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의 아름다운 다이어리 읽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2.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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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를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는 한 권당 300원씩 사흘을 대여해주는 만화방에서 용돈을 털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야후 코리아에 접속해서 무료로 풀리는 책들을 웹으로 탐독하곤 했다. 그래도 역시 재생지만이 주는 빳빳한 냄새와 낱장을 넘길 때의 그 감촉, 앉은 곳 주변에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 높고 삐뚤게 책을 쌓아두고 그 더미 속에 갇혔을 때 느껴지는 기묘한 만족감을 그리워했다.

 

처음 순정만화를 접한 곳은 기이하게도 동네 피아노학원 휴게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만화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풀뱅에 풍성하고 긴 흑발을 한 쿄코라는 주인공만이 머리에 남아있다. 얼마 전 제목이 궁금해져서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는데 찾지 못했다.

 

어쩌면 찾지 못한 게 행운일 수도 있다. 다시 그 책을 찾아 들여다봤을 때 내 기억 속 멋졌던 쿄코는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고 말 테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원형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다지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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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이윤희, 카라 작가님의 천행기와 신지상, 지오 작가님의 쇼콜라를 거기서 처음 뗐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온종일 피아노 학원에서 살았는데, 대회 날이 가까워져 오면 황량하게 넓은 로비에 그랜드피아노와 나만 남겨지곤 했다. 하늘이 까매질 때까지.

 

손끝이 물러지다가 굳은살이 박일 때쯤 되면 원장님은 우리를 쉬게 해주셨다. 그럼 언제나처럼 딸기 맛 후레쉬베리를 하나씩 물고 휴게실 바닥에 앉아서 순정만화를 펼쳤다. 단맛이 입안을 감쳐돌고 주인공들의 삶이 시선 끝에서 풀어지는 순간이 황홀했다.

 

그때는 황홀이라는 단어가 무슨 느낌인지 몰랐다. 알아도 삶에 써먹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다. 십오 년가량의 시간이 지난 오늘, 더듬어보면 문득 헷갈리는 것이 생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즐겁게 만화를 읽어 내려가던 그 순진하던 때가 호시절인지, 아니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 대사 하나하나에 마음을 떨어트리게 되는 지금이 더 나은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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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도 잊고 산다. 종이 만화의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고 만화방은 보기 드문 진귀한 공간이 됐다. 만화카페를 늘 가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실행에 옮긴 적이 거의 없었다. 예전 스타일의 순정만화는 아날로그 감성이 되어 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큰 눈에 속눈썹이 풍성하고 다소 바짝 마른 체형의 주인공들과 섬세하게 묘사된 당시의 패션과 길거리, 대사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양 페이지 가득히 채워진 장면, 그리고 책 끝에 달리던 작가님과 어시분들의 스토리가 그리웠다.

 

커버와 앞쪽의 일러스트 몇 장만이 유일하게 채색된 부분이었던. 그래서 몇십 분이고 그 채색된 희귀한 장면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만화 속 주인공들의 실제 모습을 상상해보던 아주 소소한 즐거움이 그리웠다.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작품들은 천계영 작가, 신지상 그리고 지오 작가, 윤지운 작가, 신일숙 작가의 작품들이다. 천계영 작가의 메시지와 유머를 좋아했다. 그림체는 신지상, 지오 작가가 취향이었고, 윤지운 작가가 그리는 독특한 캐릭터들을 동경했다. 신일숙 작가만의 거대한 세계관에 늘 매료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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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아 작가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다소 이름이 생소한 분이었다. 대표작 <다정다감>을 분명 한번쯤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결말을 보지 못해서일까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지인이 추천해준 만화방에 가서 순정만화 책장에서 서성이다 <다정다감>을 발견했다. 표지의 그림체를 보고 저 너머 속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속절없이 이 책에 빠지겠구나, 그런 직감이 들었다.

 

열심히 읽었는데도 6권까지밖에 읽지 못해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떠나기 전 맨 마지막 권의 맨 마지막 장면을 들여다봤다. 맥락 없이도 너무 충격적이었던 결말인지라 하루 중 불쑥 궁금해지곤 했다. 결국 나흘 만에 백기를 들고 만화카페를 찾아가서 완독했다. 이 불같은 성정과 호기심만은 가히 순정만화 여주인공 급이다.

 

스물넷에 읽는 한국 하이틴은 십대 때와는 달랐다. 우선 나는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연애도 몇 번 경험해보았으니 모든 것이 무색이던 무지 시절의 독서와는 같을 수 없음이 당연하다. 다정다감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전 같았으면 답답함에 몸부림쳤을 대사들이 더이상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들이 짜낸 용기에 감탄하면서 보게 됐다. 

 

퇴화한 걸까? 그리고 겁쟁이가 된 걸까? 예전이라면 뻔하다고 일갈했을지도 모르는 반복되는 엇갈림과 유치한 대사들에 어떤 경외심을 느꼈다. 클리셰가 아니라 삶의 단편들처럼 다가왔기에.

 

해피엔딩은 없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래서 순정만화를 자주 봤었다. 아무리 굴러도 결국엔 웃게 되는 결말이 좋아서. 내 삶도 그렇게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열린 결말이나 슬프게 끝나는 책은 지독히 싫어했다. 그런 이유로 몇몇 작품은 아직도 떠올리면 손톱 옆 거스러미를 뜯게 된다. 뻐근한 마음은 찝찝함으로 치환이 됐다. 결말에 치중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결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그 과정을 걷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책 속 인물들의 대처방식에 나를 투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답답하다고 또는 유치하다고 지적할 수가 없어졌다.

 

발화는 용기다. 누군가가 정으로 치는 것처럼 내 마음을 계속 때리고 있었다. 순정만화는 어쩌면 지독하게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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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내가 종잇장 위에 그려져 있으면 지나치게 마음이 눅눅해졌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다이어리 속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종종 훔치고 싶은 문장들도 많았다. 평범한 단어들을 엮어서 평범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를 몰고 가주는, 그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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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너 내 거 돼라.”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용기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 사람'이라는 영역에 속한 이들 중에 직접 '너 내 범주에 들어와!'라는 아주 다이렉트한 말로 포섭한 사람이 있던가? 물 흐르듯,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옆에 머물러준 기억뿐이다. 저런 대사에 경악하는 건 우리에게 그 직접적인 마음의 고백이 익숙하지 않아서일 테다. ‘좋아한다’나 ‘사랑한다’라는 말에 감동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좋아해’나 ‘사랑해’보다 '너 내 거 돼라'의 의미가 훨씬 강렬한 것은, 상대를 나에게 묶어두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와 그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하는, 아주 강한 독점욕의 표출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내게는 조금 낯설고 신기한 일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저 대사는 허세 넘치는 90년대 감성의 텅 빈 플러팅이 아니라, 참고 또 참다가 뱉어낸 아주 새빨간 응어리에 가깝다는 것을. 일 년 전이었다면 나도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뒷장으로 종이를 넘겼을 것이다.

 

한 살 더 자랐다고 그새 달라지기라도 한 걸까? 오글거린다는 표현 하에 무참히 삭제되고 밟혀온 솔직함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순간 되짚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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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를 읽다 보면 사방에서 자꾸 용기가 불어온다. 흔해 빠진 말이다. 좋아할 수 있을 때 실컷 해보라는 말. 꿈은 아무 때나 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 아주 상투적이고 닳고 닳은 말.

 

그런데 아무도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 내가 순정만화를 사랑하는 본질적 이유는 거기에 있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솔직함이 오글거림으로 매도당하는 세상이다. 그럴수록 나는 솔직한 애정과 솔직한 걱정과 솔직한 충고를 갈망한다.

 

뜨끈한 피가 흐르는 내 옆의 생명체가 아니라 이차원의 캐릭터에게 위로받는다는 사실이 우습고 슬프다. 종이세상 속 존재들이 더 용감하다는 사실을 눈물겹게 받아들인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손쉽게 허구의 캐릭터를 향해 넘어간다. 허상은 실재가 된다. 나는 종이 위 세계에 기쁘게 흡수된다.


순정만화는 당연한 문장들을 새롭고 따뜻하게 말한다. 절대 명령조로 말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라고 훈계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무수한 경험과 흐르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 내민다. 마지막 권 즈음 가면 컷 바깥의 세계를 살아가는 방관자인 나조차도 변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캐릭터에게 동화되어 진짜 변한 걸지도. 밥 한 끼를 잘 먹은 듯한, 위장을 맴도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오늘의 결말은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둘이 함께하길 바랐지만 마지막 컷까지도 혹시나 하는, 미래를 기대해 볼 만한 실마리 따위 잡히지 않았다. 남겨뒀을 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안다. 그래서 전의 나라면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이 결말을 씁쓸하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위장은 공허하게 텅 비지 않았다. 온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평소보다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판타지적 해피엔딩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흔한 결말1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어쩌면 그편이 더 짙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더이상 킬링타임 용으로 순정만화를 읽을 수 없다. 좋은 책 한 권을 읽었을 때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강한 무게의 감정이 나를 침몰시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 무게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존재하는 다이어리들을 가능한 한 많이 읽고 싶다. 무엇을 읽고 있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내가 읽어 내리는 것들이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삶의 주인공이 보내는 격려를 기다리는 일에 중독된 것일지도 모른다.

 

 

[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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