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루 10분씩, 희곡 읽기 [문학]

가깝고도 낯선 '희곡', 10분씩 읽어보자
글 입력 2021.03.2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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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인형의 집』과 『화염』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곡’은 무대 공연을 위해 쓰인 대본으로, 시와 소설과 함께 문학의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다른 문학 작품에 비해 자주 접하지 못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 공연 예술 전공자나 애호가가 아니라면 굳이 직접 읽어보지는 않을 것 같은 희곡. 하지만 희곡은 공연, 즉 시각화되어 관객과 직접 만나는 예술을 위해 쓰인 문학이니만큼 우리의 심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풍부하고, 그렇기에 어떤 문학 작품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나 시를 읽으며 명문에 줄을 긋고 마음에 보관하는 것처럼, 희곡에 문외한인 사람도 그런 방식으로 개인적인 희곡 취향을 찾아나가며 바운더리를 넓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희곡 대사를 몇 가지 추려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비교적 현재와 가깝고 아직까지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는 19-21세기 희곡이면서, 다양한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희곡들을 선정해 보았다. 희곡을 가장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전체 구조와 플롯 음미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전에 마음에 꽂히는 대사를 발견하면서 희곡 읽기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그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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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안미란 옮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은 1879년에 발표된 희곡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늘 순종하는 아내로 살아가던 주인공 ‘노라’가 자신의 자유를 박탈하는 남편 토르발과 사회의 속박에 대해 깨닫고, 아이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 읽어도 충격적인 『인형의 집』은 19세기 말 초연한 이후부터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되며 남성 중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노라는 남편의 본 모습을 확인하고 집을 나가기로 결정한 직후, 자신을 회유하려는 토르발에게 자신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을 가두었던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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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 동완 옮김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안톱 체홉의 명작 중 하나인 『벚꽃 동산』은 1904년에 초연된 작품이다. 희곡은 당시 러시아에서 귀족 세력이 힘을 잃고, 신흥 자본이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두고, 급변하는 세상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옛 가치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아냐를 사랑하지만 지독히 가난해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는 만년 대학생 트로피모프는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곧 다가올 미래를 긍정하며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위의 대사를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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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 드라마, 오세곤 옮김

 

 

프랑스 작가 장 주네는 그의 인생 이력부터 평범하지 않다.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생후 7개월에 버려진 주네는 도둑, 남창 등으로 길거리와 감옥을 전전하며 말 그대로 ‘밑바닥으로부터의 삶’을 살았다. 1947년 발표된 주네의 『하녀들』은 부유한 마담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자매 솔랑주와 클레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매는 마담이 없을 때마다 마담의 방에서 그의 옷을 입고 말투를 흉내 내며 역할극을 한다. 둘은 번갈아가며 마담-하녀 역할을 맡아 놀이를 하지만, 결국에는 하녀밖에 되지 못하는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하며 아득함과 비굴함을 느낀다.

 

마담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클레르는, 하녀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모진 말을 하는 주인처럼 하녀인 자신의 언니, 그리고 스스로에게 모욕을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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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이강백이 쓰고 1995년에 발표한  『영월행 일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비운의 임금,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월행 일기’는 이강백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고문서로, 작품 내에서 신숙주의 하인이 500년 전에 쓴 일기의 제목이다.

 

영월행 일기의 진품 여부 검증을 위해 모인 조당전과 김시향은 신숙주의 하인으로 분해 영월행 일기를 직접 읽으며 현재와 과거, 여기와 영월을 넘나든다. 희곡은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에게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고, 우리를 속박하는 권력과 구속에서 벗어나 해탈한 자로서 단종을 바라본다.

 

김시향과 조당전의 대화는 현실에서의 순응하는 삶과 진정한 자유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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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 드라마, 최준호, 임재일 옮김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화염』은 작가의 유년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레바논 내전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작품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쟁과 갈등으로 인한 증오와 분노, 그 역사적인 고리를 사랑과 용기로써 끊어버리는 한 여자의 생애에 관해 다루는 『화염』은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로 가득 차 있다.

 

기독교도인 나왈은 이슬람교도이자 이방인인 와합의 아이를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불안을 느낀다. 나왈은 와합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아이를 평생 지키고 사랑할 것을 다짐하지만, 계속되는 내전으로 인해 이별한다.

 

이후, 나왈은 긴 시간이 지나 찾게 된 자신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사랑의 말을 물려주며 증오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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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은 전쟁과 내전을 온몸으로 겪은 피해자이자 산증인으로서, 산산조각 난 역사의 조각들을 천천히 끌어안고 위로한다. 올해 5월, 신유청 연출이 LG아트센터에서 『화염』을 원작으로 한 연극 <그을린 사랑>을 올릴 계획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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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은 희곡 대사들을 추린 것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희곡에 관해 소개하고 함께 취향을 나누며 희곡 읽기의 장벽을 허물어 나가고, 나아가 희곡을 직접 발굴하며 같이 음미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10분만 투자해서 희곡을 천천히 읽어나가며, 희곡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확장하고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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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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