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별을 완성했던 3단계 변화

이별과 이 '별'의 생애는 비슷했다.
글 입력 2021.02.2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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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관계 자체가 깨진 것과는 별개에서 발생했다. 관계라는 유리병을 박살내고 자리를 떠버린 그 사람을 뒤로하고,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 이별은 정말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었다. 마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폭탄처럼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속보]가 뜨듯,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아꼈던 한 타인과의 관계는 하룻밤에 공중분해가 되어버렸다.


나는 내 인생의 꽤나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만남의 시작은 나 또한 결정의 주체였지만 헤어짐의 결정 속에서는, 내가 주체가 아니었다. 남이 알려주는 이 이별 통보의 속보에, 하염없이 넋 놓고 TV를 바라보는 아이처럼 벙어리가 되었다.


이별에 어떠한 준비도, 심호흡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나는 관계라는 깨진 파편을 손으로 주워 담느라 꽤 오랫동안 피를 철철 흘렸다. 그 타인에게 보냈던 마음 보따리는 '이별'이라는 속보에 의해 한 순간 폭파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헤어짐은 곧바로 잊힘으로 환원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별통보는 '이별'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그래서 나는 연애보다 긴 이별의 과정을 시작했다. 동행자는 없었다. 철저히 나 혼자뿐인 외길을 걸었다.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왜, 어째서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블랙홀에 빠지듯 이별 대장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대장정으로 이십여 년 조금 더 되는 인생의 가치관과 신념 체계가 완전히 뒤엎어졌다. 다음 내용들은 내가 탔던 길고 긴 이별 열차의 대장정을 3 Step으로 표현한 것이다.

 

 


Step 1. 슬픔과 고통의 쓰나미 : 감정의 지진해일



-내 눈에 자동 수도꼭지가 달린 줄 알았다. 툭-하면 우는 것이 아니라, 툭-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눈에서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되었다. 언제나 얼굴이 물기로 가득했다. 눈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로션을 펴 바르듯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았다. 이별한 당일날은 내 전공 시험날이었다. 24시간 안에 시험 페이퍼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약 7페이지의 답안을 제출했는데, 2페이지를 마칠 때마다 참은 눈물을 왈칵 쏟아내어 흘려버렸다. 열심히, 집중해서 답안을 써야 하는데 눈 앞이 자꾸만 흐릿해지고 뜨거운 액체로 가득 차올라 혼이 났다.  


-지하철에 타면 꼭 내 전방 5cm 앞에서 꽁냥 거리는 커플들이 있기 마련이다. 커플 중 누군가 한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져 있다. 그리고 꼭 그 둘은 밀착하여 붙는다. 그리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속삭인다. 내 우주는 한순간에 붕괴되었고 폭파되었고, 사라졌는데 말이다. 누군가의 우주는 여전히 따습고 온기가 가득한 모습이다. 하염없이 초라해졌다. 또 눈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버렸다. 주인 허락도 없이 먼저 열려버리는 안구 배수관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나이가 한 손바닥 안에 접히면, 그래 시간이 지나도 그런 내 모습 '귀엽다'라고 생각해줄 수 있는데..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게도 손바닥이 네 번은 더 접히는 나이인 내가 울어버리고 말았다. 흔들리는,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정말 천만다행인 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것. 다행히 떨어진 눈물은 마스크 안으로 들어갔고 남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하염없이, 소리 없이, 고요하게 아파했다.


-집에서 돌아가서는 가장 위험하고 위로가 되는 물체가 있다. 침대다. 일단 슬퍼지려 하면 침대로 뛰어들어가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고 더 이상 내 슬픔의 이유를 물을 수도, 구할 수도 없는 그 관계 사형선고의 쓴맛을 몇 번이고 곱씹어본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한약을 종종 사다주시곤 했다. 그 쓴맛을 먹기가 싫어서 먹기 전에도 울고 먹고 나서도 기분 나쁘다고 울었다. 그런데 이건 뭐 예고도 없었던, 세상에서 가장 쓴 맛을 하루 종일 물고 있는 심정이었다. 이젠 어른이라 대여섯 살처럼 밖에서 와앙 하고 울어버릴 수 없으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른의 옷을 벗어버리고 5살로 돌아가곤 했다. 엄마를 안고 울 수는 없으니 보들보들한 이불을 껴안고 역시나 무소음으로 통곡했다. 쓴 맛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이 쓴 맛이 내일 바로 없어지지 않을 걸 알기에 정말이지 고통스러워서 발버둥을 쳤다.

 

 


Step 2. 선과 악의 치열한 대결 시작 : 이별의 의미화



-지금까지 흘린 눈물이 워터파크 파도풀 정도는 되었다. 내 뇌 속에서도 더 이상 눈물을 생산하기엔 '이별 통보'라는 사건 자체가 이 세상 제일의 이슈는 아니었다. 원래 대중도,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처음 큰 속보가 일어날 때 요란스럽게 놀라고 소리치고 각성되나 시간이 지나 다시 잠잠해지는 것처럼. 이제는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의 지진 해일은 끝났다. 그러나 문제는 지각 변동되어 원래의 판 구조와는 완전히 달라진, 지나간 시간의 덩어리들이었다. 그 추억의 덩어리들, 다시 말해 그것들의 결정체인 이별을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지였다.  


-선과 악의 치열한 대결이 시작되었다. 선이 속삭이는 말로는 다음과 같았다. "결론이 어찌 되었든, 잠시라도 행복한 내가 있었으면 차라리 예쁜 포장지로 감싸주자. 내가 이 이별을 맞이하게 된 건 인생의 순리야. 마땅한 필연이라고!" 그러나 악이 말했다. "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어. 넌 앞으로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야. 네가 빚어낸 그 모든 추억은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그래도 다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어림도 없어. 꿈 깨"


-Step 2를 거치는 기간, 즉 선과 악의 치열하고도 팽팽한 대립이 내가 탄 이별 열차의 경로에서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긴 시간 동안 이 길고 긴 선과 악의 결투가 반복되었다. 하루는 나를 위로하다가, 다음 날에는 이미 없어져버린 우주를 그리워하다, 또 다른 날은 나를 패배자라며 벼랑 끝으로 내몰고 채찍질하다, 또 새로운 날에는 장자 노자처럼 도를 생각하며 인생의 이치를 가슴 깊이 이해하다.. 어느 날엔 또 나의 모든 순수한 마음과 믿음, 사랑에 대한 풋풋한 마음이 불태워지고 없어졌다고 슬퍼하다, 아니다 떠나간 그 누군가도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하다, 나를 탓하기도 타인을 탓하기도 세상을 탓하기도- 반대로 나를 위로하기도 타인을 이해하려고도 세상을 받아들이려고도 해 보았다.


-이런 선과 악의 대립은 일상적으로 만연해 내 삶을 지배했었다. 내가 가는 어디에든 이 결투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순전히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치열한 전쟁이었으니까. 이 생각은 마치 감각 기억처럼 소수점 자리의 시간과 같이 0.X초동 안 반짝- 왔다가 사라지는 형태의 것이었다. 물론 밤이 되면 그 결투의 잔인한 시간은 국수 한 사발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길어졌다. 아무튼, 일상 속 어딘가 내 눈이 휘어지고 입이 벌어져서 웃고 있을 때도, 입술을 내밀고 무언가 집중할 때에도, 분주하게 달리는 두 다리로 이마엔 땀이 흐르고 있을 때도 이별을 의미화하기 위한 선악의 전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결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결투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억울해서라도 사랑과 이별이 아닌 다른 외의 모든 것에 무한 질주를 행하고 싶었다. 그냥 미친 듯이 나라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싶었다. 그래, 어차피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치자. 그러면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머릿속에서 선과 악의 결투를 밀쳐버릴 다른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친 듯이 일하고 돈을 쓸어 담듯이 모은다던가, 공모전에서 반드시 1등을 하겠다고 눈이 뒤집어져서 노력했더니 정말 1등을 쟁취해 온다던가. 나의 전략은 이랬다. 결투가 종결되지 않을 것 같으면, 결투보다 더 매력적인 무언가 들로 내 머릿속을 각성하자. 그리고 뿌듯하게도 많은 것들을 내 손에 쥐어올 수 있었다. 가족과의 관계 회복, 부의 축적, 만족스러운 성적, 기여하는 각종 활동에서의 흥행 등을 하나씩 이뤄내기 시작했다.

 

 

 

Step 3. 이별열차의 종착역 도착 : 진정으로 행복한 홀로서기의 시작



선과 악의 전쟁은 다른 더 중요한 의미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 소리가 점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더 이상 이별 열차가 갈 곳이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다양한 풍경들을 지나왔다. 너무 다양한 길을 거침없이 달려왔다. 흙밭, 돌밭, 꽃밭, 자갈밭, 모래밭 등등을.. 시간의 흐름을 타고 직진하며 지나왔다. 그러나 열차를 중간에 멈춰 세워 쉬기도 해 보았다. 신선한 공기도 맡아보고 전혀 다른 새로운 풍경을 만나보기도 하며 많은 감상을 했다. 내가 잠시 보듬었던 우주가 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것이고, 다양해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삶은 꽤 끈질지게도 희망을 갖고 살아갈 만한 무대임을 느꼈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필연 법칙의 자각.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사랑의 본질에 대한 반성.


이런 것들이 가슴속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자그마한 이파리들이 텄다. 아마도, 이번에는 타인이 관여하지 않은 '나만의' 새로운 세상 혹은 우주가 탄생한 듯싶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최초의 독자적 우주였다. 홀로 서는 것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 아니, 사실 홀로가 아니었다. 눈을 감고 10년 후를 상상했다. 아니, 20년, 30년.. 50년, 60년 후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건 홀로 한강변을 10km 뛰고 있는 참이었다. 정말 신기하고 기이한 경험을 했다. 지금보다 훨씬 성숙하고 강한, 목표를 이룬 미래의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순간의 내게로 와서 같이 달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잘하고 있다" "괜찮다" "겁낼 거 없다"라며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고 있는 걸 느꼈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선물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보랏빛 미래가 레드카펫처럼 깔려있는 것 마냥 그 길을 달렸다. 그 미래는 이미 나에게로 도착했고, 나는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지나간 시간들이 나라는 인격체를 성숙시킨 필연이었다는 것에, 그리고 이젠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의 10km 달리기를 완주하고,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된 기분을 느꼈다.


이별 열차가 멈추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더 이상 내 머릿속에서 이별 열차가 운행할 연료를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내 소중한 연료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재조명, 후회, 원망 등의 '과거'에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에 있는  '현재' 나에게 집중하고 '미래의' 나에게 보탬이 될 것들에 쓰이고 있었다.


내가 살았던 이 '별'의 생이 끝났다. 홀로 남았던 별에서 내가 떠나자,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블랙홀이나 중성자별로 변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별'의 폭발로 인해 방출된 물질은 다시 드넓은 우주로 돌아가, 다른 별을 구성하는 물질이 되겠지.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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