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너를 그리워하는 방식

글 입력 2021.03.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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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에 아픈 반려동물이 많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도 있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반려동물을 지켜봐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지만 그들이 얼마나 긴 터널을 걷고 있을지 알 것만 같다. 왠지 앞서 사무치게 그리운 기분이었다.

 

‘미리 그리워짐’은 종종 찾아오는 감정이다. 나는 우리 집 강아지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면 어떤 식으로 그들을 그리워하게 될지 생각하다가 그렇게 미리 그리워지곤 했다. 그리움을 ‘예행연습’ 하는 거다. ‘사서고생’이기도 하다.

 

그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으로, 먼저 습관을 생각한다. 나는 사료를 챙겨주던 시각, 매번 실수로 밟고 말았던 애들 오줌 핫스팟, 산책 시간을 기억한다. 나의 반려견이 의미를 만들어준 장소와 시간이다. 몸이 기억하는 그 습관이 아마 제일 먼저 그들의 부재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런 건 1년 아니, 8개월 정도만 되어도 새로 새겨진 ‘반려동물이 없는 내 삶의 습관’으로 잊히지 않을까?

 

그다음으론 이름을 떠올려본다. 과거에 반려동물의 이름을 너무 가볍게 지은 듯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구름이, 초코, 두부, 바둑이, 콜라, 구찌… 하늘을 볼 때마다 보이는 구름으로 이름을 지으면 죽고 나서 매일 생각나서 어떡해! 마치 그들의 앞날을 봐 버린 점쟁이처럼 속으로 혀를 찼던 적도 있다.

 

민망하게도 나도 그 단순하고 직관적인 작명의 길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름을 ‘무겁게’ 짓는 법을 나라고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가족은 ‘아리’, ‘동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말았다. 앞서 말한 논리라면 내 인생에 ‘아따맘마’는 이젠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리아리동동 스리스리동동’ 역시 포함.

 

하지만 “어떻게 그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어?”라는 물음에 갑자기 걷는 걸 의식하게 되고 걸음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이상한 법칙처럼, 살아생전 아리, 동동이를 부른 횟수보다 아따맘마를 더 많이 시청하면 내게 있어서 그 이름의 의미를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버리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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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론 부족해.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방식을 더 많이 알고 싶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아 이중으로 깜깜해져버린 방에서, 이 방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느낌이 되었을 때쯤 아리가 유유히 방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찹찹찹찹찹찹.

 

그러고서는 침대에 올라오더니 내 옆에 똬리를 틀며 푹, 하고 누웠다. 이불 위에 자리를 잡은 아리 덕에 나는 어김없이 오늘 밤도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 보였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딱 아리만큼의 몸무게가 주는 작은 압력과 그 힘으로 팽팽해진 이불이 살짝 누르고 있는 내 몸을 느꼈다. 아리와 내가 꼭, 문진과 종이 같지 않은가.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 아리가 죽고 나서, 책상 위에 눌려 있는 종이 더미를 보고 이 감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될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엔 그런 장면이 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이 냉동실의 냉동 닭 팩을 보고 냉동실 문도 차마 닫지 못한 채 오열하는 장면이다. 죽은 아버지의 살결, 그리고 그 차가움이 겹쳐 보였을지도 모른다. 냉동실 문을 열 때 시체 안치소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았던 그 공기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건 몸의 어디인지 짚어낼 수 없는 곳에서 느낀 일이다.

 

영화 속 그 오열 장면은 관객인 나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나왔다. 나는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이 울음을 다시 보고는 재생을 한참 동안 멈춰야 했다. 그 장면이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생각이 난다는 건 정말이지 당해낼 도리가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습할지 모르는 감정이 반가울 리 없다. 그건 두려움 가득한 긴장을 잔뜩 주는 일이요, 긴장을 풀고 방심해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가끔 기억이 나 준다면 훌쩍대며 내심은 조금 반가울지도, 기대해볼 일이었다.

 

사실 반갑고 자시고 나는 글러 먹은 것 같기도 하다. 아리와 있어서 이미 너무 많은 감각이 몸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머리는 잊었는데 몸이 잊지 않고 잠시 묻어둔 경험도 분명 있을 거다. 당장 어느 타이밍에 눈물을 쏟게 될지는..

 

이중으로 깜깜해져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이 방의 규모처럼, 그리워하는 일을 예측할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서니 갑자기 숨을 흐읍, 들이쉬게 되었다. 맥박이 조금 빨라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 아아,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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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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