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지 않아도 삶은 변화한다 - 보이지 않는 것들

글 입력 2021.03.2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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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뢰이 가족의 이름을 딴 바뢰이 섬은 할아버지 마틴, 아버지 한스, 어머니 마리아, 고모 바브로, 딸 잉그리드가 사는 섬이다. 작고 외딴 섬은 본토나 다른 섬과의 교류가 많지 않다. 바뢰이 섬은 바뢰이 가족의 삶의 터전이자 뿌리이지만, 동시에 벗어나기 힘든 굴레이기도 하다.


로이 야콥센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바뢰이 섬에서 살아가는 바뢰이 가족을 지켜본다. 단순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의 단순한 삶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몰아치는 바닷바람처럼 일상에도 끊임없이 변화가 찾아온다.


이 작품은 매 순간, 매 페이지 사건이 벌어지지만 아주 담담하게 보여준다. 작가가 보여주는 바뢰이 섬 이야기는 독자와 철저하게 거리가 유지되면서 담담함을 만든다. 바뢰이 섬의 일년 넘는 시간 속에서 바뢰이 가족은 많은 일을 겪는다. 마틴, 한스의 죽음, 바브로의 출산과 라스 등 바뢰이의 변화는 물론 바뢰이 개개인도 달라진다.

 

 

입체 (1).jpg

 

 

 

잉그리드와 가족의 변화


 

가장 크게 달라진 인물을 꼽으면 잉그리드를 고를 수 있다. 초반에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부각되어서 부모님께 조르기도 하고 짐짓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준 잉그리드는 외부에서 공부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다. 가족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그전까지 바뢰이 가족의 질서는 부계적 혹은 남성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배에 여자가 가까이 하는 것을 꺼리거나 중요 결정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내린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작품 내에서도 그러한 서술이 있다.

 

 

‘바브로가 어릴 때 바뢰이섬의 여자들은 의자가 없었다. 가족들은 테이블 앞에 서서 밥을 먹었다. 집안 여자 중 유일하게 어머니인 카야만 의자에 앉았으나 그것도 첫아들을 낳은 뒤였다.’

 

 

바뢰이 가족의 남성 중심 실서는 힘에 근거한다. 험한 자연에 맞서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바뢰이 섬의 중심이 된다. 마틴에서 한스로 가정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 계기에서 이러한 일화가 잘 나타난다.

 

 

바브로는 아버지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몇 년 전부터 그랬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을 못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마틴은 더 이상 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 그 역할은 한스가 맡았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마틴은 정확하게 기억했다. 러시아 나무 트렁크를 발견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을 때부터라는 것을. 그는 아들과 함께 쇠지레를 이용해 나무를 들어 올려서 굴리려고 했는데, 그가 힘을 주자 갑자기 강철 막대가 부드럽게 젖은 땅으로 처박히면서 급격하게 힘이 빠져 버렸다. 머릿속에서 단전이 일어났다. 그는 자리에 앉아 숨을 헐떡이며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고, 그의 아들이 홀로 그 모든 무게를 견뎌 냈다.

 


그러나 끝에 이르면 섬의 시대는 바뀌어 있다. 전통적인 질서에 의문을 가진 잉그리드와 바보르의 아들 라스가 섬의 주축이 된다. 둘은 여성 그리고 미혼모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권위를 얻기는 힘든 존재들이다.

 

 

카야가 죽자 바브로는 그 의자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스는 막 결혼한 마리아에게 주었다. 곧이어 얼링도 결혼해서 더 부유한 섬으로 떠났다. 덕분에 바브로와 마리아 모두 같은 시기에 의자를 가졌다. 그리고 잉그리드가 세 살 때 한스가 딸의 의자를 만들어 주었고 제대로 앉을 만큼 클 때까지는 팔걸이에 앉아 좌석에 발을 올렸다.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다.

 


가족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는 것이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비교적 빠르게 의자를 가진 바브로, 마리아 세대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잉그리드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잉그리드와 라스가 가족 내에서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 물리적인 힘이 바뢰이 섬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의 수장이던 한스와 마틴은 죽었고 이들과 같은 세대의 여성은 ‘힘’이 없다. 아직 지치지 않은 사람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류의 가능성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섬은 곧 우주고 별은 눈 아래 풀 속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간혹 섬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섬이라는 자연적 조건은 외부와의 교류가 어렵게 만들었다. 험난한 날씨와 넓은 바다를 헤쳐 나가야 다른 곳에 갈 수 있지만 바뢰이 가족의 배는 그렇게 튼튼하지는 않다. 모터 보트를 갖는 게 한스의 꿈이기도 하다. 한스의 또다른 꿈은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부두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세대가 바뀌며 점점 교류의 가능성이 커진다. 마틴 세대에 없던 부두가 한스 세대에 만들어졌으며, 잉그리드 세대에 이르러서는 외부 출신이 가족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부계제에서 라스는 엄밀히 바뢰이 가족이라 보기 힘들 것이다. 라스는 외부인 아버지와 섬 사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머니 바브로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바뢰이 섬 사람이기에 라스도 자연스레 바뢰이 섬에 소속된다.


외부 출신의 바뢰이 사람 라스와 외부에서 공부한 바뢰이 사람 잉그리드의 조합은 이제 바뢰이 섬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스 세대에 생긴 부두는 잉그리드와 라스가 거래를 위해 이용하는 문이자 외부 사람들이 방문하는 문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거래하고 외부와의 교류가 권장되는 상황에서 바뢰이 섬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제목이 무얼 의미하는지 고민해보았다. 이 책을 읽고서는 1)세상사를 이야기할 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2) 보이지 않는 것들에 달라지는 삶이라는 두 생각이 들었다. 어떤 쪽이든 사실 보이지 않는 것도 꽤 중요하다는 인상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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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 THE UNSEEN -


지은이
로이 야콥센(Roy Jacobsen)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노르웨이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1년 03월 08일

정가 : 14,200원

ISBN
979-11-90234-13-9 (03850)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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