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글 입력 2021.04.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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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은 그 자체로 존재할 때보다, 그것에 담긴 서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주 기억되곤 한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육상 선수 임춘애는 (사실은 와전된 이야기라고 하지만) 라면만 먹으며 힘들게 훈련을 했다는 인터뷰로 인해 그로부터 무려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라면 소녀’로 기억되고 있으며, 각종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가정환경과 평소 생활상을 보도하는 기사들에는 자주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댓글들이 여럿 달린다. 하나의 대상에게 있어 그것을 풍부하게 해 주는 이야기, 즉 서사가 주는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일 테다.


미술, 그리고 명화란 평소의 필자에게 친숙하지 않은 분야다. 더불어 이 작품들이 늘어서 있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엄숙함은 필자와 같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미술을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영역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이 책,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이와 같은 ‘낯설고 어려운’ 영역으로서의 미술의 이미지를 과감히 깨버리는 시도를 감행한다. 다름 아닌 앞서 이야기한, 각 작품에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더욱 누구나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법한 그림 속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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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일본의 서양미술사가 기무라 다이지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서양미술사’를 목표로 이 책 외에도 다양한 저술을 집필했으며, 이외에도 미술과 일반 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활동들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써 필자가 느낀 것과 같은 미술, 또는 명화에 대한 거리감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총 10장에 걸쳐 1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도 여럿 등장하지만,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작품들 역시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잔뜩 긴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평소 예술사하면 으레 떠올릴 법한 난해하고 어려운 단어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독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이 작품에 이런 뒷이야기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것뿐이다.

 



왕비를 지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다

<프랑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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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캔버스에 유채, 271×195cm,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베르사유)

 

 

역사 속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하며, 동시에 가장 많은 풍문의 주인공이었던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를 떠오르게 하는 말인,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 라는 발언은 사실 왕비가 한 말이 아니었다지만, 분명 이렇게 단순하고 일면 순진무구해 보이는 발언이 그녀가 한 말로 잘못 알려졌던 데에는 충분히 그럴듯한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의 그림 속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여왕다운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그녀의 무릎 위에 놓여있는 빨간 표지의 책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지적이라는 미덕까지 더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외국인이라는 출신과 ‘사치스럽고 허영심 많은 여자‘라는 이미지로 인해 프랑스 국민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던 왕비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일종의 연출된 장면에 불과했다. 사실 그녀가 평생에 걸쳐 읽었던 책은 겨우 4~5권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화려한 그림 속 교훈이 가득

<테이블 위 과일과 호화로운 식기>, 얀 데 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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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년, 캔버스에 유채, 149×203cm,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파리)

 

 

화려한 식기들에 맛있는 과일들을 잘 차려놓은 식탁을 그린 일반적인 정물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그림 역시, 그 시대적 배경과 작가를 고려하면 단순한 정물화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작품의 작가인 네덜란드의 얀 데 헤엠은 그가 활동했던 시기인 17세기 네덜란드의 미술사조 중 하나인 ‘바니타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바니타스에서는 인생의 공허함과 덧없음을 주요 주제로 다뤘으며, 따라서 이 그림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절대 사치스러운 생활에의 권장이 아닌 오히려 ‘도덕적 비판’의 메시지라는 예상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이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확립한 ‘태양왕’ 루이 14세의 컬렉션에 일찍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평생 그야말로 태양과도 같은 정력적이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가 과연 이 작품의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에만 매혹된 것인지, 또는 그에게 이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일찍이 알아보는 통찰이 있었는지는 그야말로 미지수다.

 

 

 

그리스도상을 닮은 뒤러의 자화상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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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패널에 유채, 67×49cm, 알테 피나코텍, 독일(뮌헨)

 

 

자신의 자화상을 손수 그린 화가들이 예로부터 적지는 않았지만, 작중에 소개된 15-16세기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들은 하나같이 지독히 자기애적이다.


비록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나 명백하게 그리스도라는 성인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러한 나름의 일리 있는 추측은 성인의 축복을 의미하는 손가락 세 개를 포착하는 순간 더 이상 추측이 아닌 확신이 된다. 이와 같이 그의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 비단 이 작품뿐만인 것은 아니다. 1498년 작 <자화상>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자부심을 강하게 드러낸다.


스스로 독일 예술의 개혁자임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냈던 덕분인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뒤러는 ‘독일 예술의 아버지’라 불리며 당대의 예술사에 남긴 족적을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뒤러는 자신의 이름과 장점을 스스로 알리는 것이 미덕으로 하는 ‘자기 PR’의 시대인 오늘날 더욱 많은 점을 시사하는,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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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중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은 유럽 3대 박물관 중 한 곳이라는 그 상징성과 반나절을 둘러보아도 모자랄 듯한 거대한 규모 자체만으로도 필자를 감격하게 했다. 그러나 방문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정작 그곳에서 봤던 작품들은 채 다섯 작품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작중에서도 여러 번 소개된 프라도 미술관의 여러 작품들을 볼 때마다, 분명 작년 겨울 한 번쯤은 그 앞을 스쳐 지나갔을 순간순간이 아쉬워졌다. 그때까지도 아직 나에게 미술 작품이란, 그저 10초 정도 그 앞에 머무르다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에 담긴 이야기가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고, 따라서 그것을 알려고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채 가까워지지 못한 명화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한 학교 교양 미술 수업에서 자주 시험을 위해 그 작가와 작품명을 외워야만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시험이 끝나면 여지없이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이 전달해주는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이 책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오랫동안 작품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 남게 해 준다. 언젠가 있을 미술관, 박물관에서의 작품과의 조우를 기다리게 되는 시작이기도 하다.


300쪽의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림과 글이 1:1 정도의 비율로 읽기 좋게 배열되어 있으며, 그 호흡도 짧아 읽는 내내 결코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을 가볍고 흥미로운 책이다. 더불어 일반적인 예술 서적들처럼 단순히 시대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고, ‘반전’을 하나의 주제로 하여 다양한 시대, 다양한 국가의 작품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이 책이 미술을 낯설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 미처 다가가지 못했던 많은 이들에게, 이에 대한 저변과 관심을 조금이나마 넓혀주는 친절한 지침서로의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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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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