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지하철에 탑승합니다. [지하철 유랑기]

글 입력 2021.04.0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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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이 지나쳐본 지하철역이지만 코로나 19로 1년 동안 제대로 가지 못한 익숙한 장소들에 대한 기억. 그래서 더욱 사적인 이야기. 지하철 유랑기.

 

 


  

 

이번 역은 석천사거리. 석천사거리역입니다.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다. 빨리 뛰어가면 현관문을 열고 4분 만에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인천 2호선은 인천에 들어선 최초의 무인 지하철이다. 자동으로 문이 개폐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운행된다. 크기도 2칸으로 아주 조그만 초소형 지하철이다. 귀여운 사이즈인 만큼, 앉을 자리는 거의 없고 출퇴근 시간 때는 매우 매우 곤욕을 치를 수 밖에 없는 인천 2호선이다. 그래도 나에겐 1호선에 빨리 갈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개통된 지도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신식 지하철역이기 때문에 깨끗하기도 하고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역이다.

 

 

이번 역은 인천시청. 인천시청역입니다.

 


지하철1.jpg

 

 

인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이 있는 곳. 인천 1호선과 인천 2호선이 동시에 지나가는 매우 큰 역사다. 출입구가 매우 많아서 헷갈려서 그냥 역에서 가까운 출구로 올라간 뒤, 그때서야 길을 찾아간다. 그러다가 거의 역 하나 정도의 거리를 또 걸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또한 출구로 올라가는 길은 험난하기도 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 최근 에스컬레이터 공사를 마친 몇몇 출구만 그나마 힘들게 계단을 올라 잠깐의 휴식을 맛볼 수 있다.

 

 

인천교통공사.png

 

 

역 내부에 청소년 춤 연습장, 탁구장, 헬스센터, 책 마중 도서관 등 부대시설이 매우 많아서 굳이 지하철을 타야 하는 이유가 아니어도 방문하게 된다. 역시나 환승센터라 출퇴근 시간엔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특히 갈아타기 위해선 넓은 역사인 만큼, 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인천 1호선은 서울 지하철 1호선보다 차량 크기가 작다. 서울 1호선을 자주 이용하는 나는 오랜만에 인천 지하철을 타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규모가 큰 인천시청역사에는 예술작품들도 전시하기도 하고 벽면에 다양한 볼거리들이 장식되어 있어서 특유의 정겨움이 녹아들어 있다.

 

 

이번 역은 주안. 주안역입니다.

 


서울에 가기 위한 환승 코스! 여기도 인천 시청역 못지않게 1호선과 2호선 사이의 거리가 멀다. 계단을 3번이나 올라야 해서 카카오맵에서 갈아타는 시간이 4분이나 찍힌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와 가장 가까운 1-1에서 내려서 뛰면 2분 만에 가능하다. 사실 나에게 주안역은 환승 코스로만 지나가는 곳이라 실제 지상에 있는 주안역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환승하고 올라가면 용산행 급행열차 후반 차량이 있는 곳이 나온다. 지상이라 여름엔 너무나 덥고 겨울엔 너무나 춥다.

 

그래도 주안역에서 의외의 만남이 이어진 추억이 살아 숨 쉰다. 기다리다가 우연히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난 적도 있고, 고등학교 친구도 만나고, 같은 시간대에 가는 사람들이 익숙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로 가는 1호선의 출발을 이곳에서 하기 때문에 놀러 가는 설렘을 느끼거나 학교에 가는 무거운 발걸음을 느낄 수 있는 역이다. 출퇴근 시간대가 아닌 애매한 시간대에 가면 10분 넘게 기다려야 해서 출발 시각을 잘 계산하고 가야 한다. 출퇴근 시간엔 주안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서 자리가 다 차고 나 또한 앉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이 기다리지 않는 번호 칸에 가서 맨 앞에서 기다렸다가 잽싸게 탄다.

 

옆 번호에서 승객이 내리지 않았는데도 탑승하는 모습을 보면 자리가 다 차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만, 내 철칙은 승객이 내릴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주고 안전하게 탑승하는 것이기에 꼭 지킨다. 주안역에서 못 앉으면 다음 환승역인 부평역에서 자리를 노려야 한다. 부평역에서도 못 타면, 나는 최소 21개 역을 지나야 하므로 그날 하체 운동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역은 동암. 동암역입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 동암역에서 1호선을 탑승하고 서울에 갔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이 동암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을 향하는 루트는 2가지가 있다. 석천사거리역에서 주안역으로 가 환승해 가는 방법과 버스를 타고 동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방법. 처음엔 동암역이 주안역보다 한 정거장 더 서울에 가까운 역이었기 때문에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동암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석천사거리역으로 가는 방법을 택해 다니기 시작했다. 주안역에서 타면 앉을 자리도 더 많아서 후자를 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나와 집을 향할 때는 더 먼저 내리는 동암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는 방법을 택한다.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1호선을 주구장창 타고 와서 한 정거장 빨리 내리는 그 기분이 더 좋기 때문이다. 시간을 계산해보면 주안역으로 가는 것이 현명하지만, 내 기분상으로는 더 빨리 갈 것 같은, 미소가 지어지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독자들도 이런 경험을 일상생활에서 하고 있지 않은가 떠올려보길 바라며 적어본다. 일상에서 사소한 행복을 주는 선택을 만들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 선택이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순간에 기분 좋은 선택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

 

동암역은 다른 역보다 조금 더 오래된 분위기다. 그래도 인천의 많은 버스들이 이 동암역을 지나쳐서 북부역사, 남부역사로 나뉘어 버스들이 승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나는 남부역사로 가 버스를 타는데 그 앞에 있는 건물들도 연식이 좀 있는 건물들이다. 올라오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건물엔 아리따움과 어묵집 그리고 2, 3층에 걸쳐 호프집이 있었다. 저 호프집에선 무엇을 팔까, 누가 갈까 궁금했었는데 최근 가보니 문을 닫고 치과가 갑자기 호프집 자리에 새로 들어왔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타격을 받은 것 같은데 나도 이로 인해 서울을 잘 가지 않아 없어진 지도 몰랐고 최근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게 되어서 아쉬우면서도 새삼 놀랬다. 몇 년을 그렇게 똑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무너진다니.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남부역사엔 53# 세 자리 번호의 버스들이 줄지어 나란히 서 있다. 종점이자 시작점이기도 해서 기사님들이 담배를 피우시거나 스트레칭하기 위해 나와계시기도 한다. 나는 그 버스들 중에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아무거나 타도 집에 갈 수 있다. 그래서 빨리 오고 빨리 출발하는 버스가 무엇일까 눈치를 보고 탄다. 결국 나 혼자만의 눈치 게임은 실패로 돌아가 내가 탄 버스가 10분은 멈춰있고 저 앞 버스가 먼저 출발하는 불상사도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냥 노래 들을 시간이 늘었다고 생각하고 앉아있는다.

 

그 버스들 앞에는 생선가게, 과일가게, 찐빵만두가게, 옷가게 정말 다양한 가게들이 조그맣게 줄지어 서 있다. 호객행위 소리가 익숙하게 들려오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러 그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내 서울 통학 생활의 기억에 거의 항상 함께 한 동암역은 오래됐지만 그래도 사람의 기운이 가득한 정겨운 장소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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