까워지는 시간.
글 입력 2021.04.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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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그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은, 더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림 감상은 연애와 닮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첫눈에 반했다고 해서 그 사랑이 반드시 오래 이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상대의 내면을 알고 난 뒤 사랑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때론 차갑게 식기도 한다고. 그리고 상대를 깊이 이해할수록 순간의 거짓말은 더 빨리 탄로 나며, 그 거짓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일 수도 있고 제멋대로 상상한 결과 발생한 오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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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수많은 서양화에 담긴 오해와 속설을 속속들이 파헤친 결과물이다. 우리가 몰랐던, 숨어있는 반전에 대해 10가지 장으로 나뉘어 있다. '제목에 숨은 반전, 모델에 숨은 반전, 화가에 숨은 반전 허세에 숨은 반전’ 등이 각 장의 제목이다. 그렇게 나뉜 주제별로 한 그림당 2~3장 정도의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을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으로 지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의 서양미술사가 '기무라 다이지'는 많은 이들에게 예술품에 대한 즐거움과 지적 호기심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서양미술사’를 목표로 한다. 주요 저서로는 국내에 소개된 <63일 침대맡 미술관>,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등이 있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완벽하게 마음을 뺏길만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일이 언제나 있다면야 좋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이 연애와 닮아있다면 작품 그 자체는 사람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 가서 처음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처음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면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어떤 말이라도 나오는 대로 내뱉는다. 아무도 내가 낯을 가리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러나 함께 먹은 밥은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훗날 대화를 되새겨도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 현장의 막연함과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야 마는데, 그렇게 된다면 다음에 그를 다시 만날 때에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말고는 느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을 애써 모면하기보다는, 어색함을 어색함으로 두자는 다짐을 종종 하는 편이다.

 

새로운 작품 앞에 선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막연하고 어색한 순간을 그저 내버려 둘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작품이 의미 있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면 나는 멍청이가 된 기분에 휩싸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러한 ‘내버려 둠’의 시간 뒤에는, 반드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마음 대신 천천히,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하게 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대사가 있다.

 

 

“학생들을 예술가가 되도록 부추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그들은 자신이 위대한 램브란트나 셰익스피어,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가 아니란 것을 깨달으면 당신을 미워할 거요.”

 

그리고 캡틴은 답한다. “예술가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색가가 되라는 거죠.”

 

 

문화예술을 향유 하는 것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 플랫폼에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는 감히 ‘예술’, ‘예술가’, ‘미학’과 같은 단어들은 왠지 민망하고 머쓱하여 꺼내지도 못하는 내가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러한 부담감 때문에 향유 할 기회조차 놓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는 모두 자유롭게 사색할 수 있다.

 

도슨트, 큐레이터, 평론가 등등... 세상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원하는 정보만 속속히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술사를 잘 알고 있고, 공들여 쌓은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감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만 감상할 자격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되는 것처럼, 그게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어야 지속이 가능하다. 미술을 단지 ‘교양’의 일부분으로, 학술적인 것으로 여기는 순간, 그것은 전문가들만이 향유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된다. 중세시대 귀족들만이 갖는 우아하고 고상한 취미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향유 하는 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 이의 실수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대단한 지식이 없어도, 작품 앞에 선 우리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사유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렇게 미술에 천천히 다가갈 수 있게 돕는다. 처음의 만남이 어색해도, 시간을 들이고 다가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핏빛 절규로부터 나를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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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지금까지도 패러디가 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대체로 우리는 이 작품 속 주인공이 절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이 말하는 절규란 해 질 무렵 뭉크가 체험한 자연이 만들어 낸 핏빛 노을의 환영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자연의 절규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귀를 막고 있을 뿐이다.

 

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다. 표현주의는 20세기 미술 운동 중의 하나로,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회화의 선, 형태, 색채 등은 그것의 표현 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뭉크는 해질녘에 친구 둘과 함께 걷고 있을 때, 뭉크 자신을 사로잡았던 환영에 대해 가슴으로 느끼고 표현한 것이다. 자연의 절규에 대해.

 

해가 지는 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는 왜 절규를 한다고 느꼈을까. 그림의 배경은 오슬로 피오르드에 인접한 에케베르그 언덕이라고 한다. 한국의 자연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내가 그 장소를 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몽골 등의 여행 장소에서 대자연과 마주했을 때, 나는 경이로움 이상의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 또한 뭉크는 심한 우울증과 공포를 안고 살아왔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피오르드를 바라보고, 죽을 듯 피곤하여 난간에 기대고, 그렇게 자연의 비명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뭉크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쪽에는 마을이 있고 내 아래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 실제로 그 절규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노동자 거리가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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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이날이 가까워진 만큼 그림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랑 드 라 갈레트>.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 장소는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갱게트, 즉 도시 외곽에 위치한 댄스홀 겸 선술집을 말한다.

 

이 작품이 그려질 무렵 이곳에는 주로 노동자 계급이 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작품 속에는 일상의 시름을 달래러 온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던 르누아르는 ‘즐거운 그림만 그리겠다.’라며 자신의 친구들을 모델 삼아 근심 따위는 없는 듯한 행복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그림이 국가의 요청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아무런 근심 없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라면 감동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즐거운 그림을 그리자는 그의 신념이 드러나는 그림은 어쩐지 더욱 따뜻하다.

 

 

 

내 방에서 즐기는 반전 가득한 명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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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상단에는 ‘내 방에서 즐기는 반전 가득한 명화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혀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시기에 딱 맞는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방에서 즐기는 명화들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존재했다. 위의 그림에 관한 글 중에는 책 속에 없지만 첨부한 내용들이 있다. 도서 자체가 단편적인 설명과 반전의 사실로 흥미를 돋우기 위한 것이라서 그런지 당대의 역사적인 사실과 예술 사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처럼 그로 인해 더욱 흥미를 갖고 찾아보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림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101가지의 명화가 준비되어 있다. 넓지만 얇게, 접근하기 쉽다는 그 자체가 매력적인 도서라고 생각한다.

 

평소 전시를 감상할 때면 꼭 오디오 도슨트를 듣거나, 가기 전에 약간의 공부를 하고 가는 편이다. 모든 미술사를 알 수는 없어도, 당장의 어색함을 줄이고 싶고, 다가가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명화와의 친밀감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소소한 반전의 사실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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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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