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 첫 휴학, 그리고 마주한 아노미 [사람]

휴학에서조차 '결과물'을 추종하진 말자
글 입력 2021.03.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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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미 : anomie]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하여 일어나는 혼돈상태 또는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의 무규제 상태. É. 뒤르켐은 이 말을 일정한 사회에 있어서,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인생 첫 휴학, 그리고 마주한 아노미


  

아침에 일어나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와플을 먹었다. 어젯밤 사온 와플이라 눅눅해져도 안에 들어가 있는 잼만큼은 제 맛을 발휘했다. ‘그래, 이 맛이 좋긴 하지.’ 와그작와그작. 냉장고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아침을 때웠다. 아침을 먹고나서는 곧바로 토익 듣기 연습을 했다.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동시에,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높은 '성적'을 얻고 싶어서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허나 오히려 요즘에는 토익 공부에 대한 사기가 떨어졌다. 계속해서 비즈니스 관련 어휘만 외우고, 딱딱한 사무 회화만 듣고 문제를 푸니 영 재미가 없다. 휴학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선택지의 정해진 정답, 오답만을 가려내니까 스트레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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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을 해서 자유를 쟁취하고 자유를 누리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 막상 쉬려고 하니까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학 이전과 다름없이 무언가 '결과물'을 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진정으로 '나를 위한 휴학은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아야 함을 느꼈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삶은 무엇 일지에 대한 뼈저린 사색이 필요했다. 지금은 학교라는 울타리 밖, 즉 안전 지대(safe zone)의 밖에 와 있다. 쉽게 말하면 학교라는 우물 밖으로 나왔다. 정해져 있는 시간표, 도달해야 하는 과제와 시험의 범위. 이런 것들이 날 옥죄어 오지 않는 곳이다.


가족들에게 휴학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휴학을 잘 보내야 한다” “계획을 잘 세워서 시간 낭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 치의 거부감도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반대로, 휴학을 하는 중에 시간 낭비를 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시간 낭비란 무엇일까? 나에게 시간 낭비란 <결과를 내지 않는 시간 = 낭비>로 정의되었다. 지극히 성과주의, 결과주의적인 시각이고 과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간과한 마인드이다.


그래서 휴학의 목표를 다소 무리하게 잡았다. 남들에게 말한 나의 목표는 주요 어학 성적 모두 따기였다. “토익, 토플, 토스, 오픽에서 모두 높은 성적을 얻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 목표들이 생긴 이유는 나의 내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남들에게 증명할 성적과 명예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즉 외적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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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이 목표들은 휴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포함된 목표가 아니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휴학을 선택했던 것은, 좋아하는 것 혹은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편히 그리고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높은 어학 성적 획득만을 휴학의 목표로 세운 것은, 그 속에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특성을 말살하는 행위와 마찬가지였다.

 

 

 

숫자라는 결과물이 아닌, 있는 그대로 '나'로 살아가자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결과를 내야한다는 의무감에 갇혀있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쳇바퀴만을 돌리던 그 관성에 젖어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의 굴레를 돌린 끝에 내린 결론. “그냥 좀 힘을 빼자.”

 

휴학 생활이 성공적이어도, 실패할 지어도, 이도저도 아닐 지라도 인생이 올 해 끝나는 것인가? 2021년이 내 인생의 마지막 해가 아닌데, 무엇하러 나를 이렇게도 옥죄고 결과를 내야한다는 채찍질을 해야할까. 그냥 인생에 한 번쯤은 ‘자유롭게’ 살아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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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학기 중에는 하지 못했지만, 꼭 방학이 되면 하고 싶었던 것들. 유튜브 채널 확장하기, 춤 배우기, 원없이 책읽고 글쓰기, 건강하고 탄탄한 몸 만들기.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떠올린 후, 굳게 다짐했다. 나를 위한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틈틈이 취미 생활을 즐기고 나의 재능과 관심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며,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기로 다짐했다.

 

그냥 힘을 빼고, 내가 가진 호흡을 느껴보자. 숫자라는 결과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보자. 지금 내가 느끼는 혼돈은 성과주의 공장에서 자유의 낙원으로 이동하던 중에 겪는 과도기다.

 

곧 나는 자유를 만끽할 줄 알게 될 것이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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