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나를 잘 알지만, 잘 모른다. [사람]

글 입력 2021.04.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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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잘 알지만, 잘 모른다.

 

‘나는 나를 잘 아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서 힘들게 내린 답변이다. 며칠 내내 머리를 쥐어 짜낸 결과가 이렇게 애매모호할 줄이야. 25년 동안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던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약간의 허탈한 감정도 들었다.

 

올해 1월 직무체험을 하면서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이 부서졌다. 그때 느끼고 겪었던 것들을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어쩌면 나는 무던함보다 예민함이 더 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 단순히 정신력이 약해서인지, 처음 겪어봐서 그런 건지, 환경이 급변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결론은 그러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문장으로 인식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평생을 무던한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고, 가족들도, 친구들도 전부 나를 무던하다거나 또는 단순하다거나 등의 단어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내가 알고 있던 ‘나’에 대한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에 대한 생각은 혼란을 야기했고, 여태 ‘그렇다’라고 여겨왔던 것들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자기소개의 글을 작성하기가 어려웠다. 아트인사이트의 지원서를 작성할 때도 자기 소개란을 제일 마지막에 작성했을 정도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정의하기가 힘들었다. 확실하다 생각했던 게 전부 불확실해진 순간이었다.

 

*

 

일주일 전 아트인사이트의 문화 초대 중 ‘Project 당신- 자기소개 편’이라는 콘텐츠가 있었다. 지방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리적 제한이 없는 것들에 한해서는 최대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기존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자기소개의 글을 쓸 자격이 없었다. 뚜렷한 가치관도, 이렇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도, 확고한 취향도, 전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투성이였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를 모르는 다수에게 자신을 알리는 글을 작성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그런데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절대 할 수 없다는 마음은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했고, 마감 직전까지 고민하다 끝끝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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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MBTI를 비롯한 각종 성격, 심리 테스트에 집착했던 이유도 자신을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라도 기계가 만들어낸 성격에 나를 끼워 맞추고는, ‘맞아.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판결을 내리고서 나를 잘 안다는 자기합리화를 하기 위해 말이다.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당연한 걸 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억울했다. 결코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남들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혼자 그러지 못하는 것도. 어두운 방 안에 홀로 고립된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가 문화 초대를 포기한 날, 이 상태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느리기 때문인지,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인지, 모두가 다 그런 건지, 어떤 연유로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했다.

   

지난날을 입력한 값은 ‘무관심’으로 나왔다. 자신에 대한 무관심. 돌이켜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부터 본디 ‘나’ 자체인 사람에게 굳이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감각이 반응하는 대로 받아들이거나 ‘그냥’이라는 명목으로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렇다. 나는 나에게 작은 질문조차 건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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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확실히 알기 위해 지금 당장, 또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하나의 문장마다 ‘왜’를 달아 보는 것. 즉, 하나씩 질문을 해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금방 지치기 때문이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나는 예민한 편이다. 왜냐하면 같은 상황에서 남들보다 과민반응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무던한 면이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은 거슬려 하는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문장마다 각기 다른 생김새의 꼬리를 달았다. 꼬리가 달린 문장이 많아질수록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점차 편안해졌고, 흔들리던 몸에 중심이 잡혀갔다. ‘나는 ~한 것을 좋아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나’라는 사람의 입체적인 면모들을 하나씩 알게 해주었다.

 

*

 

이 글을 쓰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이 작성한 수많은 글을 읽어보았다. 20대와 40대, 학생과 직장인, 딸과 엄마. 저마다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고 저마다의 해결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말했다. 삶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이건 우리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라고.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0부터 10까지 점수를 매기라면 딱 5 정도가 적당하겠다. 절반은 알겠고 절반은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나를 잘 알지만,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를 알아가는 방법은 잘 안다. 아마 모든 마음에 질문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귀찮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두 발로 꿋꿋이 서기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조금은 귀찮게 괴롭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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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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