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노트 Sigak] 9. 전시회를 찾아가는 건 여행과도 같은 일입니다.

낯선 미술을 둘러싼 무겁거나 가벼운 마음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21.03.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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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잠옷 차림에 머리를 한껏 올려 묶고 집요하게 노트북 화면을 훑어보는 사람이 있다.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리다가 다시 올린다. 이미지를 클릭해 화면 여러 개를 띄워 놓는다. 지도가 켜져 있는 핸드폰과 노트북을 번갈아 만지고 있는데... 그런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지났다. 분명 내일 보러 갈 전시만 고른다고 했는데.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잠시 뒤돌아 나를 보더니 “그냥 다 그만둘까”라며 실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이렇다.

 

“이번엔 어떤 전시를 봐야 할까. 이쪽 지역을 가 볼까. 이 전시는 어디서 하는 거지. 아, 이 근처에서 하는구나. 다음 달까지고... 혹시 예약 필요하나?(코로나19 이후 추가된 질문이다) 다른 전시도 함께 봐도 되려나. 체력이 되려나... 아 맞다 예약, 초록창에 한 번 검색해보고, SNS 계정이 따로 있는지 확인해봐야지. 날씨는... 걸어 다니기 나쁘지 않네. 가는 데에는 40분이 걸리고, 이동하는 시간 아까우니까 근처에서 작업할 곳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 아, 공간이 몇 시에 오픈이지? 그럼 이때 출발하고...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지...”

 

이 사람, 전시 보는 일에 꽤 진심이다. 아니 그냥 하나 딱 골라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가끔 보면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꼼꼼한 것 같기도 하다. 뒤에서 쏟아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근데 그렇게 갔는데 그날은 열지 않다거나 갑자기 오픈 시간이 미뤄지면 얼마나 곤란해지는지 아세요? 거기까지 갔는데 갑자기 목적을 잃는 거잖아요...” 그렇다, 그가 조금 지나치게 된 데에는 조금 안 좋은 추억 몇 개가 있던 탓이리라. 게다가 안 가본 곳을 찾아다녀보고 있어서 처음인 만큼 알아보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단다. 그 과정만 봐도, 안 그래도 낯선 미술, 그것이 놓여있는 낯선 곳을 찾아가려는 그의 마음은 가볍다기엔 꽤 무거운 형태처럼 보인다. 그 무게가 그를 전시 보는 일에 진심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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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러 가는 건 여행 같은 일이라 생각하곤 해요. 일단 가보지 못한 세계에 접근하는 일이고요,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감상이란 걸 한다면 그 세계와 소통하는 일이 되겠죠.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 돌아다니며 그곳의 문화를 이해해 보고 나만의 경험을 찾아가는 여행과 꽤 닮은 것 같지 않나요?” 음 그러니까, 단지 미술이 우리에겐 이상하게 더 낯설고 기묘한 존재일 뿐인 거죠. 사실 그게 저를 움직이게 해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객관적인 설명이 아니라, 자유로운 예술이기에 비로소 드러나고 소통되는 부분들이 있음을 깨닫곤 하거든요. 그런 순간이 궁금하고, 그런 소통을 경험하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어... 혹시 공감되시나요?


공감이라... 일단 미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건 알겠다고 했다. “그렇죠, 그건 맞는 것 같아요. 음... 정말 여행이라 생각하면 제 마음을 이해하기 조금 쉬울지도 몰라요. ‘제가 볼 수 있는 세상’이나 ‘소통할 수 있는 언어’ 같은 것이 예술이라는 다양한 관점과의 만남과 공감하려는 시도를 통해 확장되는 걸 느끼거든요” 그저 그런 세계와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물론 솔직히 말하면 봐도 봐도 모르겠어서 모호한 기분만 안고 나올 때도 많지만... 뭐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그의 말을 들으니 미술을 향한 - 적어도 그의 - 관심의 이유는 아주 특별하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살아가며 어떤 성장을 하고, 어떤 사유를 하고, 일련의 지속적인 경험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위해 그가 선택한 건 ‘미술’이란 것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뿐일지도 모른다. 뭔가 더 묻고 싶은 것이 생기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에 대한 관심만으로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냐고 물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네, 부담스럽죠. 이걸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해서 더 그렇고, 전시 보는 것 자체가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니까 힘이 들죠(그는 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할 지경이라 한다). 제가 또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요,” 효율적이지 못해 바보같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 말 끝을 웃음으로 날리며 마무리한 대답치곤 솔직한 고백이었다.


“근데 뭐든지 계속 관심을 가진다는 건 필연적인 노력을 수반하잖아요. 특히 그 관심을 누군가에게 나눠주려 한다면 주변도 함께 살피며 마음을 쏟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좋아함은 ‘노력하는 일’이에요. 그 노력하는 일은 좋아함을 지키는 일이기도 해요. 분명 이유가 있기에 감당하기로 한 일이에요. 일어나는 기쁨을 알기에 감당하는 마음이기도 하고요.” 어... 저도 모르게 다른 것도 아니고 ‘감당하다’라는 동사를 써버렸네요. 미술은 어쩌면 제가 선택한, 제 영혼의 중심을 잡아주는 추 - 영혼이란 말은 거창한 것 같지만 어쨌든 - 그런 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잠자코 듣던 나는 낯설어서 유독 귀에 깊이 파고들었던 단어에 대해 물어봤다. “그럼 그 기쁨이란 게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세상을 보는 시선의 확장’ 그런 것에 대한 건가요?”


“그것도 맞고, 지금까지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분명 다양한 기쁨이 있겠죠,”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입을 뗀다. “아까 제가 가진 게 무거운 마음이라 표현했잖아요, 그럼 오늘은 반대의 것을 말해보고 싶어요. 그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어떤 일들이 제게는 기쁜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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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술관이 아닌 다른 곳으로 전시를 보러 간 날.

눈치 잔뜩 보면서 망설이다 겨우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가벼운 마음" 꽤 오래 이어지고 있는 나의 화두다. ‘가볍다’는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의 의미로 읽어보려 하는 중이다. 한 번 알아보고 싶은 마음,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 엉뚱한 질문도 나누어질 수 있는 분위기, 그런 것 말이다.


어떤 것을 집요하게 좋아하고 파고드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꼭 운명처럼 주어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은 그걸 좋아하기 위해 태어났구나” 같은 느낌, 재능이나 감각이란 게 타고난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하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삶 속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것에서 피어나는 ‘좋아함’은 어떤 형태로든 모두 ‘0의 무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번 해볼까?”라는 말로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는 ‘0의 무게’. 그러니까 그런 마음은 이미 다양한 무게를 잔뜩 쌓아올린 마음과는 다른 시작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것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이 지닌 무게의 정도로 누군가들의 관심이 지닌 가치를 가늠하고 측정하는 것만큼 무용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다른 가능성과 의미를 품었을 뿐이고, 다른 지점에서 기회가 생겨 그 시작을 밟아보았을 뿐이니까.

 

*

 

이토록 무거운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는 내가 기쁨을 얻는 순간의 많은 부분은 ‘가벼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일들에 있다. 조금 더 일상적인 기쁨은 그런 곳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저 “조금 더 먼저 좋아하게 돼서, 이걸 좋아하기로 해서, 조금 더 찾아다녀보고, 조금 더 생각해 봤던”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 ‘조금’을 노력을 더해 의미 있게 이야기해보려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저 누군가의 작은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 낯선 곳으로 다가가보려는 시도가 생경함에 방황하다 곧바로 시선을 거두지 않도록 잠시 함께해 주는 일 말이다.


“미술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네가 다니는 전시회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라는 말에는 많은 경우 이런 말이 덧붙여진다 “그러고 싶어도 뭐가 있는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친구들이 보기엔) 별 희한한 전시를 찾아다니는 내게 이따금 전해지는 소중한 말들이다. 전문가 앞에서는 그저 자유로운 감상과 사유를 추구할 뿐인 한 명의 관객일지언정, 낯선 미술에 다가가보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가장 가까이서 그 생경한 순간을 함께해 줄 수 있는 친구로 존재한다. 매일 방황하면서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이 서투르고 무거운 마음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들을 거절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한 친구의 표현을 빌려오면 아예 “전시 메이트” 같은 걸 자처한다. “제발 나를 얼마든지 데려가렴” 농담 반 진담 반 (그러나 진심으로) 부탁한다. 내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물어봐 준다면 알고 있는 건 말해줄 수 있다고, 혹시 그런 거 관심 있으면 이런 전시 열리기도 하는데 한 번 같이 가보자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떠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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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의 혼자 전시를 보러 다녀서 내가 찍힌 사진이 많이 없다.

코로나가 얼른 끝났으면.

 

 

그래서 기회가 닿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전시회를 찾아가 본다. 홀로 전시를 찾아다니는 것과는 다른 결의 기쁨이 있는 여행이다. 가벼운 질문과 나름의 생각이 오가는 시시콜콜한 대화 속에서, 미술에 관한 어떤 내용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영역에서는 잘 들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과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그것은 내게 새로운 고민거리로 안겨지기도 하는데, 요즘 나의 묵직한 마음은 가벼움에서 피어난 이 다채로운 색채의 무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충분히 기억하고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다양한 형태의 관심과 좋아함이 지니고 있는 ‘무게’를 나누는 일은 “그만큼 가지고 있기에 그만큼 줄 수 있다”는 논리를 넘어서는 것 같다.

 

*

 

잠시 내 이야기를 해볼까. 미술을 향한 나의 ‘0의 무게’는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사실 정말 별거 없다. 학점을 채워야 하는 데 재미없는 건 듣기 싫고, 뭔가 흥미로워 보여서 미술사 교양 강의를 선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더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던 내게 첫 덩어리를 훌쩍 싣게 한 건 다름 아닌 전시회 감상문을 작성해오라는 과제였다. 나는 성실하게도 아무 조사 없이 교수님이 추천한 전시회로 직진했고, 거기서 고흐의 작품을 만나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직진해서 덜컥 미술사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마음과 그저 일어났을 뿐인 우연의 더할 나위 없는 중첩의 하모니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해버린(?)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의 ‘0의 무게’는 감사하게도 미술에 한 껏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우연으로라도 가질 수 있었다. 전시회 한 번 가보라는 교수님의 제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순진한 애정은 어느 순간 그걸 삶의 무엇인가로 잡겠다고 다짐한 나에게도 꽤나 벅찬 애증으로 진화했다. 희로애락을 잔뜩 응축한 이 좋아하는 마음이란 걸 지금도 붙들고 있다. 이제는 힘들다고 놓아 버리면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유의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지금 하는 것 외에 다른 걸 하는 내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


좋아한다고 정의한들, 회의적인 생각이나 후회 같은 것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당장 최근에도 전시 리뷰 같은 걸 쓰다 일명 ‘현타’가 와서 잠시 모든 걸 멈추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려운 질문이 생겨서 사실 지금도 조금 (많이) 힘들다. 정말이지, 너무도 애증이다. 그래도 사랑 반대편에 있는 이 미움은 사랑이란 걸 다시 진심으로 바라보도록 나의 시선과 질문을 확장해 주기도 해서, 매번 힘들어도 돌아볼 때가 되면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저 그런 마음으로, 이 무거운 걸 오늘도 보듬는다.


물론 나의 노력으로 모든 ‘0의 무게’가 무거운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의무까지 짊어지며 생각하진 않는다. 앞서 말했듯, 가벼운 무게의 것도 분명 이미 그 자체로 그것만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저마다 다른 다양한 무게가 서로 소통하며 거리낌 없이 공존하는 장면을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고 생각해 보고 싶다고, 가끔 떠올리곤 한다. 지금의 내가 나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지닌 사람과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고, 가벼운 무게를 지닌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 어쩌면 그저 평범할 뿐인 -  풍경 말이다. 누군가는 필요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단순한 마음으로 그런 걸 애정 속에서도 답답함에 일어난 방황 속에서도 그려보곤 한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찾아온 의미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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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요즘 ‘다정함’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어요. 다정함... 다정한 사람... 참 좋지 않나요? 제가 굉장히 어색해 하던 단어였거든요. 저는 낯을 가리면 지독하게 가렸지 누군가에게 다정한 사람은 아니어서요. 근데 적어도 글로 무엇인가를 말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다정하게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 뭔가 그런 마음이 더 많은 것을 조금 더 진심으로 마주하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참내, 이런 글까지 쓰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러고 싶나 봐요. 사실 내가 좋아하는 미술에 그런 다정함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단정해버리고 말만 술술 하는 사람보다, 혹여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거라 해도 그런 작은 것도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게 더 좋거든요. 안 그런가요?


근데 이렇게 고백하고 나면, 전혀 답지 않게 욕심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부끄러워요. 가볍게 쓰려 했는데 또 6000천 자예요. 이런... 그냥 지금까지 나눈 거 다 지워버릴까요?”


“아뇨, 그리고 이루고 싶은 바람이나 무엇이 되고 싶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뭐, 언젠가 그렇게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거 당연한 말인데 되게 안심되네요. 하긴 그런 사람 세상에 먼지같이 하나 있으면 뭐 어때요,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고 싶다는데. 그게 바람이라는데...”


“맞아요. 그러니까.... 이런 대화도 하나 있으면 뭐 어때요. 미술 그거 하나 두고 곁에서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고, 그렇게 많다는데요. 그냥, 지우지 말고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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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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