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역을 떠나는 이의 소회 - 출판저널 521호

글 입력 2021.03.1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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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전라남도 나주다. 7년 전, 나주에 혁신도시가 세워지면서 아버지가 근무하는 공공기관이 이곳으로 이전하여 우리 가족은 이사를 왔다. 당시에 이 지역은 마치 유령도시와 같았다.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온라인으로 배송을 시켜야만 했으며, 주거단지 말고는 철골을 드러내며 하늘을 향해 지어지는 건물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 흔한 학원이나 식당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도서관이나 영화관 같은 문화 시설도 전혀 없었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극심한 문화적 결핍을 느꼈다. 이 지역에는 도서, 공연, 전시, 영화 등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마땅한 시설이나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양질의 문화적 체험을 원할 때마다 약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다.


지역 문화와 우리 삶은 밀접한 연관을 이루고 있다. 단단한 문화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함께 생동하는 삶을 누리기 어렵다. 백범 김구는 자신의 ‘문화강국론’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문화의 힘’이라 말했다. 문화 개발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소일거리가 아니다. 질 높은 지역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지역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다. <출판저널> 521호의 특집좌담에서는 이러한 지역 문화의 맹점을 지적하며 어떠한 해결책을 통해 문화와 출판의 생명력을 높일 수 있을지 의논한다.


이번 좌담에서 줄곧 이야기된 것은 지역 문화의 ‘주체적인 독립’이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서는 고유한 문화를 개발하고 훌륭한 인재를 위해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움직임이 적다. 그러니 양질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은 수도권으로만 집중되어 어느새 ‘서울 공화국’이라 불리는 기이한 사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선해야 할까.


우선 출판, 독서, 예술과 같은 문화요소를 지역에서 오롯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김정명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지역출판과 독서문화>를 통해 지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출판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출판은 ‘Publishing’, 즉 저작물을 복제하여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향유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이는 비단 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유튜브나 TV 프로그램부터 시작하여, SNS를 통해 콘텐츠를 나누는 모든 행위가 출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오프라인으로 책을 구매하여 읽는 것이 출판의 본질이라 여겨졌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출판업계는 온라인 도서 유통 전쟁에 돌입했다. 독자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경로로 출판 산업을 나누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즉, 이제는 출판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의 확장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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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역출판’의 중요성은 무엇일까. 출판은 생존의 기록이다. 우리는 출판을 통해 지역의 문화를 기록하고 특정한 시대정신을 후세대에 전승할 수 있다. 그렇기에 출판과 책문화에 대한 지역 구성원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역출판을 토대로 삼아 지역의 고유한 문화가 살아나면 교육이 살아나고,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배움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역 구성원으로서 문화산업에 단순한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는 현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길만 교수에 따르면 최근 생겨난 지역문화진흥법을 기반으로 국가에서 각 지역에 책정한 문화재정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해당 법에 따라 만들어진 지역문화진흥 5개년 계획에서 지역출판과 지역의 독서문화는 다루지 않는다.


양질의 독서환경은 모든 지역 구성원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며, 독서는 모든 문화예술의 기초가 되기에 빼놓지 않고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놓친 정책이 문화의 발전을 논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렇기에 해당 지역 구성원들의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문제 제기 및 의견 개진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입시교육의 정점을 이루었다. 유명한 학교와 좋은 회사에 다니기 위한 개인의 움직임은 마치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움직이듯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나 또한 거대한 교육 체계 안에서 진로를 선택했고, 이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마음속으로 들어온 문화예술에 대한 설렘은 나를 움직였고 지금은 대학을 휴학한 후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지역은 내가 배우고자 하는 예술 교육을 주도하는 시설이 거의 없고, 다채로운 공연이나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곳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역출판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도서관과 시민들의 노력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질 좋은 문화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교육과 문화의 측면에서 더 빨리,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자 며칠 전 서울로 올라가 부동산을 통해 보금자리를 구하고 이사 일정을 잡았다.


상경한다는 것이 일종의 도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역 문화의 부족함에 실망을 느껴 더 나은 곳으로 가기로 했지만, 이는 결국 지역 문화 활성화에 반대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저널을 읽고 난 후에 참 많은 생각과 고민이 들었다. 개인의 삶을 이끄는 것은 결국 문화라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도, 앞으로 우리 지역의 출판과 문화적 기반이 마련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2021년이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는 성장하고 있지만, 공동체에서 결핍되어 부족한 부분은 여실히 존재하기에 함께 퍼즐을 맞추어가듯 하나씩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니 각자의 삶을 반추하자. 그 삶을 이끄는 문화의 저력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내가 사는 이 지역을 돌아보자. 비록 작은 관심과 외침이더라도 언젠가는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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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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