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어 마이 프렌즈: 우린 여전히 살아 있다. [드라마]

우리 모두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4.0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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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의 삶과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다면, 혹은 눈물로 얼룩진 하루를 보냈다면 이 드라마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보기를 바란다. 작품을 추천하면서 보지 말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작품임이 틀림없다.

 

'그럼 대체 왜 보지 말라는 거야?'

 

한 회에 60분 이상, 16부작.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이 아프고 괴로웠다. 매일 밤 울다 지쳐 잠깐 시청을 쉬기도 했다. 어느 날은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어느 날은 속이 너무 답답했다. 또 어떤 날은 어리석은 내 모습을 마주한 후 괴로웠고, 어떤 날은 미안함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포스터에 적힌 '꼰대들의 유쾌한 인생 찬가'. 극 중 주요 인물은 포스터의 9인. 촬영 현장에서 고현정 배우와 조인성 배우가 막내 역할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간다.

 

tvN 10주년 특별 기획인 만큼 지금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초호화 캐스팅이 눈길을 끈다. '괜찮아 사랑이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 많은 사람의 인생 드라마를 남긴 노희경 작가의 현실감 넘치는, 그렇기에 더 가슴이 아리는 대사들은 연기 내공이 탄탄한 배우들의 입에서 출발해 내 심장까지 한달음에 도착한다.

 

흔히 '꼰대'라고 불리는 행동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막말하기, 아내는 종처럼 부리기 등 리얼해도 너무 리얼한 상황들은 보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사실 그런 상황의 90%는 극 중 석균(신구 분)의 차지다. 가끔 너무 화나서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드라마를 끝까지 봐주길 바란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박완(고현정 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난희(고두심 분)의 딸이자, 이모들과 삼촌들, 즉 엄마의 친구들을 싫어하는 것이 특징이다. 매일같이 완의 인생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하고,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늙은 엄마와 그 친구들. 그래서 더 몰입된다. 나도 늘 엄마와 하하 호호 살갑게 지내진 않으니까. 엄마와 딸의 관계란 그렇게 복잡한 것 아니겠는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완은 그들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를 함께 배운다. 시청자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박완 캐릭터는 우리가 보기에 가끔은 답답하고 가끔은 속 시원하게 해 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배우자와의 사별, 남편의 바람, 암, 가정폭력, 가난한 가정형편, 치매. 모두 드라마 속 이야기 같으면서도 우리와 그 주변에도 존재하는 사연들이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보단 잘못한 일이 훨씬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후회 말고 살아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정말 삶은 축복이고 감사일까.

 

12회 / 내가 알고 지은 죄, 백 가지. 내가 모르고 지은 죄, 천 가지 만 가지

 


짧으면서도 긴 인생을 살며 실수는 쉽고 상처는 깊으며 후회는 길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우리는 그 실수로 인한 상처가 나에게 혹은 너에게 얼마나 깊게, 오랜 시간 남아 있는지 그 상처가 잔뜩 곪아 버리고서야 깨닫는다.

 

극 중 많은 인물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그녀의 실수에 분노하다가도 잊고 있던 나의 실수를 깨닫고 나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나의 염치없음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영원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14회 / 끝까지 엄마답게, 끝까지 투사처럼 2

 


엄마의 아픔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그다지 어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처럼 굴었다. 그 상황에서는 엄마도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수년이 지난 지금 툭 물어봐도 그때가 몇 년도였는지 기억하는 엄마에 비해 나는 기억해 보려 애써도 정확한 연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미 각종 수학 공식과 역사 문제는 다 외우고 난 후였을 텐데도 말이다. 물론, 그때의 두려움은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오랜 시간 관찰하였나? 이미 '우리'와 '그들'로 선을 매몰차게 그어 버렸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모두 똑같이 빛나는 청춘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머리가 좀 컸다고 나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나에 대해 연구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라서 결국 자식들을 공부한다. 자식은 자라서 자신이 부모를 책임져야 하거나, 지금 자신이 완벽하게 부모를 부양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수요 없는 배려는 자기만족일 뿐 배려가 아니다.

 

딸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는 시기가 비슷하다. 이건 정말 인생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딸이 다 컸다며 떵떵거리고 혼자 길을 나서고, 그 길에서 위기와 행복을 번갈아 느끼며 점점 멀어져 갈 때 엄마는 외로워진다. 딸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고민하기 바빠 '엄마가 원하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는 인물들에게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이 말에 이해도 했다.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나와 우리는 그렇게 아프지 않기를 빌었다. 사실 슬프다기보다 겁이 많이 났다.


 

인생이란 게 참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은 그렇게 모든 걸 하나라도 가지라고 놓치지 말라고 악착같이 살라고 내 어머니의 등을 떠밀더니 이제 늙어서는 자신이 부여잡은 모든 걸, 그게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라 해도 결국엔 다 놓고 가라고 미련도 기대도 다 놓고 훌훌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으니 인생은 그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게다가 인생은 언제 끝날지 그 끝도 알려주지 않지 않는가. 올 때도 갈 때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인생에게 어른들을 대신해 묻고 싶었다. "인생아 너 대체 우리보고 어쩌라고 그러느냐고."

 

16회 / 우리들의 러브 스토리

 


오늘도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애쓴 하루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1분 1초를 다투다가 쓰러지듯 잠이 든다. 마지막까지 무엇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인생이 때로는 원망스럽다. 가끔은 언질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20년 넘게 업혀 있던 그 등에서 내려와 이제 내가 손을 내밀어 이끌려 하니 갑자기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어떻게 쓰든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내 모든 감정을 쏟아내기에 아직 내 글솜씨는 형편없기만 하다.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부터 어려웠다.

 

글의 끝자락까지 온 지금도 내 생각은 여전하다. 표현은 부족하고, 깊이가 얕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각자 인생의 무엇을 느끼는 것. 지금이라도 인생의 실수를 줄여나가는 것, 후회하지 않도록 항상 표현하는 것. 사실 이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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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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