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어

글 입력 2021.03.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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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현 씨는 본인이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웃고 있는 거 알아요?” 몇 년 전, 심리상담가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그냥 웃었다. 그러자 다시 선생님이 말했다. “거봐요. 지금도 웃잖아요.”

 

정곡이 찔렸다. 곤란할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웃는 게 습관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고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어떡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몇 달간의 상담이 모두 끝났으나 어딘가 모호했다.

 

“다음에는 승현 씨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연락 듣고 싶어요.”라는 말로 마무리된 상담에 결국 마지막까지 무작정 웃고 나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내 주변 사람들은 그 답을 알고 있었으나 감사하게도 모르는 척해줬다.

 

상담이 끝난 후에도 슬럼프는 계속되었다. 감정의 여과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내 글을 다시 읽기조차 싫었다. 내 소설이 괜찮다던 동기들의 합평에도 의문만 들었다.

 

‘이게 진짜 재밌나?’

 

창작을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그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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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드러내기가 두렵다. 소설을 쓸 때면 의식적으로 ‘나’라는 작가와 작품을 거리 두려고 최선을 다했다. 전공 수업에서 합평할 때, 글 속의 화자에서 ‘나’를 찾는 듯한 질문을 받으면 진땀이 났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게 싫었다. 나를 잘 안다는 듯 으스대는 사람들이 껄끄러웠다.

 

고백하자면, 지금 쓰는 이 글에서도 나를 보여주기가 두렵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장을 망설였다가 지웠고,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 내가 이름을 밝히고 에디터 활동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무난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친구와의 다툼뿐인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무난한’ 삶을 산 사람이라 여러 고난과 역경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 이야기를 하나하나 설명하면, 모두 무난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느끼는 자신이 중요하니 지금은 무난하다고 무작정 우기려고 한다.

 

*

 

스무 살이 되어서야 글을 썼다. 학창 시절에는 수상 실적을 위해 선생님의 취향만을 반영한 글을 썼고, 제출하고 나서는 내용을 완전히 잊었다. 백일장에 수상했을 때 수상작에 적힌 내 시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굳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여 내가 쓴 작품에 애착을 쏟았다. 이제는 첫 문장만 보아도 언제 쓴 글인지 떠올리고 에피소드를 말할 수 있다. 물론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돌변하지는 못했고 꽤 애를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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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시절, 사랑을 모르겠다고 종종 말하고 다녔다.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너 지금까지 (사랑 없이) 어떻게 글을 썼어?”

 

 

그 말에 자극받았다. “사랑” 없이도 재밌는 글을 기꺼이 쓰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결말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실패했다. 사랑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여겼지만, 내 오만이었다. 사랑을 지우기엔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사람에 관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평생 글을 쓰겠구나.’라고.

 

그러나 각성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감은 하늘이 내려주지 않았다. 슬프게도 나는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학과 생활을 하면서 매일 토해내듯 시, 소설, 비평을 써냈다. 나는 순식간에 지쳐버렸다. 그때 휴학을 택했다. 잠깐이라도 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다시 앞의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 이후 번아웃이 왔고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상담을 받았고 결국 무기력하게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마지막 발악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했다. 만약 에디터가 된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되었다. 대학교에 복학했고 다시 매일 글을 썼다. 원래의 삶을 찾자 일 년이 지났다. 사춘기가 늦게 온 거라고 믿고 싶은 기간이었다. 누군가는 겨우 일 년이었겠지만, 내게는 하루하루가 재난이었다.

 

지금의 내게 하루하루는 재난까지는 아니고 자그마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불안과 행복이 무수히 교차한다. 그러나 여전히 글을 놓지 못하고 아직도 읽고 쓰는 내 모습을 보자니 이번 생은 여전할 것이라고 오만하게 한다.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지 일 년이 조금 넘어서야 자기소개를 썼다. 문화 초대 공지가 올 때마다 나는 여전히 미성숙하다고 느껴 쓰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미성숙하지만, 이번에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 짜냈다.

 

마음의 준비를 위해 자기소개를 시작하기 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와 컬쳐리스트 지원서를 다시 읽었다. 질문 중 하나인 “향후 계획”을 읽으면서 당시에는 패기가 넘쳤다고 느꼈다. 정말 허황한 꿈을 적었다고 생각했다. ‘설마 이루어지겠어.’라고 자조했다. 그러나 지금 그 계획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나머지 계획은 현재 진행 중이다.

 

자신에게 대견하다고 해야할지, 결국 버텨냈구나 감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어떻게든 돌아가서라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그냥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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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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