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보통의, 나의 결핍을 채우는 시간 [만화]

대가 없는 사랑은 존재한가
글 입력 2021.03.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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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시작은 간단했다. 회사를 그만두신 아버지가 어느 날 서점을 차리셨다. 그러나 본인에게 안 맞으셨던 모양인지, 몇 년 하시다 접었고 우리 집 책꽂이엔 책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바깥출입에 엄하셨던 분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집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잡았던 책은 넘쳐나는 시간과 함께 나에게 중학교 입학하기 전 집안 천장까지 꽉꽉 채운 책장 5개의 모든 책을 읽게 했다.

 

칭찬에 인색하셨던 분이 책 읽는 내 모습을 뿌듯해하신 것도 있고 위인전기마저 재미를 느껴버려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항상 공란이던 나의 장점은 독서가 되었고 취미에는 독서가 추가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관심이 보통 또래와 다르게 된 계기도 된다. 성인이 되어 어느덧 곧 서른이라는 나이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종종 아직 대학생인 동생에게 말씀하신다. ‘너 언니는 집에 쌓인 책 전부 다 읽었어.’ 그럼 동생은 맘에 들지 않는 얼굴로 무시해버린다. 나도 별말은 하지 않는다. 정말 그때 독서량 덕분인지 교내 글짓기상도 여러 개 받았었다. 상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행위를 즐겼다.

 

또래와 다른 관심을 두고 있어 사실 재밌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자극을 받지 못했을까? 그 시절 연예인 얘기도 흥미 있는 척, 뭐 열심히 노력해도 성격이 성격인지 관심 없는 것이 금방 들통났다. 사회성 결여가 아닐까 굉장히 나 자신에게 의심도 했을 시절, 사춘기 시절 나에게 크나큰 교우관계의 시련이 왔고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나는 나를 버렸다. 그래서 숨기 시작했다. 연기는 완벽했다. 

 

그다음은 쉬웠다. 정말 쉬웠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책은 이제 도구로써 나의 발돋움이 되는 발판이 되었고 더는 나의 흥미는 아니었지만 나를 버리는 대가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으며 채워지지 않는 나를 채울 수 있었다. 점점 나의 글은 붕 뜨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사랑받을 수 없는 걸까? 나는 이것을 통틀어 ‘사랑’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누군가에겐 관심이고, 흥미이고, 자부심, 동기 등등, 혹은 일상이거나 전혀 와 닿지 않는 표현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왜 시작했는지 궁금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남 얘기’다. 내 얘기지만 남의 얘기라는 이 이야기는 다음 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이토록 보통 작품 중 하나의 에피소드 제목이다. 벌써 300회에 다다른 웹툰으로 느린 호흡으로 연출과 스토리를 이어간다. 휙휙 내리는 게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를 담으면서 작가가 표현한 연출을 즐기는 웹툰이다. 작품의 기본적인 소개로 ‘특별하지만, 보통의 연애’라고 쓰여 있다. 사랑 이야기지만 사랑만을 다루지 않는다. 감정을 다룬다고 표현하고 싶다. 장르는 드라마, 순정, 사랑으로 수채화 같은 그림체에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겠다. 이미 이 웹툰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의 이야기와 남 얘기의 연결고리는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다. 남 얘기와 나와의 연결 고리는 ‘글’이라는 소재지만, 당신과 남 얘기의 고리는 사랑이 될 수도, 인정될 수도,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이 에피소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가 없는 사랑은 존재하는가, 혹은 트라우마 또는 결핍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

<이토록 보통의> 에피소드 中

남 얘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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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남 얘기의 주인공인 조는 사 남매의 셋째로 첫째인 오빠 솔과 둘째인 언니 베이지에게 밀렸고, 또 아픈 막내인 에디에게도 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얼굴도 잘생겨서 학생회장까지 하게 된 오빠는 아빠의 자랑거리였고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엄마의 재능을 닮아 훌륭한 피아노 솜씨를 가진 언니는 엄마의 꿈이었다. 그리고 아픈 에디는 모든 가족의 마음 한구석에 지긋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조에게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주는 에디는 그나마 그녀의 작은 안식처다. (사실 내가 보기엔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조가 유일하게 자신이 우위라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왜냐면 침대에만 누워있는 에디의 세상은 언니 조이다) 유난히 깡마르고 특별한 재주도 없는 조는 자신이 정의한 관심 시장이란 곳에 도태된 인물이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런 조가 유일하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 커뮤니티 내 만화 카테고리다. 나름 네임드 작가로 어린 나이에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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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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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수업 내 회화 시간이 있었는데 영어 회화로 착각한 조는 미술 도구가 없었다. 옆자리 담에게 빌렸으나 담은 본인의 연필을 분질러 준다. 하지만 조와 같이 도구가 없어, 연필을 빌리는 킴에게는 연필 한 자루를 통으로 준다, (남 얘기 7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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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어느 날 자신이 네임드 작가인 것을 알게 된 학과 동기 ‘담’(본인과 같은 처지의)과 특별한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학과 내 유명한 킴의 등장으로 와르르 무너진 조의 꽃무늬 원피스는 무채색이 된다. (남 얘기 7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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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l 관심시장 : 조가 경제학 시간에 배운 ‘레몬시장’을 빗대어 표현한 시장, 불량품 = 레몬 = 관심을 쫓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레몬들 사이에서도 도태된 자신은 그들을 바라보는 엑스트라 시점으로 세상과 본인을 바라본다.

 

l 레몬시장 : 구매자와 판매자 간 거래대상 제품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우량품은 자취를 감추고 불량품만 남아도는 시장을 말한다. Ex) 중고차 거래, 실제 웹툰 내에서도 사용된 예시 (남 얘기 3/4화 中)

 

 

조는 작가가 된다. 그렇게 그녀는 관심 시장의 상품이 된다. 굉장한 돈을 벌기 시작했고 가족 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조는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꾸미고 성형을 하고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방송도 출연하는 등, 가족의 자랑이 되어간다. 작가의 역량으로 이런 모든 내용은 하나의 시퀀스와 연결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진다.

 

명문대 진학 후 더는 천재가 아니게 된 솔과, 피아노 레슨을 해주던 대학생과 함께 집을 도망친 베이지 등 엄마 아빠의 시선이 비로소 작가가 되어 주목받는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느낀 조의 반응은 시원찮다. 경멸 아닌 경멸하는 시선도 쏘아준다. 항상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에디의 연락도 받지 못한다. 아니 안 받은 건가?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숨 막히게 노력한다. 어찌 보면 우리와 정말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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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노력하는 것처럼 어차피 사라지게 되는 홀씨를 붙잡는 조의 고군분투는 사랑받을 이유가 사라지면 모든 게 사라질 것을 안다 (남 얘기 12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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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해일처럼 넘치는 새로운 자극들을 처음 맞이하는 조의 인생은 속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는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했을 뿐, 그리고 그게 재밌었던 그녀는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일종의 게임이라고 표현한다. (남 얘기 12/13화 中)

 

 

만남의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한다. 감정을 믿지 않는다. 속이 텅 비었다. 부실한 속 공사로 인해 외관이 와르르 무너졌다. 조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조는 자신의 알량한 재능이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 얘기 13화 中) 내가 나를 버리고 채우지 않았을 시점부터 밑이 깨진 장독대에 끊임없이 관심의 파도를 넣었지만 전부 새고 만 것이다. 물론 하던 가락이 있어 일을 유지했고 겉으로 멀쩡해 보였을지 몰라도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 조는 사람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는 것처럼 숨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의문을 가진다. 나는 진짜 이 글에 나의 글을 채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겉면만 번지르르한 연기를 채우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질문한다. 아 물론 다른 사람 말고 나한테만.

 

그런 조는 한 사이트에서 연재를 시작했고 그나마 세상 담백한 담당자를 만나서 꾸역꾸역 일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조가 답변을 주지 않아 진행에 많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조는 이런 담당자의 인내심에 내심 놀라면서도 미안해하지만,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받아줘라! 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아주 간단한 의례적인 인사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처럼.

 

비록 주인공과 다른 결이었을지도 몰라도 나도 남들 모르게 동굴로 혼자 몰래 들어가 한동안 박혀서 나오질 않는다. 누군가 동굴로 찾아와 소리를 질러 메아리가 울려 퍼져도 절대 움찔하지 않는다. 물론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로지 내 책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 또한 잘 알고 있다. 숨이 막히게 노력하던 것들을 포기하기 시작한 조에게 나타난 YS는 처음을 알려줬다. 일평생 모든 걸 털어놓고 싶어져 버린 순간을 알려준 사람. 아마 처음으로 자신과 맞는 템포를 가진 사람을 본 게 아닐까 싶다.

 

본인과 다르게 빠르게 달려온 시간에 맞는 사람들에게 지쳐 구멍 난 마음에 더 작게 구멍을 만들어 버렸던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위로를 타인에게서 찾은 셈이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자신을 모두 집어먹을 더욱더 거대한 해일을 인생에서 처음 맞이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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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조는 무책임하고 뻔뻔한 이야기를 YS에게 실토하면서도 자신을 계속 타박하고 자신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YS의 눈치를 살핀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을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레몬도 아니라 이파리조차 잡지 못했던 조의 세상은 굉장히 좁았고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도,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기가 무섭다. 무서우니까 회피하고 덮었으며 무디어진다. 그런 나를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 얘기 7/16화 中)

 

 

“나는 사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닌 걸요, 노력하면 봐줄 만한데, 지금은 노력하는 것도 피곤하고요. 진짜 날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나 떠날 거예요. 실망하게 될 거고요. 그래서 나는 관계를 맺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노력 없이도 사랑받는 걔가 아니니까.”

 

“그런데 나를 미워하는 건 또 싫어요. 차라리 나를 친해지기에는 너무 바쁜 사람으로 보아주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해요. 그럼 누구를 실망시킬 필요도 없으니까 유리하죠….”

 

“난 이유 없이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데요.”

 

- 남 얘기 16 中 조의 고백

 

 

조는 영리하다. 눈치가 재빠르고 남들보다 먼저 앞서서 볼 수 있다. 투명한 진실을 원한다. YS에게 마지막 말을 내뱉고 새로운 등장인물로 인해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눈빛이 선한 YS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모난 부분에 최초의 위로를 받는다.

 

진심에 대해 알지 못했던 조가 YS에게 빠져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훅하고 홀연히 나타나 다정하게 진심으로 자신을 어루만져주었고 조는 YS를 의지하며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만의 속도로 관계를 진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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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그와 함께 있으면 석양이 지는 시간 즈음이 계속되는 느낌이었죠”


- 남 얘기 18화 中 조의 독백

 

 

감정과 자극에 다루는 것에 미숙한 조는 점차 불안함을 가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노력했던 것처럼 이것은 홀연히 나타났으니 언젠간 다시 사라지리라는 것을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일 때문에 바쁠지라도 그의 집에 말도 없이 찾아가는 등, 원하는 반응을 보지 못해 값비싼 물건을 자꾸 선물하거나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전달할 줄 모른다. 명석하기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속이 텅 빈 구멍은 도무지 진정할 줄 모른다. 나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지만 이내 또 나 자신이 되지 못한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조의 감정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감정이 부정적인 방향이든 긍정적인 방향이든 상관없다. 고가의 선물을 받으며 당황하던 YS도 그런 일이 반복되자 선물을 받고 더더욱 좋아한다. 물론 이 시선은 오로지 조의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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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어차피 나는 가지고 싶은 게 거의 없는 사람이에요, 사실 어릴 때부터 포기하는 게 더 익숙했던 나는 물욕을 모르는 사람이죠. 여러 가지 맛 비스킷 단지에서… 가장 인기 없는 맛을 고르는 아이였어요. 경쟁에서 이길 자신도 없었고… 또… 인기 없는 맛을 고르면 받는 조그만 칭찬도 좋았고요. (남 얘기 20화 中)” 얼마나 어릴 적부터 포기를 배웠던 것인가. 어른스럽다는 어른의 칭찬은 조에게 포기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겠지.

 

 

조가 찾은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위와 같다. YS는 과연 순수하게 모든 선물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녀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YS가 조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줬다고 생각한다. 선물을 받기 시작한 YS의 당황한 기색과 부담스러운 모습은 상당했다. YS의 감정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이야기는 조의 관점에서 서술되며 행동의 타당성을 부여한다. 위에 잠시 언급된 새로운 등장인물인 ‘김메리’(YS의 업무 관계자)로 인해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못하고 더 증폭된다. 점점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흘러간다.

 

조의 고의로 인해 YS는 직장도 잃고 조는 구멍을 메꾸지 못하고 더 키워버렸다. 조는 YS를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과 차단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근데 그마저도 만족하지 못해 못다 한 감정은 자신의 특기인 글로 모두 풀어낸다. 그러던 와중 막냇동생 에디가 세상을 떠났다, 잊고 있던 자신의 옛날 모습 그대로를 봐준 동생을 잃은 조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었다. 의욕뿐이 아니라 존재하는 이유의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사건을 저지른다. (남 얘기 25/26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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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글/그림 Carrot

 


“무서운 게 없는 건 용기 있는 게 아니야. 불안하고 두려운 삶 속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서 걸어 나가는 것. 그게 용감한 거야. 조... 넌 충분히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이야."

 

“나와 만나면서… 네가 자꾸 널 잃어버리는 것 같아. 원래 혼자서 꿋꿋하게. 글도 잘 쓰고, 삶을 열심히 노 저어 나갔던 사람인데 날 만나기 시작하면서… 자꾸 나한테 모든 걸 맞추고 너를 다 지워버리고. 그런 게 너무 속상했어.”

 

- 남 얘기 25/28화 中 YS의 고백

 

 

이야기는 이 모든 것이 운이 나빴던 미친 여자의 시시한 이야기라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지 모른다고, 잊어버리라 한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그저 남의 얘기인걸요. 부디 그랬기를 바래요. 라며 마친다. 혹여 이 글을 읽고 감상을 원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결말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흐름을 위해 극단적으로 몰아갔지만, 캐롯 작가의 작품 특징이다.

 

가장 소소하고 익숙하거나 흔한 감정을 주제로 이야기를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색다르게 표현한다.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주변 일상 이야기처럼 얘기한다. 나에게 질문을 던져준다. 이런 점에 꾸준히 독자로 남아있다. 다음에는 어떤 에피소드를 들고나올지 기대하며 시즌 휴재 동안 기존 에피소드를 다시 보는 등, 생각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게 한다.

 

*

 

조의 이야기는 당신과 다른 얘기이고 남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녀의 행동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감정의 깊이는 공감할 수 있다. 메꾸지 않는 블랙홀 같은 사람이 있다. 살면서 종종 보았다. 누군가에겐 나도 그런 사람이다. 나도 스스로 내가 블랙홀 같은 사람이구나! 를 느낄 때가 있다. 좋은 음식, 재미난 이야기, 뭐 자극적이거나 색다른 것으로 채워 넣어도 금세 사라지고 없다. 나는 조가 그러했다. 조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나 다운 사랑을 시작했으나 그것 또한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관계로 남아 끝에 파멸한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성인이 되어 어른이 되어가는 조의 인생을 갉아먹었다. 작가도 에피소드 마지막에 말한다. 누군가는 이런 상처를 금방 털어내고 일어서는 반면 누군가는 아직도 남아 끊임없이 괴롭히는 걸까? 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답변은 여러 가지다. (남 얘기. 33. 完) 비극적인 결말이나 시작은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왜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를 낮추게 되는 건지, 열등감은 어디서부터 생겨나는 건지, 이런 결핍은 어디서 생겨나 나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건지. 우리 모두 레몬이 되길 자처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에게 상처를 준 부모들도 지난날의 레몬이 아니었는지.

 

이 의문을 가지며 글을 쓰는 나조차도 아직 레몬 시장의 레몬이다. 이 글이 제대로 쓰이는지 사실 걱정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일지도 염려된다. 나 또한 주인공의 학창 시절과 다를 것 없는 이파리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나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다. 만약 조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이 문장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만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 라고 문장을 끝마칠 수 있었다면 조와 YS는 이것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글을 써 내려갈 때, 주인공과의 연결고리인 ‘글’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것도 맞지만 더욱이 말하자면, 과연 나는 내가 가진 결핍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돌보고 보듬어가고 있을까, 나다움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보통 글을 쓴다. 아니면 운동을 하거나 뭔가 의미가 남는 활동을 하려 노력한다. (지금 시작하게 된 아트인 에디터 활동도 그러하다) 활동에 대한 결과물을 남과 비교하면 끝이 없을 것이고 한없이 작아질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음미하며 만족하려 한다.

 

의미에 대한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고자 함도 있고 시작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겠다. 예전 쉬이 관뒀던 것을 다시 주워 담으려니 그리웠던 감정도 있고 어색하다. 내가 하는 이런 노력이 조가 했던 ‘숨 막히게 노력했다’에 포함되는 행동인 것은 맞겠지만 거기까지의 의미를 가져보려 한다.

 

다음 에피소드는 ‘데이팅 앱’에 대한 이야기로 에피소드 제목은 ‘화상 입은 선인장’이다. 아직 에피소드에 관련해 2화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확실히 무엇이다. 라고 말하긴 어렵다.

 

캐롯 작가는 누구나 느꼈을 감정과 소재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간다. 몽글몽글한 수채화 같은 그림도 분위기를 소담하게 살려준다. 아주 예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림이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는 예쁘고 동그란 말로 우리에게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독설한다. 바쁜 일상으로 텅 빈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웹툰 형식이라 크게 부담도 없고 전달도 빠르다. 이것으로 나의 첫 에디터 활동이자, 그에 대한 다짐. 또 문화 예술에 관련한 작품에 대한 느낌을 마치도록 하겠다.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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