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요 [사람]

글 입력 2021.03.2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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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니까요


 

영화감독~~?? 너 돈 많아?

그냥 취미로만 해~

내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처음 들었던 말이다.

 

내가 꾸는 꿈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일까? 꿈이 뭐라고, 단지 꿈만 꾸겠다는데 주위에서 아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한국 사회는 그렇다. 적어도 내게는 항상 꿈을 막는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바야흐로 사춘기를 달리고 있을 때 나는 너무나 글이 쓰고 싶었다. 글도 안 쓰면서 문예창작학과가 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말로 글을 썼고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글 쓰는 것을 취미로만 남겨두어야 했다. 이유는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게는 너무나 설득력 있는 말이었고 그래서 나는 글 쓰는 것을 취미로만 남겨 두었다.

 

그렇게 다른 일을 하면서 마음 한 켠으로는 항상 글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자 나는 방황했다. 끊임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만 했고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도 내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 안의 세심한 감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글 쓰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었다. 온전히 거기에 모든 걸 쏟아부을 순 없었지만, 내가 지나온 방황들, 나만이 가진 경험들이 오히려 글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특히 내가 호주에 잠깐 살다 왔을 때, 호주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고, 맨발로 마트를 걸어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무렴 어때’ 라는 마인드가 생긴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회를 처음 경험해 본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영화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비평가,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내 생애 이렇게 빛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내게 좋은 도화선이 되어 주었고 나는 내 글이 시나리오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이 좋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극작 수업을 듣고, 영화 워크샵을 다니며 영화를 만들어보고, 30페이지 가까이 되는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더 이상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두렵지 않게 된 것이다.

 

 

 

바퀴벌레 히어로


 

소설은 자세한 묘사를 원한다. 그러나 장면을 상상하면서 글을 쓰던 내게 자세한 묘사는 어려운 일이였다. 묘사를 하다보면 내가 상상한 장면이 금방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글을 적는데 부족함을 느끼던 와중 써 본 시나리오는 잘 맞는 퍼즐조각 같았다.

 

다음 시나리오는 내가 영화감독과 현실을 고민하고 있었던 시기 썼던 시나리오다.

 

바퀴벌레를 전문적으로 잡아주는 수진.

꿈과 현실중에서 고민하는 미연.

미연에게 수진은 바퀴벌레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나타나 혼비백산 하게 하는 존재.

 

 

S#1. 미연의 집/내부 – 낮

 

미연이 팔짱을 킨 채 수진을 바라보고 있다.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머리띠로 머리를 힘껏 넘긴 사람이 침대 밑을 납작한 자세로 미연의 방에 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선글라스가 걸쳐 있다.

 

S#2. 제목. <바퀴벌레 히어로>

 

S#3. 미연의 집/외부 – 낮

 

미연이 집 밖에서 친구 호정과 통화중이다.

 

미연: 야 나 집에 바퀴벌레 나왔어(울먹)

아 나 진짜 어떡해… 나 집에 못 들어가…. 오늘 공부할 것도 많은 데 어떡해

호정: 아니… 잠깐만…. 야, 너 당근마켓에 올려보는 건 어때?

미연: 당근, 뭐?

호정: 요즘 그런 게 있대. 바퀴벌레 잡아주고 그런 거.

미연: 이 상황에 장난 치고 싶어?! 일단 내가 해결해볼게.

 

미연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cut to)

(핸드폰)

미연: [바퀴벌레 잡아주실 분. 사례합니다.]

미연은 다 쓰고나서 자신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쉬지만 그 때 알림이 온다.

 

(소리) 당근!

 

(핸드폰)

수진: [지금 갈게요. 총 세 마리 까지 잡아드리구요. 일당은 2만원입니다.]

---

S#8. 미연의 집/내부 – 낮

 

다시 집으로 들어간 미연.

책상에 그리다 만 그림과 물감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인다.

 

수진: (전화벨 소리) 네네. 바로 갈게요. 네.

미연: 일이 또 들어오셨나 봐요?

수진: 네, 단골 분이세요.

미연: … 그 전엔 무슨 일 하셨어요?

수진: 아무것도 안 했어요.

미연: 네? 왜요?

 

수진: 죽으려고 했거든요.

 

S#9. 하얀 벽.

 

(소리) 미연의 비명소리.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미연의 물감들이 책상에 쏟아진다.

하얀 벽에 검정색 물감이 튀긴다.

 

S#10. 미연의 집/외부 – 낮

 

미연: 이상한 사람이였어, 어… 나 그림 다시 그릴까?

호정: 뭐? 왜?

미연: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재밌었던 거 같아.

호정: 그냥 취미로 하지 그래?

미연: 바퀴벌레 히어로도 있는데 난 왜 취미로만 해야 돼?

나 그림 그릴 거야. 그냥 그럴 거야.

 

 

위 시나리오의 제목은 <바퀴벌레 히어로>이다. 한 때 당근에 바퀴벌레를 잡아주면 사례를 한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수진이 죽기 직전 바퀴벌레를 잡아주는 일을 시작한 것, 미연이 공부를 그만두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이 둘의 이야기로 말하고 싶은 건, 사소한 일 이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허무맹랑해 보이고 사소해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 우리가 그걸 하찮다고 감히 치부할 수 있을까? 그게 그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도, 그냥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붕어는 멍청하지만 행복하다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그 곳에 인공 개울가가 있었다. 많은 금붕어들이 있었고 나는 그걸 찬찬히 들여다봤다. 금붕어가 길을 가는 데 어떤 바위에 부딪혔었다. 아프겠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금붕어는 바위에 부딪혀 틀어진 방향으로 다시 헤엄쳐 갔다.

 

그 때 나는 어라 싶었다. 분명 아까부터 가야할 길이 있었던 거 같은데 틀어진 데로 가버린다고? 그래도 되는 거야? 처음엔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부러웠다. 틀어진 방향대로, 물살을 타고 나아간다면 아프지 않고 더 많이 나아갈 수 있겠구나 했다.

 

완벽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나아가면 된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은 없다. 그 길조차 틀어짐의 연장선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선포한다.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박소희 태그.jpg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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