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인, 죽음을 이야기하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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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혔으나 쉽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이미지에서 오는 뭔가 생소한, 낯선 감각 때문에 몸을 떨었다. 시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죽음이 표현하는 죽음은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래서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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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그 자신도 죽음의 감각과 가까운 경험을 한 바 있고, 동시에 이 시대 또한 죽지 않은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죽음이 범람하는 시대로 보았으며, 이러한 죽음의 감각에 휩싸여 이 49편의 시를 펴냈다고 한다. 7주간의 동행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난 후에 영영 이별하듯이, 49일 동안의 발자국을 통해 쏟아낸 감정들이 더 이상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홀린 듯 열정적인 시 쓰기 끝에 남는 것이 공허함이라면 기쁠 것이라는 말에서 죽음이 가진 속성이 그 이외의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알았다.

처음에는 평소의 나의 방식대로, 무조건 이해하려고 했다. 이 시는 분명 시인이 특정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썼을 것이라는 사실만에 천착하여 그 막연한 대상을 찾아내려는 호기심을 불태웠다. 그 결과로 간혹 드문드문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순간에는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단지 그 뿐. 죽음과 단 한 치도 가까워본 적이 없는 사람인 내가 '이해'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대로 그들을 깨달아 알고, 잘 알아서 받아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월호의 죽음을 다룬 <동명이인>과 <간 다음에>에서 '살아있는 자'인 시인 역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빌리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을 마다하고 기꺼이 타자가 되고자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싣지 않는다.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굴복하지 않은 그에게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항상 싸움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두 집단 간의 대립에서부터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해와 평가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관망하고 애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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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은 흔히 여성주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시집에서만큼은 이러한 그의 기존 행보와 완전히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많은 부분 시의 소재가 엄마, 손녀, 할머니, 또는 그 외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49개의 이야기들 중 몇 가지 시의 '소재'로만 다루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해당 시집의 그리핀 상 수상에 대한 의미를 어떤 평론가는 ‘기존의 한국 문학이 남성 작가의 큰 이야기 중심으로 세계에 소개되어 왔다면, 김혜순 시인의 수상은 한국의 여성적 발화가 어떻게 강력한 동시대 보편성을 갖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 칭했다. 여기서의 여성이란 표면적인 뜻의 여성이나 생물학적인 여성(女性)과는 다른 것이다.

 
여성적인 것이란 기존의 ‘남성 문학’으로 대변되는 주류 문학에서 벗어나 분류법 자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서 발견되는 힘이라고 새롭게 정의 가능하다. 비단 「죽음의 자서전」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도 하찮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했던 김혜순 시인은 이러한 ‘여성 문학’을 하는 사람들 중 단연 선두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하다. 앞서 내가 시에서 묘사된 죽음의 이미지를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한 것도 아직 은연중에 나에게는 먼 일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생소한 이미지에 다름 아니고, 따라서 주로 소외된 죽음을 다룬 이 시들 역시 기존의 문학에서 자주 논외의 영역에 위치해 있던 주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일종의 여성 문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서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어왔던 이러한 주술적 언어들을 소통의 장으로 끌어올린 시인의 손아래에서 죽음은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라도.
 
 
[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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