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울' 바람이 분다, 또 하루 살아야겠다 [영화]

글 입력 2021.03.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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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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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과 결을 같이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본 영화 <소울>. 결이 비슷하다는 건 둘 다 전하는 메세지가 큰 틀에서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보는 통찰력을 심어주는 영화들이었던 건 분명하다. 다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떠오르는 게 '슬픔이 기쁨에게'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였다면, <소울>을 보고 나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점.


조카가 태어나고 보니, 갓 태어난 아이들이 저렇게 '세팅'된 채로 내려온다는 게 묘하게 이해가 간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타고나는 게 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 조카 녀석들은 차이점이 많다. 이목구비도 제법 다를뿐더러 한 녀석은 낯을 가리며 뒤로 숨거나 울어버리지만 한 녀석은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성큼 다가가 안기기도 한다. 미끄럼틀을 타도 정석대로 위에서 아래로 타기도 하고, 거꾸로 올라오기도 한다. 환경과 학습의 영역도 크지만, 저게 조카들의 '지구행' 티켓을 채우는 배지에 포함된 것들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배지를 서로 볼 수 있었으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을까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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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 안다는 표정


 

영혼 22는 너무 아는 게 많은 게 탈이다. 뉴 세미나에 거의 대부분의 영혼은 무척 빠르게 지구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고 태어날 준비를 했지만, 22는 예외였다. 말이야 태어나기 싫다고 했겠지만, 늘 좋았을 리가 없다. 주변에선 배지를 다 채우고 사라져 가고, 이제 여기는 익숙한 건 투성이고, 모든 것들을 모아놓은 것은 너무 많이 봐서 질리고 재미도 없다. 훨훨 털고 태어나고 싶어도 배지는 채워질 조짐도 없고, 심지어 대단하신 멘토들은 넌 안될 거라고 한다. 진퇴양난도 이 정도면 답이 없다.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아무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죽음조차 겪을 수도 없다. 늘 가능성과 미완성의 세계에 속해있는 기분은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면서도 자존심만 세우게 만들었다.


22가 골칫덩이라고 취급을 받게 된 건 제리들의 잘못이 더 크다. 알 건 다 아는 분들이 특별 관리한다고 너무 특별한 멘토만 줄줄이 붙여줬다.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그 사람들이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 되리란 법은 없다. 그 훌륭한 '멘토'들이 영혼 22를 포기하며 던진 말들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는 후반부에 흑화 된 모습에서 볼 수 있다. 태어나지도 않은 본인이 억울하다고 해봤자 누가 들어줄까. 상대는 "그 멘토"들이다. 테레사 수녀를 포함한 역사 속 인물들의 과연 그렇게 말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세상을 안 살아본 사람과 살아본 사람의 접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시작점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생각과 개똥밭에 구를 거면 그냥 태어나지 않는 게 나을까 고민하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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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가장 중요한 건 안 알려주셨잖아요!

 

 

영혼 22와 조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를 오해한 점, 삶의 목적을 명확한 한 가지로 찾으려고 했던 점이다. 22에게 조는 흥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평범한 멘토는 처음이야! 삶의 최고의 순간을 모아놓은 전당은 그저 그래 보이는데 삶의 의지가 충만한 게 궁금할 수밖에. 멋진 인생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걸까? 그 한 가지 질문이 그들의 관계를 이어온 시초가 되었다.


물론 그건 영혼 22가 조를 표면적으로 봤을 때 나온 질문이다. 조는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아니다.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음악에 부끄럽지 않을 시간을 쌓아왔다. 조가 다시 살고 싶었던 건 일생일대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한'스러운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른 멘토에 비해서 덜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그의 피아노를 듣는다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자기가 그토록 원했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대충 하지도 않는다. 그게 그가 정규직 전환 제안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그는 좋은 연주자이면서 선생님이다. 조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길 가다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점 정도? 낙상수라는 게 있나 싶을 정도다. 뭐 나가기만 하면 구르고 빠지고 생명에 지장이 생긴다. 앞으로도 어디를 가든 길 조심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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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맛을 모른다니요

 

 

영혼 22만 조를 오해한 게 아니다. 조는 영혼 22가 소중히 여기는 삶의 순간을 무용한 것으로 치부했고,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무기력한 것으로 오해했다. 사소한 순간에 울고 웃었던 자신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온데간데없이. 영혼 22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배지 마지막을 채울, 삶에 대한 열정을 찾아 헤맸다. 왜 뭐든지 흥미가 없는지, 좋아하고 싶어도 좋아지지 않는지 고민만 깊어졌다. 이상하게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때는 정말 많다. 비 온 뒤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빛,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새소리, 계절마다 변하는 이파리와 꽃. 아마 우리도 22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과 서걱거리는 소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씨앗도. 이 모든 게 너무나 당연한 듯이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게 말이다. 바람이 불고 해가 뜨면 이상하게 또 하루를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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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좋아하는 음악에만 전념하는 게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혼 22 덕분에 꿈에 그리던 공연을 하고 나서도 그렇게 허탈해했다. 공연은 그의 꿈 중 하나였지, 꿈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공연을 하고 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여한이 없었을 리가 없다. 앞으로 그가 연주할 수많은 공연이 기대되는데 너무 섭섭한 소리다. 너무나 원하던 것을 이루고 나서 얼떨떨했을 수도 있지만 꿈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지각변동을 겪듯이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그 꿈을 이루었을 때의 그 감정만은 잘 남아있을 것이다. 또 꿈을 꾸고, 또 애를 쓰고, 또 이루고, 그 경험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든다.


영혼 22가 '흑화'되었던 건 역시 마음속 깊이 특별한 삶의 목적이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평범한 줄 알았던 조에게마저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절망뿐이었다. 진작에 얘기해 줄 걸 그랬다. 우리 중 누구도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없다고. 내 마음대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기억해보니 이 지구 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태어난 지 한참 후에야 고민하게 되는 문제라고. 그 답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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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22와 조,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크게 나누자면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과 뭔가를 이루면서 사는 것. 둘 중에 뭐가 좋다 나쁘다 할 건 없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둘을 돌아가면서 삶을 산다. 성취하는 것에 지치면 흘러가는 대로 느끼고 즐기고, 다시 그 평안함이 지루함으로 변하면 또 뭔가에 도전하고 이루면서 다른 뿌듯함을 느끼고.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루는 삶 역시도 마찬가지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일을 하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헤매는 사람도 있다. 한 길만 고수했다가 잭팟처럼 성공이 찾아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길이 잘 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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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건 어떤 길을 택하든 쉬운 일은 아니다. 저마다 답이 다르니 누가 꼭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세상의 말은 돌고 돌며 아무도 그 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늘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걸지 고민하고 있고, 언젠간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꿈꾸지만 어쩌면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어쩌면 영화 속 어느 이야기 같은 건 아닐까 싶어서. 바다를 찾아 헤매고 있으나, 물고기는 늘 바다에 있었던 것처럼. 삶을 고민할수록,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일은 아닌가. 좋게, 잘이라는 개념은 비교에서 자유롭지 않다.


무엇이 잘 사는 삶인지 떠올릴수록 죽음이 함께 떠오른다. 강아지는 얼마나 나와 함께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은? 아니지, 아니다. 내가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뉴스에서 마주하는 각양각색의 죽음, 아마 그 속에 담기지 않은 다른 죽음들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태어날 때도 내 맘 같지 않더니 떠나는 것도 내 맘 같지 않다. 삶의 이유나 목적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은 나도 모르게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인가? 혹은 그 목적의 달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 아니면 그 목적은 남아있고 우리만 사라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목적이 있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호기심은 있지만 너무 가까이가선 안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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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는 재무과, 제리는 인사과

 

 

소울을 보면서 죽음이 떠오른 이유는 내심 조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얄미운 시선으로 보면 조는 여러 기회가 주어졌다. 애초에 사라지지 않고 길을 잃고 여러 차원을 내려와 제리를 만났고, 제리를 만나곤 멘토로 오인받고 영혼 22를 만나 꿈에 그리던 하루를 얻었다. 그 하루를 얻고 나서 영혼 22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주었고, 다행히도 마음을 다잡고 지구행 티켓을 돌려주었다. 처음에 그는 단 하루만을 원했고, 그가 느끼고 깨달은 건 그 이상이었다. 늘어선 줄의 거의 대부분에겐 그와 같은 기회가 없었다. 테리가 신경 쓰는 그 숫자가 그렇게 눈가림으로 조정할 수 있었던 거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까?


물론 이 영화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다. 영혼 22가 드디어 삶으로 나아갔듯이, 조 역시 다시 주어진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모습도 사실 좋았다. 다만, 조금 맥 빠졌다고 하면 너무 배 아픈 사람처럼 보일까?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그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좀 더 자연스럽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전개가 사라진 부분은 아쉬웠다. 영혼 22가 드디어 태어나려고 지구행 티켓을 들고 내려갈 때,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할 때는 마음이 참 찡했는데. 물론 조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또다시 채워질 것이다. 퀄텟에도, 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도, 조 자신에게도. 살아있는 소중함을 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란 역시 삶이 아니겠나. 그의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는 죽음의 위기를 넘어간 사람이다. 거의 죽었다 살아난 것도 아니고 아예 죽었다 살아난 거니 좀 더 기대해봐도 좋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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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가 '하루만 더!' 하면서 아쉬워하는 걸 보며 아, 내가 보내는 하루가 정말 절실하겠구나 싶으면서도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절박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매달리는 것은 온도가 조금 다르니까. 영화의 메세지를 떠올린 분들의 이야기도 기억났다. 애니메이션을 너무나 좋아했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었다고. 목표를 향해 염원하던 때가 그리워질 정도로 목표가 달성되면 허탈한 경우는 많다. 성취감도 성공도 결국 우리에게 영영 남아있진 않다. 늘 그 감정에 차있다가는 구름에 붕 뜬 것 같은 상태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뭔가를 이루었을 때 생각보다 놀랍거나 허탈하지 않은 건, 새롭게 그릇을 채우라는 이야기는 아닐까. 나중에 생각해도 여전히 기쁘고 뿌듯한 일이지만, 그릇이 가득 차면 새로운 걸 담을 수 없으니까.


성취하면서도 살고, 감상하면서도 산다. 높은 산을 올라가 힘껏 소리를 지르는 쾌감도 있고, 맑은 하늘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눈을 절로 감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인생의 진리나 교훈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어느 가을날 바람개비처럼 내려오는 단풍나무 씨앗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아, 짜릿한 색소폰과 피아노 소리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분다. 또 하루 살아보자.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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