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

컬쳐리스트 송민형을 만나다.
글 입력 2021.02.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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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jpg

 

 

제목에 끌려 글을 띄우고 흥미롭게 잘 읽었다. 내가 쓰는 글이랑 정말 다른 글이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마지막 필자의 이름에 송민형 이름 석 자가 박혀 있었다.

 

송민형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냐면, 글을 쓰는 사람. 나와는 다른 글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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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자의 자화상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뮤즈라는 환상 – 메레 오펜하임

네 사람이 만드는 감정의 역학관계

괜찮아, 환상이 실제가 되진 않아 –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

우리의 아티스트 잭 스타우버를 아시나요?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이 시를 읽고 내 마음을 좀 알아줘

사람들은 모두 달라. 그러니까 달라도 괜찮아! – 동화작가 Todd Parr

마스다 미리 좋아하세요? 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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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몇 개 가져와 봤다. 위의 글은 송민형, 아래 글은 우준영이 쓴 글이다. 그의 글은 한정식 코스 요리, 내 글은 식후에 먹는 스타벅스 자봉허니블랙티 정도 …… 라고 지금 생각해봤는데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내가 상상하는 그는 항상 책을 읽을 것 같은 사람. 내가 그에게 갖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동질감. 또 나와는 다른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 글을 어떻게 쓰세요?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묻고 싶었다. Project 당신은 좋은 핑계였다.

 



 

 

글감은 어디서 찾나.

처음에 시작할 때는 좋아하는 것들 목록을 만들었다. 하나씩 지워가면서 썼다.

 

 

다이어리.jpg

“보실래요?”

체크한 것은 다 쓴 것. 글감 목록에 있는 것을 다 쓰진 않았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젠 그 소재도 다 떨어졌다. 안에서 글감을 끄집어냈다면 최근에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지낸다. 예를 들어, 최근에 쓴 글 중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다룬 글에 대해 말해보자면. 몇 년 전에 읽은 글을 한 문장 한 문장 시를 읽는 것처럼 읽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읽은 것.

 

글을 써야 겠다는 마음이 있으니 사소한 것을 보더라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도 우연히 다시 읽은 건데, 레이더를 켜 놓은 상태이다 보니 더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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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와 와인잔

 

 

“민감하게 있다가 확 오는 것에 대해서 쓰게 되는 거군요?”

“네. 유심히 보고 있으면 쓸 만한 게 꼭 있어요. 예를 들어 눈 앞에 보이는 저 난로. 민감하게 있으니 저 난로를 보고 있으면 난로에 얽힌 일화가 지금 생각나기도 해요.”

 

이런 상태로 있다 보면 사소한 것을 보더라도 소재가 되곤 한다. 와인잔을 보고 있자니 아르바이트 하던 생각도 나고.

 

 

쓰기를 주저하게 되는 글이 있나.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겁이 난다. 모두가 보건교사 안은영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나는 재미없는 경우. 나는 재미없던데,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준영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 관련 글에서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지금 딱 그 상황에 있다. 최근에 독서 토론 모임을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배움이 짧은 것 같다. 다른 생각이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글 쓸 때 주의하는 점이 있는지. 예를 들면 나는 읽기 쉬운 글을 지향한다. 디지털 시대에서 한 콘텐츠에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쉽지 않나. 쓱쓱 스크롤을 내릴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찬가지로, 잘 읽히는 글. 나머지 하나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글이다.

잘 읽히는 글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첫 문단을 읽고 다음 문단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글이라, 설명 부탁드려요.”

“음, 남의 글에서 따온 게 아닌 내 글이라고 할까요.”

 

이전에 ‘결혼의 종말’이라는 책에 대하여 ‘결혼이 없는 미래’라는 글을 썼다. 사실 그 글은 책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와 ‘나는 동의한다’고 덧붙인 수준이었다. 더 이상 그런 글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 내 글 같지 않다.

 

 

결혼의 종말 일부 캡쳐.jpg

 

 

“맞장구치는 게 아니라, 내가 소화해서 풀어낸 글을 쓰고 싶은 거죠?”

“네. 맞아요.”

 

‘뮤즈라는 환상 – 메레 오펜하임’ 메레 오펜하임이라는 예술가에 관심이 생겨 찾아봤지만, 이슈가 되어 유명한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외국 위키피디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의 뮤즈였다는 것과 우울증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정보를 접했을 때 나는 여성 예술가인 오펜하임이 뮤즈로만 소비되었고, 예술가로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논지의 글을 썼다.

 

 

가만히 포즈를 취하며 초현실주의자들의 뮤즈로써 존재할 때, 오펜하임은 분명 아름다웠고 또 유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했고, 우울했다. 뮤즈라는 환상은 여기에 있다. 오펜하임은 70세가 넘어서까지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같은 시대에 함께 작업했던 남성 예술가만큼 유명해지지 못했다. 쉽게 초현실주의자들의 뮤즈로 기억되었을 뿐이다. ‘뮤즈’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그녀가 잃은 것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본다.

 

 

글의 방향을 잡는데 내 생각이 오롯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내 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이다.

 

*

 

단어와 문장에도 오리지널리티를 담으려고 한다. 내 글은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독자였을 때는 누군가의 글과 시를 읽고 감탄했지만, 이제는 욕심이 난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기억에 남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 문장을 쓰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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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으로 떠들썩할 때,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글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후 ‘명징, 직조’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나는 그렇게 단어가 옮는 현상을 경계한다. 단어는 쉽게 묻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지 않나요?”

“그렇죠. 특히 제가 받아들이는 게 빨라서 더 조심하고 유의하는 거예요. 이슬아 한창 읽을 땐 이슬아처럼 썼거든요.”

 

그래서 최근의 글은 덜 유려할지라도 어디서 보고 배운 표현이 아닌 ‘내 문장’을 넣으려고 노력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관한 글, 특히 마지막 문단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생각을 담았다. 다른 평을 참고하지 않았고. 마음에 든다.

 

“저도 오는 길에 읽었는데 좋았어요.”


 

다자이 오사무, 에곤 실레의 예술 앞에서 우리는 부끄럽다. 몇 겹의 옷가지와 딱딱한 피부, 그보다 안쪽에 숨겨둔 날 것의 감정들이 모두 발각되었으므로. 그러나 부끄럽게 얼굴이 달아오르다가도 이내 뜨거운 위로가 스미는 걸 느낄 수 있다. 결국 마주함으로써 품을 수 있는 온갖 마주하기 싫은 나의 한 부분. 나약함, 불신감, 질투, 공포, 추악한 욕망, 그리고 그 아래 조용히 흐르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

 

‘어른’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회인에 맞게, 성숙한 모습에 맞게, 외로움을 감추고 따듯한 스웨터와 무해한 농담으로 여린 나를 감싼다. 그때 익살을 벗고, 가식을 벗고, 옷가지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 인간 실격자의 예술은 물처럼 축축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가장 깊은 곳까지 천천히 스민다. 내가 되고 싶은, 되고자 하는 이상향을 쫓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시려온다면, 가장 마주하기 싫은 내 안을 한번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가장 피하고 싶었던 그 만남은 의외로, 가장 따듯할 수도 있다.

 

 

 

송민형씨 글을 읽으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구나 싶다. 책을 많이 읽는가.

많이 읽는다. 한 달에 10~15권, 11월엔 14권.

 

“그렇게 많이 읽으면 까먹지 않나요?”

“까먹죠! 리디북스로 보는데 깊이 있는 통찰로 읽기 보다는 콘텐츠 소비로 읽는 것 같아요. 시간 때울 겸, 지하철에서 읽거나 자기 전에 읽어요.”

 

 

하루키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다. (송민형은 '아는 사람과 하는 사람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회고록을 읽다가 뛰고 싶어졌다.'는 글을 썼다.)

내가 이 나이라서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생각. 이십대 초반의 주인공들의 쿨한 척.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는데도 수영하러 가는 쿨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태도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아직 어려서가 아닐까. 그 무드에 공감하고 동경하는 것 말이다. 나이가 더 들면, 인생의 쓴맛을 보고 무서워하는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할 것 같다. 지금은 하루키에서 다자이 오사무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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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좋아하는 작가 많다. 문보영 시인. 이슬아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알랭 드 보통.

특히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현타가 왔다. 그 사람이 스물 네 살 때 썼다고 하는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인생에 대해 고찰해 풀어냈다니. 나는 위인들의 결정적인 순간의 나이를 그냥 보내고 있구나.

 

“열등감이죠.”

“맞아요.”

 

 

본인이 쓴 글, 좋아하나.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기분에 따라 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 마냥 좋게 봤을 땐 좋았는데 엄격한 기준을 들먹이면 형편없다. 특히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많은 요즘 내 글을 다시 보면 그렇게 처참할 수가 없다.

 

 

(송민형의 답변만 기록한 글이 있는데, 그 대답이 인상깊어 가져왔다.)

제 이름 중성적이잖아요. 저는 나이랑 성별을 드러내지 않게 조심해요. 요즘은 발화자의 성별에 따라 글이 다르게 읽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차라리 편견을 갖지 않게 해요. 나중에 어떤 류의 글을 쓰게 될지 모르니까요.

 

"나중엔 필명을 만들 수도 있겠네요."

"네 맞아요."

 

 


 

 

나는 그가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청했다. 심지어 인터뷰 중에 제목을 만들기도 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을 쓴다.’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좋아요 하고 웃으며 끄덕였다. 허락도 받았다. 그러나 핑퐁핑퐁 이어지던 대화를 글로 정리해서 그의 생각을 조심히 들여다보니 그 제목은 좀, 아쉽다.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송민형이다. 많이 보고, 많이 읽은 것을 쌓아 두었다가 이제야 하나씩 꺼내 보는 사람. 글을 쓰기 시작해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대단한 글을 쓴 사람들이 부럽고 짜증나고 그런데 좋고. (엉엉 하면서 이 사람 글 너무 멋지잖아 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해 열심히 열심히 자기 글을 내놓을 사람. 자신의 글에 어떤 잣대가 필요한지 아직 모르겠다는 것과 진지한 태도가 초심자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가 기대되기도 해서 이 글의 제목은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 좋겠다.

 

이 인터뷰를 읽은 후에 송민형의 글을 접하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고심해서 문장 하나를 썼을지 갸륵한 마음이 한 0.5초 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가 쓴 멋진 문장에 댓글로 ‘짝짝짝’ 박수를 남겨볼까 한다.

 

 

[우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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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dilos
    • 내용이 참 좋아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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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름
    • 재미있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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