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끊임없이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 보이지 않는 것들

바뢰이 가족의 섬마을 일기장
글 입력 2021.03.3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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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또 변한다.

 

햇빛도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저 철새도 작년에 보았던 새가 아닐 것이다. 거처도 바뀌기 마련이다. 내가 고향을 떠나왔듯, 둥지에서 자라난 새들은 어느 정도 자라면 둥지 밖 세상으로 떠난다. 하지만 바뢰이 가족들에게 섬은 벗어날 수 없는 둥지다.


<보이지 않는 것들> 속 ‘바뢰이’라는 성을 지닌 가족들은 섬 생활을 한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 섬을 3대 가족은 떠나지 않는다. 섬 이름이 아예 바뢰이섬이 될 때까지. 가족 중 가장 어른인 마틴, 그의 딸 바브로와 아들 한스, 한스의 아내 마리아, 한스와 마리아의 어린 딸 잉그리드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다.

 

 


아름다운 섬마을의 풍경



 
바뢰이섬에는 버드나무 세 그루, 자작나무 네 그루, 마가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몸통 한가운데 큰 상처가 있는 마가나무 한 그루는 늙은 마가라고 부르는데 열두 그루 모두 자연이 시키는 대로 구부러졌다.
 

 

책을 읽다 보면, 바뢰이섬의 별일 없는 일상과 대단하지 않은 풍경 속에 어느새 젖어 들고 만다. 첨벙대는 물소리, 수평선 사이에서 일렁이는 노을, 숨을 가득 삼켰다가 한 번에 뿜어내는 듯한 증기선 소리가 바로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2월의 바다는 간간이 청록색 거울로 변했다. 눈으로 덮인 바뢰이섬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닮았다. 서리가 내리자 바다는 짙은 초록색에 맑고 고요하고 젤리처럼 밀도가 높아 보였다. 그러다 투명한 필름처럼 수면이 완전히 얼었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변했다.

 


책은 섬마을 일기 같다. 짤막하게 나뉜 각 장에는 하루 혹은 며칠 간의 일상이 담긴다. 일상은 단조롭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안심된다. 위협, 침입, 재해 등은 지속해서 바뢰이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 아주 잠깐 가족을 흔들어 놓고 제 소명을 다해 사라진다.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섬은 곧 우주고 별은 눈 아래 풀 속에서 잠을 잔다.

 


자의건, 타의건, 혹은 타성이건 그 이유는 중요치 않다. 그들은 바뢰이섬에 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서 모든 것이 태동하고 소멸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이 죽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는 전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섬과 가족은 하나의 유기체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분투하고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온다.

 

작가 로이 야콥센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날카롭게 집어낸다.

 

그 사이 세대교체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를 돌볼 정도로 커가고, 여자들도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고, 뜻하지 않은 가족도 생긴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바뢰이 가족은 여전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섬을 지킨다.


 
바다 안개는 대낮에 그 어둠을 가져와 일식으로 시야를 가렸다. 가족들은 조용히 연장을 내려놓고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싸고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면의 빛을 밝혀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남과 공유할 수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이나 파편을 살폈다.
 


보이는 것은 명확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모호하기에 새로운 감각을 필요로 한다. 시각에만 의존했던 힘은 청각 후각 등으로 흩어진다. 시야가 제한된 바뢰이 가족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희미하게 남아있던 다른 감각들을 깨우고, 새로운 감정들을 만끽한다. 그 사이 섬은 벗어나기 싫은 둥지로 바뀐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바뢰이 가족만큼은 여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입체.jpg

 

 
2017년 맨부커 국제상
2018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 최종 후보작
 
 
가족의 유일한 터전이자 그들의 성을 따서 이름 지어진 바뢰이섬. 본토의 목사조차 한스와 마리아의 외동딸 잉그리드의 세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이곳을 찾았을 정도로 작고 외딴섬이다.
 
한스는 이제 늙어 아들에게 섬의 주인 자리를 내어준 그의 아버지 마틴부터 해온 얕은 토양을 경작하고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자식을 키우며 오리털을 모아서 교역소에 내다 파는 일보다 더 큰 꿈이 있다.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부두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섬과 바다 건너편 넓은 세상을 잇는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변덕스럽고 잔인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한편 본토를 오가며 학업을 마친 잉그리드는 목사관 견습 후 오스카 톰메센 부부의 집안일을 도우며 차츰 현대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톰메센 부부에게 어려움이 닥치면서 그들의 어린 두 아이를 맡아 보살피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섬으로 돌아온 잉그리드는 미혼모인 바브로 고모가 낳은 아들 마스와 종종 마찰을 빚으면서도 협력하며 조금씩 성장하는데…….
 
거친 파도에 맞서 자신의 터전인 바뢰이섬을 지키기 위해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로이 야콥센
 
1954년 12월 26일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 1982년 첫 단편 《감옥생활(Fangeliv)》을 발표했고, 노르웨이 작가연합이 그해 최고의 데뷔작에 수여하는 타리에이 베소스 데뷔상(Tarjei Vesaas' debutantpris)을 수상했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0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르웨이 비평가 문학상(Norwegian Critics Prize for Literature)을 수상했다.
 
1991년 《승리자들(Seierherrene)》과 2003년 《서리(Frost)》로 북유럽협의회 문학상(Nordic Council's Literary Award)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았다. 《꺼져 버린 기적의 도시(The Burnt-Out Town of Miracles)》는 2009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International Dublin Literary Award)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6년에 발표한 《보이지 않는 것들(The Unseen)》은 노르웨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17년 맨부커 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과 2018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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