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수선화에게’서 배우는, 절망에서 오는 위로 [문학/시]

삶이라는 짧고도 긴 터널을 의연하게 걸어가게 하는 명제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2.22 15:2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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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 첫 번째 연의 첫 번째 행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오래도록 회자 되고 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는 왜 하필 수신자가 수선화인지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시 자체에 큰 감명을 받아서 그런지, 그저 짧은 의문으로 남겨두고 지나간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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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 K와 함께 서울숲 산책을 했다. 마지막으로 왔던 때가 꽃들이 만연했던 봄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춥고 삭막하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겨울의 풍경이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내고 싶어서 벌벌 떨면서 인터넷 창을 켜서 ’서울숲 꽃’을 검색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수선화 새싹들이 봄이 착실히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며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고 있는 사진을. 문득 나도 모르게 속으로 ‘수선화에게’ 시의 첫 문장을 읊조렸다.
 
요즘은 아름다운 말들을 수집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꽃을 보면 꼭 꽃말을 찾아보는 편이다. 수선화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꽃말은 ‘자기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나르시즘에 관련된 그리스 신화 이야기였다. 잘생긴 외모로 수많은 요정들의 사랑을 받지만 모두 거절해버린 나르키소스. 이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그에게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벌을 내린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 된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연못을 떠나지 못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수선화가 고고하게 피어났다고 한다.
 
여러 감정적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우울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는데, ‘우울은 나르시즘적 감정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우울증을 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심리학적 개념이 ‘자기애’라고 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우울증의 세 가지 전제조건은 대상의 상실, 애증 병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아로의 리비도(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기초 개념으로, 정신적 에너지~성적 에너지를 포괄하는 의미의 생체 에너지) 퇴행이라고 한다. 이 마지막 조건 때문에 우울이 나르시즘적 감정이라고 표현한 듯했다. 어떠한 대상을 향해있던 리비도가 다시 자아(나르시즘)로 퇴행 되면서 계속 자기 자신 안으로만 파고드는 것. 그래서 느끼는 우울감과 절망 어린 도취적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우울을 나르시즘적 감정으로 쉽게 이야기하다니...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발언이 아닐까 싶었는데, 공부를 하며 이해가 되었다.
 
어느 정도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경험하며, 제목을 왜 ‘수선화에게’라고 지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나르키소스는, 외롭고 우울했을 것이다. 외로움에는 반의어가 없다. 심지어 그는 그 자신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을 내려다보며,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외로워서, 깊이 외로워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도 보지 못하면 참을 수가 없어서 물가를 떠나지 못했던 그를 생각하며 정호승 시인은 그 문장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원예학과인 친구 H가 실제로 수선화 꽃은 물가에 피며, 물가에 어딘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 모습 그대로. 신화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구나. 앞으로 수선화는 내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린 꽃이 될 것이 분명했다.
 
수선화는 ‘설중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추위를 견디며 홀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신이라도 바라보며 도취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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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나의 삶은 늘 물음표로 끝이 났다. 기억 속의 나에게는 무수한 질문들이 있었지만, 내 답변만은 늘 블러 처리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 없이 단지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기에 바빠서, 혹은 그로 인해 나를 연민하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여기고 쉬이 넘어가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매번 비겁하게 어떠한 활동과 활동에 대한 기대 속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매일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반추하고 성찰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며, 결과적으로는 옳지 못한 선택을 하고, 반복되는 실패를 하는 나를 보면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모두 삶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이기에, 다 큰 어른들도 여전히 실수투성이라고 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라는 사실이 이런 상황에서는 참 위안이 된다. 어떤 명제는 사람을 살린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인생은 원래 쓰다.’,‘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문장들이 그렇다. 이것들은 상심과 상실을 끌어안고 삶이라는 짧고도 긴 터널을 다시 덤덤하게 걸어가게 한다. 그 깊은 굴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우리 모두 외로운 사람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람의 속성에 외로움이 존재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외로운 인생길을,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길을 의연하게 걸어가라. 외로움은 혼자서 견뎌 내야만 하는 것이지만 외로운 사람은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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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이채이
    • 항상 살면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구요.
      써주신 글 중에 '우울은 나르시즘적 감정이다.'라는 부분이 되게 와닿으면서도 우울에 대해 새삼스럽게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하네요. 좋은 해석과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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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세나
    • 2021.03.09 00: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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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이채이저야말로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외로운 사람은 혼자가 아닌 모두이니 함께 어깨를 두드리며 살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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