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 영화 '아무도 없는 곳'

내가 들려주기 위해서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글 입력 2021.03.3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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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창석(연우진)이 한 카페에서 젊은 여성(이지은)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창석이 친한 언니의 소개로 나온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 여성은 치매의 걸린 창석의 어머니였고, 그녀는 이 상황을 과거 창석의 아버지와의 소개팅으로 착각한다. 영화는 그렇게 창석과 그의 어머니 간의 대화를 그려나간다.


창석은 그녀에게 자신이 지어낸 노숙자와 객실 안내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외국이 배경인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그 끝에 갑자기 한국 동전이 등장하면서 맥이 툭 끊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창석과 그녀의 설전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그녀와 그런 이야기라도 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창석 둘 간의 대화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작가인 창석은 영화에서 자신의 엄마를 포함한 총 4명의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때 창석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 상대방도 우리도 명확히 알 수 없다. 이야기는 늘 진실과 거짓 그 중간에 놓인 듯한 느낌을 주며, 왜 그리고 어떻게 그 이야기가 선택되어 그 순간 그에게서 세상 밖으로 나왔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하는 창석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영화 속 진실과 거짓은 뒤섞이고 창석이 그리는 예술의 경계는 모호해지다 못해 허물어진다. 영화는 그 자체로 창석이 만든 하나의 거대한 예술이 되고 이를 보고 있는 우리는 아주 먼 곳에 당도한 듯한 몽환적인 느낌에 휩싸인다.

 

 

내가 들려주기 위해서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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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창석은 3명의 사람을 더 만난다. 출판사 직원(윤혜리), 사진작가(김상호), 바텐더(이주영)까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다. “내가 들려주기 위해서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이것은 예술가의 숙명일지 모른다. 예술가는 세상에 자신의 세계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세상의 이야기가 먼저 자신의 세계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자신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창석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기 전, 그는 늘 세상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다.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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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개 글에 따르면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창석이 대면한 총 4명의 인물은 치매 걸린 노인,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하게 된 여성, 가난한 사진작가로 병마에 시달리는 아내를 둔 남성, 사고로 인해 죽음을 경험한 바텐더로 성별도 나이도 모두 다르지만, 삶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단 점에서 결을 같이 하는 인물들이다.

 

또한, 영화 곳곳에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등장한다. 가령 창석이 밥을 먹으러 간 식당 테이블 옆자리에는 수화로 이야기하는 청각 장애인이 앉아 있었고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산책을 하던 중에는 정신장애가 있는 듯한 여성이 환각에 시달리며 소리치는 장면이 잇달아 나온다. 또한, 버스 안을 비추는 한 장면에서는 그 앵글 안에 대다수가 노인일 만큼 영화는 곳곳에 노인의 얼굴 클로즈업 샷을 많이 잡히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는 창석을 통해 길잃은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도 길잃은 마음을 보여주고 또 담담한 위로를 전달해 준다.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그런 것은 가능하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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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교롭게도 창석이 듣게 되는 이야기에는 모두 죽음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처음 자신의 엄마와 나눈 대화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출판사 계약을 하러 온 직원이 자신의 낙태를 고백함으로써도 죽음이, 아내의 암 투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진작가가 청산가리를 테이블 위에 두고 담담히 죽음을 고백할 때도 그리고 오토바이 사고로 가슴부터 배꼽까지 그 죽음의 자국이 남은 바텐더까지, 죽음의 그림자는 늘 드리워져 있다. 또한, 창석 본인이 영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에도 자식의 죽음이란 경험이 함께한다.


예술은 어쩌면 죽음을 노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 그 안에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부터 그 끝에 닿아있는 죽음까지 예술에 있어 죽음은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 없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속 살아 있는 이들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는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 같다. 삶과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그리고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창석이 죽음에 치운 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는 것은 예술은 삶과 죽음 그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무도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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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간 역시 이 영화에서 주목해 봐야 할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에 대해 김종관 감독은 평상시 우리가 마주하는 공간의 다른 면을 포착해 그 느낌을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연히 걷다 마주친 익숙한 공간이 예전과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모두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같은 공간이지만 그렇게 마주친 곳은 전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 버린다.

 

실제로 영화는 총 4개의 스토리 구성이 진행되는 동안 대화하는 상대와 함께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 역시 변한다. 그리고 창석이 홀로 영화 곳곳에 걸어 다니는 골목길과 영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하기 위해 들어가는 공중전화 부스 역시 여러 번 포착된다.

 

그 공간들은 실생활에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곳들이지만, 영화에서는 그 결을 달리한다. 때로는 쓸쓸하게 또 때로는 아예 낯선 공간이 된다. 그 공간은 창석에게 예술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 예술이 동시에 공간을 다른 곳으로 변모한다. 지어낸 이야기가 그 공간을 그만의 예술로 물 들인다. 창석의 예술은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곳, 그곳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영화는 창석이 다양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되며 삶과 죽음 그리고 공간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곳까지 들어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들도 그랬다. 아마 이 리뷰를 보고 영화를 보더라도 여전히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예상치 못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이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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