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노의 양치질'은 이제 그만? [영화]

배우 '차인표'의 코미디 영화 <차인표>
글 입력 2021.03.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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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 이미지란,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 하나의 이미지로 묶인다는 것은 배우로서 갈 수 있는 길이 좁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잘 소화할 때는 ‘성공적인 연기 변신’이라는 호평을 듣지만, 그렇지 못하면 ‘매너리즘에 빠졌다’거나 ‘진부하다’는 평을 듣기가 일쑤다.

 

넷플릭스에서 차인표가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코미디 영화 <차인표>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인표는 어떤 배우인지 생각해봤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는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다. ‘배우 차인표’보다, 그냥 ‘차인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많다. 열정, 바른생활 사나이, 분노의 양치질, 선행… 전부 스크린 바깥에서 생긴 것들이다. ‘분노의 양치질’ 장면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정작 그 장면이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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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데뷔한 차인표는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곧장 스타덤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차인표가 연기한 ‘강풍호’는 백화점 회장의 아들로, 색소폰을 연주하고, 바이크를 타는 ‘백마 탄 왕자님’ 캐릭터였다. 이후 <별은 내 가슴에>, <왕초>, <그대 그리고 나>, <황금시대>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했는데, 영화 <타워>(2012), <감기>(2013)에서 각각 기업 회장과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권위 있는 캐릭터로 등장한 이후로는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드물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90년대-2000년대 초반의 그를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드라마 스타보다는 바른 생활 사나이, 애처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필자에게도 TV 광고 속의 신뢰감을 주는 표정과 말투나, 예능에 출연해 기부나 봉사활동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모습이 익숙하다.

 

김동규 감독의 영화 <차인표> 속의 차인표도 실제 차인표라는 인물을 그대로 가져온 캐릭터다. 코미디 극영화지만, 일종의 페이크 다큐라고 볼 수도 있다. 왕년에는 잘나가는 배우였지만 지금 그가 하는 활동은 아웃도어 의류 광고 촬영뿐이다. 무엇이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광고하는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반려견과 함께 등산에 나선다. 산행 중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에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지를 흔드는 제스처를 보여주고, 무리한 요구를 해도 미소로 일관하며 신사다운 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모두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연기일 뿐이다.

 

산길에서 사라져버린 반려견을 찾다 진흙을 뒤집어쓴 그는 근처 여자고등학교의 체육관 샤워실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마침 보수 공사를 준비 중이었던 체육관은 그가 샤워를 시작함과 동시에 무너져 내리고, 차인표는 폭삭 주저앉은 건물의 잔해에 깔리고 만다. 건물에 깔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그는 우여곡절 끝에 휴대폰을 손에 넣지만 119에 구조요청을 하는 대신 매니저에게 전화를 건다.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구출되고, 심지어 여자고등학교 샤워실에 혼자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수십 년간 쌓아온 바른 이미지가 무너질까 두려워서다. 수십 년을 함께한 매니저 아람(조달환)에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 와서 자신을 꺼내 달라고 하지만, 건물이 무너진 것을 보고 온 관계자들 때문에 아람 혼자 그를 몰래 구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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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조용한 건물 잔해 속에서 차인표는 인생을 돌아본다. 손가락을 까딱이는 제스처와 바른생활 사나이 이미지로 살아온 지난 세월, 배우 4대 천왕에 속하지 못하는 현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구조 요청을 하지도 못하는 이 상황… 아내 신애라(실제 아내인 신애라가 목소리로 출연한다)와 통화하던 중 감정이 북받쳐 울컥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결국 차인표는 수십 년간 쌓아온 이미지를 내려놓고 탈출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다.

 

아쉬운 점은 배우로서의 차인표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인표>는 과감한 몸개그나, 친절한 이미지는 가식이었다는 설정을 통해 스타 차인표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대중이 바라보는 그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과장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 영화를 통해 차인표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확실히 드러나지만, 배우 차인표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화 속 차인표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으면서, 성에 차는 시나리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캐릭터로 그려졌지만 ‘진짜’ 차인표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2015년에는 벤슨 리 감독의 독립영화 <서울 캠프 1986>에 출연했고, 2016년에는 영화사 TKC픽처스를 설립했다. 그가 연출을 맡은 첫 단편영화 <50>는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선보였다. 2019년에는 넌버벌 코미디팀 ‘옹알스’의 미국 라스베가스 진출 도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옹알스>의 제작과 공동 연출을 맡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물론 이런 내용을 모두 영화에 담았다면 완전히 다른 장르가 되었을 것이고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영화 <차인표>에서 차인표의 본모습인 것처럼 그려지는 캐릭터도 결국 대중이 가진 환상을 이용해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배우에게 이미지는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차인표>는 자신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배우의 이야기를 과장된 연출을 통해 가볍게 풀어내며 차인표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코미디 장르인 만큼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지만, 스크린 뒤에서 묵묵히 흘러갈 차인표라는 배우의 시간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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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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