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사람]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글 입력 2021.03.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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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인공 찬실의 집주인 할머니(윤여정)가 쓴 시다.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은 감독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고, 일련의 사건으로 평생 해왔던 일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찬실은 작은 달동네 집에 머문다. 그곳에서 까막눈이었던 집주인 할머니의 글쓰기를 돕는다. 하루는 할머니가 쓴 시를 보고 눈물을 쏟는다. 그걸 보면서 덩달아 울었다. 그만 찌질해야지, 생각하면서.

 

몇 년 전, 갑자기 가족을 잃었다. 한여름 독립영화관에서 <데몰리션>을 본 직후였다. 영화의 기본 정보 없이 봤는데, 시작부터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장면을 보고 "헉"하고 경악했었다. 그런데 스크린 너머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더라. 그렇게 죽음은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며,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무겁고 유쾌하지 않은 주제로 어떻게 화두를 꺼낼지 알 길이 없었다. 학부 시절부터 다뤄 보고 싶었지만, 누구나 겪는 일에 홀로 유난인 것 같아 보류했다. 슬픔은 감추는 게 미덕이었으니까. 가족에 대한 레포트를 쓸 때도 그 얘기는 쏙 빼고 적었다. 얕은 식견이 탄로 날까 봐 두려웠고, 생사를 언급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매번 주저했다. 그러다 최근 한 영상을 보고 더는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정면으로 마주한 빈자리


 

샤이니의 수많은 명곡과 학창 시절을 함께했기에 故종현이 세상을 떠난 일은 큰 충격이었다. 그 일은 매스컴에 대서특필되며 삽시간에 퍼졌다. 비단 한 사람만의 상황이 아니었기에 대중은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연일 쏟아지는 관심으로 혼란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느낀다. 그럼에도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19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키는 故종현의 빈자리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그 전에 이미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 수상 소감으로 밝혔다. "보고 싶고, 그립고, 사랑한다"라는 진심. 계속 품고 있던 생각이었고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속마음이었다. 날것의 감정을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드러내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진짜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그 일이 더이상 말하는 게

힘들거나 필요 이상으로 슬프거나 하지는 않아요


물론 조심스럽지만

피할 필요가 있을까요?

도망칠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있었던 일을 건강하게 인정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표현해보자

"보고 싶다 그립다, 진짜 그립다."

 


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되려 저를 보고 너무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영상을 몇 차례 돌려보고 그의 자세에서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용기'였다. "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미 벌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 자신을 안쓰럽다고 여기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용기. 나에겐 전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죽음을 예술로 승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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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otoi-works


 

특별한 방식으로 가족을 추모하는 일본 작가가 있다. 세계적인 소금 예술가 '모토이 야마모토(MOTOI YAMAMOTO)'다. 1994년,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야마모토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허무함을 느꼈다. 이후 일본에서 관습적으로 장례 의식에 사용되는 소금을 작품 활동 주재료로 선택한다. 비록 잘 부서지고 흩어지지만, 소금의 무색투명한 특징과 정제된 느낌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야마모토는 소금을 이용해 대규모 설치 작품을 펼친다. 보통 산맥, 바다, 우주, 번개 등을 복잡한 미로 같은 형태로 만들어 낸다. 그는 갤러리 바닥에 웅크려 길게는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같은 자세로 묵묵히 작업을 수행한다. 소금 한 줌으로 정교한 형태를 완성하는 모습이 실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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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otoi-works


 

작품은 "바다로 돌아가기(Return to sea)"라는 프로젝트로 마무리된다. 전시 마지막 날, 사람들과 함께 작품에 사용된 소금을 회수해 바다에 흩뿌려 자연으로 보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의 모양과 형태는 사라지지만, 소금이 다시 한번 바다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생물의 삶에 깃든다. 재료의 순환, 삶과 죽음의 연결에 의미를 둔 것이다.

 

야마모토는 작품을 매개로 가족의 죽음을 마주했다. 소금으로 작품을 수놓는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는 숭고한 의식이다. 또한 그의 손길은 희미해지는 가족과의 기억을 추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꽃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때 초연한 인간이 되고자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세계 각국의 장례 문화가 다양하지 않냐. 관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고인을 보내는 장례 의식도 존재하니 관점을 바꿔보면 어떻겠냐. 하지만 나는 한국물 먹고 자란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나는 목놓아 울고 싶다.

 

 

비겁하게 속내를 외면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음을 응시한다. 누군가는 상대를 마음껏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작품으로 풀어낸다. 물론 그들과 나는 다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 이 문제는 과거의 순간에 머무느냐, 앞으로 나아가느냐에 관한 일이다. 그래서 켜켜이 쌓인 시간을 걷어내고 가슴 깊이 묵은 진심을 꺼냈다. 키의 "보고 싶다"라는 말이 마음에 불씨가 되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불행하고, 끔찍하고, 슬퍼도 어찌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사람은 꽃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이 한심하게 여기는 하루를 보냈다 하더라도, 무언가 하나둘 힘을 내서 행동하는 것. 그리하여 바깥의 햇살과 바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당장은 그 정도로 충분하니 삶을 꼭 붙들고 오늘을 살아가길 바란다. 이제 찬찬히 자신을 보듬어 주자.

 

 

[김세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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