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까지 이런 전통극은 없었다 - 딴소리 판

이것은 판소리인가, 탈놀이인가, 코미디인가
글 입력 2021.04.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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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연희'라는 단어를 아시는가? 굿, 탈춤, 판소리 꼭두각시놀이 등 우리 전통으로 내려져오는 행위예술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의 진정한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단순히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승의 의미보다는 시대와 조화하며 새롭게 창조하고 발전되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 현대의 정서와 고전의 지혜를 조화롭게 뒤섞어놓은 공연이 있다.

 

 


판을 깨고 다니는 광대들


 

 

 

'딴소리 판'은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를 공연한다. 나는 이 극을 단순히 판소리, 탈춤의 결합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전통의 형식을 따르지만 다양한 분야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딴소리 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판소리의 다섯 마당으로 포문을 연다. 그러나 전개는 절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잘 흘러가고 있는 이야기에 광대들이 난입하여 딴소리를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이번엔 광대들이 어느 쪽으로 튈까 그들의 몸짓에 몰입하게 된다. 그럼 이제 판 깨기 선수들인 여덟 광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실 텐가?


춘향가에서는 몰락하여 거지가 된 몽룡이와 거지 떼들이 밥 구걸을 하며 판을 깨고, 심청가에서는 봉사로 위장한 거지들이 심봉사를 만나 효도를 하는 것에 판을 깨고, 적벽대전에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 입대한 거지들이 상대에게 엉망 진법을 가르치며 판을 깨고, 수궁가에서는 간이 약해진 용왕에게 가짜 약을 팔며 판을 깨고, 흥보가에서는 박에서 거지들이 나오며 꿈을 듣기만 해준다며 판을 깬다.

 

모든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시대를 대변하는 흐름으로 관객들이 설득된다.


판도를 바꾸는데 일등공신인 광대들은 그곳이 어디든 자신들의 맘대로 행동한다. 권력을 가진 상대가 거지 광대들을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상대가 돈을 준다해도 광대들은 싫다 하고 벼슬을 준다 하여도 싫다 한다. 물질적이며 권력을 나타내는 것들로는 설득이 안되자, 마지막으로 광대들에게 밥을 준다 하니 '들어 들어간다'라며 단번에 승낙을 한다. 거지는 지갑도 없고 내일도 없고 염치도 없고 내일도 없다. 밥을 준다면 산이고 바다고 어디든 달려가는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들 아닐까?

 

 

 

진정으로 시대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공연


 

 

 

통념이 가장 크게 깨졌던 장면은 심청이가 아버지를 만나며 효도를 하려는데 거지들이 판을 깨며 효도하는 것은 각자 여건에 맞게 알아서 하시라며 우리는 즐겁게 놀겠다는 대목이었다. 효도라는 것에 의무성이 부여되지는 않았는지, 남에게 보여주려는 과시성이 있지는 않았는지 효에 대한 통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권선징악의 대표 이야기인 흥보가에서는 악한 형에게 온 재물을 빼앗겨 고생하던 흥보에게 복이 찾아올 찰나 광대가 나타나며 소원을 듣기만 해주고 밥을 얻어먹으려 한다. 흥보가 재물을 얻어 재물을 물려주게 되면 흥보의 자식들 사이에서도 흥보와 놀부처럼 재물을 뺏고 빼앗기는 상황이 또 반복될 것을 주의한다. 흥보가에 대한 논리적 허점을 찌르는 신선한 접근이었다.

 

적벽가에서는 목숨을 건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몽룡은 광대들에게 비장하게 외친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도 죽는다.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같이 죽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몽룡의 외침에 공연장은 웃음으로 물들었고 광대들은 부리나케 도망 다녔다. 몽룡은 기존의 이야기를 완전히 반대로 말했지만, 그 말은 개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에선 그 누구의 말보다 현실적으로 들렸다.

 

공연 중간에는 무대만을 환하게 비추던 불빛이 관객석도 비추는데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즐기고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시대는 변하고 삶의 양식과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관도 달라진다. 예술은 그 시대를 대변한다. 따라서 과거 세대의 가치를 바탕에 두고 있는 예술들은 현대에서 재해석되는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딴소리 판'은 고전의 현대적 가치를 품고, 과거 시대의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한다.

 

몽룡만을 바라보던 춘향이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세상 구경을 좀 더 해야겠다는 결정을 한다. 그렇게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하고 극은 끝난다. 지금껏 세상에 만연해있던 성 역할, 효, 충에 대한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깨버리는 것이 이 극의 매력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우리 유산


 

 

 

"동해 물과 서해 물이 마르고 닳지 않도록 용왕님이 보우하사 우리 용궁 만세~"

 

현대적 풍자와 패러디 그리고 판도를 깨는 와중에 우리의 전통 유산을 맘껏 향유할 수 있어서 극 내내 놀라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각 맞추며 춤을 추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하나 됨이 느껴졌던 그들의 자유로운 몸짓과 두 귀를 가득 채우는 '소리꾼'의 소리, 혼자서 장단을 만들어내는 '고수'와 중간중간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사물놀이와 탈춤. 우리 전통의 소리에 절로 들썩이게 되는 흥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뒷받침 되었기에 그들이 재해석하는 메시지 또한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었다.

 

 

 

아쉬웠던 관객 관람 에티켓



판소리 탈놀이 공연을 처음 봐서 잘 모르기 때문인지, 팬데믹 때문에 공연예술을 너무 오랜만에 향유해서 그런 것인지 호응에 대한 부분이 다소 아쉬웠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마스크 속 입꼬리가 올라가는 즐거운 무대였음에도 호응을 어떤 부분에서 해야 할지 몰라 출연진의 호응 유도에 그제서야 박수를 보내곤 했었다.

 

뮤지컬이나 콘서트에 대한 관람 에티켓은 가이드라인이 많이 제시되어 있어 반응을 명확히 하여 받은 감동을 출연진에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전통극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명확하지 않아 호응하는 데 있어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 마당이 끝날 때마다 광대들은 즐겁게 어우러져 놀고 춤을 춘다. "거지 거지 그런 거지 인생살이 그런 거지!" 이 외침은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많이 불리는 대사이다. 광대들의 말은 직면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임을 은유한다.

 

과거와 현대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연희집단 The 광대"가 있기에 특정인만 누리던 문화유산을 현시대를 사는 보통의 대중들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문화의 계승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자유로운 몸짓과 관객의 웃음 그리고 박수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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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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