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 빨래, 그리고 만세 선인장 [사람]

사람 사는 이야기
글 입력 2021.04.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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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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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속옷은 보통 손빨래로 해결합니다. 그래서 손빨래밖에 되지 않는 속옷을 구매했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빠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디자인도, 색감도 맘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귀찮은 걸 왜 사냐고 타박하는 동료의 말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결정하는데 그렇게까지 많은 고민은 하지 않았습니다. 뭐, 빨다 보면 언젠간 물이 빠지지 않는 날이 오겠지, 그러다 보면 다른 빨랫감과 섞여 세탁기에 돌려도 되겠지, 내 마음에 드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라고 막연히 여러 생각했었습니다.

 

헌데, 그 속옷은 아무리 여러 번을 빨아도 여전히 색을 뱉어냈습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행동하면 끝인데, 이것이 만든 시커먼 색이 거품과 함께 세면대 밑으로 소용돌이를 치며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저 인내하거나 무뎌졌습니다. 이런 비유가 당신들에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러한 사랑들을 해왔습니다. 여러 번 사랑을 해봤고 행복해 봤으며 또 지독히도 슬프고 외로워서 아팠습니다. 지금 말하는 사랑이 꼭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도 포함해서 말하는 겁니다. 다행히 많이도 무뎌진 탓에 버틸 수 있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몇 년 전까지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그냥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다를 수도 있지만 모두 저와 같다고 확신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일어나 어영부영 준비하고 허겁지겁 직장까지 어떻게든 도착하여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날 해야 하는 일을 꾸역꾸역 마치고 앉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며 동태눈으로 해가 없어져서야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지는, 이런 간단한 문장도 어떻게 마침표를 찍지 못해 이어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남들처럼 그렇게 놀아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열심히 한 수재도 아니어서 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하기는 그동안 해온 모든 것들이 아까워서 아니라고도 말할 수도 없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그 옛날부터 이랬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엄청난 베테랑도 아닌, 이제야 숨을 쉴 수 있는 20대의 중간에 있습니다. 무척이나 길지도 못한 경력에 여러 번의 이직이 생겼고 어떻게 다니게 된 직장들은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열정이 가득한 시대에 충분한 열정을 가지지 못한 그저 그런 사람이죠.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막상 용기도 없습니다.

 

뭘 하고 싶냐? 라는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죠.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적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또 그만두기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지갑을 보며 마지못해, 아.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어느 사람에게도 이건 마찬가지겠죠? 우리는 책임질 게 많은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한 사람도 벅차하면서 말입니다.

 

대답도 못 한 사람이어도 좋아하는 건 있습니다. 예쁘고 좋은 곳에서 자그마한 식사에 행복해하고 어쩌다 찍은 풍경 사진이 좋아서 그날 하루가 기분이 좋은 적도 있습니다. 주말 오전, 웬일로 일찍 깨어나 나의 소중하고도 작은 집의 밀린 청소를 모두 끝내, 즐기는 혼자만의 차 마시는 시간에도 엄청난 행복을 느끼는 소소한 작은 것을 좋아합니다. 가끔은 극장에서 다 때려 부수는 영화를 보고 쾌감을 느끼며 좋아하죠. 그 외,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나열하기엔 그 수가 감당되지 않아서 이만 말을 줄여야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그렇게 별로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가끔은 너무나도 못나고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지쳐요. 근데 그러기도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 순간은 또 지나갈 것이고 새로운 순간이 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알기 때문에 징징거리지 않을 뿐입니다. 뭐, 이미 어딘가에서 충분히 징징거렸을지도 몰라요. 남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뭐 그렇게 대수일까요. 여전히 저는 저를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여러 번의 사랑들 끝에는 정말 남들이 하는 부러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업무를 했습니다. 최근에 착한 보통의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그저 그런 이유로, 성격 차이라 할까요? 소통의 부재? 남들과 똑같이 우리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냐고 자문하며, 그래, 멋모르던 때보다는 낫겠구나, 하면서 애초에 ‘남들이 하는 부러운 사랑’ 이란 것이 제대로 있는 건지도 의문입니다.

 

건조한 눈을 끔뻑이며 재빠르게 타이핑을 하던 손가락이 점차 속도를 잃어갑니다. 곧 점심시간입니다. 예전 서비스직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남들보다 늦게 먹는 점심은 언제나 최악이었습니다. 점심이 마치 저녁도 아닌 것이 저녁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먹는 점심도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린 배를 그나마 제때 채운다는 걸 감사하면서 집어넣겠죠. 배가 고파 손가락이 멈춘 것 같진 않습니다. 이걸 얼른 점심시간 전에 넘겨야 할 텐데 말이죠. 그래야 조금은 나아질 텐데, 말입니다.

 

한 글자씩 막힘없이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수구가 막힌 듯 쾅 막혀버렸습니다. 마치 항상 조여 오는 제 정장처럼, 구두처럼 말이죠. 이 답답함을 마주 보고 있자니 집에 마저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해버린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근래 있던 야근과 회식에 밀려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볼 때면 언제나 답답했던 저라서 아무래도 오늘은 일찍 잠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몇 끼를 대충 때운 설거지와 널브러진 옷가지, 아 침대 정리도 하지 못했네요. 먼지는 늘 그렇듯 뽀얗게 쌓였습니다. 밀린 빨래를 먼저 돌리고, 널고, 또, 아. 아직도 빨지 않은 그 속옷을 다시 손 빨래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물이 빠지고 있어요. 조금은 투명해졌나 싶은데 변함없이 시커먼 색깔인 게 굴러다니는 먼짓덩어리와도 같습니다. 한 번에 세탁기에 넣어 돌리면 끝일 텐데, 번잡스럽게 사소한 할 일이 더 생겨버렸습니다. 따로 탈수도 한 번 돌려야겠죠. 그래야 그나마 좀 나을 겁니다. 그렇게 널어놓으면 보송보송하게 마를 겁니다. 다른 빨래들과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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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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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독 식물 중에서 선인장을 좋아합니다. 만약 받을 일이 있다면, 꽃다발보다도 선인장을 선물 받으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독특하단 이야기도 듣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선인장을 키우고 싶던 나머지, 누군가에게 식물을 선물할 때면, 보통 선인장을 선물해주곤 합니다. 뚱뚱한 앉은뱅이 같은 금호, 아니면 우뚝 솟아있는 용신목이나, 자주 볼 수 있는 귀면각 등등 나를 위한 선인장은 데려오지 못했으면서 남에게는 자주 사주었습니다.

 

좋아하면서 왜 남에게만 그렇게 주었냐 물어보시면, 아마 제가 겁이 많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다 잘못해서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질 수 있을까,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지금 선인장 하나 가지고 이러는 거야?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선인장을 빗댄 것뿐이지 선인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낮은 곳이 편했습니다. 나는 이 정도까지밖에 안 되니까, 더 낮은 곳으로. 그게 바르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더 낮아졌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편했어요. 핑계도 확실하고요. 근데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병이라도 생길 것 같은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요, 지겨워졌죠. 이제는 낮아져 있는 것이 지겨워졌던 겁니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어, 곧 30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인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선인장이 있었습니다. 선인장이면서 가시 하나 없는 게 눈길이 가서 덥석 데리고 왔습니다. 웃자라지 말라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집에서 빛을 찾아 전전긍긍도 하고, 통풍이 잘 안 될까 싶어 평소와 달리 오랫동안 창문을 열어두곤 했습니다. 덕분인가, 통통하게 넓적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얄팍하던 것이 이렇게 통통해져서 갑자기 생각난 옛 기억에 쌓아두었던 글 창고를 뒤적거렸습니다.

 

하나같이 우울한 글투성이더군요. 그렇다고 그게 싫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있어 저는 더 인고할 수 있었고 더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에 흘러 깎여진 모래사장의 조약돌처럼요. 누구나 같은 속도감으로, 또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더는 불평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고 그들이 되기 위해 쫓아가는 뱁새가 되지 않기로 했거든요.

 

작은 마음가짐의 효과는 실로 탁월했습니다. 어쩜 이토록 마음이 평안해졌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위한 시간을 더 갖기 시작했습니다. 소박한 시간에 만족하지 않고 나를 위해 더 욕심내기 시작했어요.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저를 스트레스받게 했던 모든 것들을 끊어냈습니다.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아닌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받고자 결심했더니 저는 눈에 띄게 행복해졌습니다.

 

저는 낮은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었는데, 사실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높아져도 된다고,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저를 응원하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올라가다 미끄러진다 해도 저를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난날의 제가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어린 날에 찍힌 낙인을 벗어내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도 어려울 텐데, 일목요연하게 풀어내기까지가 저에겐 어려웠던 일이었던 거죠. 정리되지 않아 저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아니면, 예전에는 알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명확해진 것이 생겼죠.

 

그런데 별로인 점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별로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이 생겨서 별로인 점을 생각할 겨를이 없더군요. 별로인 게 뭐 어때서? 하는 배짱도 생겼습니다.

 

중간중간, 감성에 취해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는 글들을 보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글들이 매우 싫었어요. 나쁘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읽고 또 읽어버리면 제가 너무나 나약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나약한 게 아니라 참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포기할 줄 알고, 시작할 줄도 알아야 되고 나를 달랠 줄도. 기다려 줄 방법을 아는 게 용기라는 것을요.

 

아 물론, 정말 철없이 구는 것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철이 없기엔, 여전히 저의 사회는 녹록치 않습니다.

 

아, 햇빛이 아주 따사롭게 아침을 알렸습니다. 어제 바람이 불어 안으로 넣어둔 만세 선인장이 떠올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모든 선인장이 가진 가시조차 없어 매끈거리는 나의 선인장은 여전히 푸르댕댕한 색을 보여주며 햇빛을 머금습니다.

 

주말의 시작이 좋습니다.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여전히 집안일을 할 거고, 먹고 싶은 아침 식사를 완벽히 해낼 것이며, 아? 손빨래는 여전히 하냐고요? 네, 이따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색이 빠지지도 않아요. 영원히 빠질 것 같던 것도 이제 적당히 행동할 줄 압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적당히'를 유지한다는 것이 정도를 지키는 법을 배우기까지가 어렵지, 배우고 나면 별거 아니더군요.

 

요즘 그런 것을 세탁 망에 넣어 다른 빨래들과 세탁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집안 정리를 하며 식사를 하니, 슬슬 오전 10시가 다 되어 갑니다. 벽 사이로 생활 소음이 조금씩 들려옵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마시다, 창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어째, 만세 선인장이 벌써 더 자란 것 같아요. 그래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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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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