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믿었기 때문에 - 분노 [영화]

사랑하는 당신, 범인인가요?
글 입력 2021.02.1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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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소설 <분노>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하나의 사건, 3명의 용의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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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하치오지 주택가에서 신혼부부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집에는 피로 새긴 분노(怒)라는 글자만이 남아있다. 1년 뒤 일본 전국 방송으로 용의자 수배명단이 내려지게 된다. 용의자는 야마가미 카즈야, TV 방송을 통해 용의자 얼굴이 방송되고 범인을 본 것 같다는 전화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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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용의자,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


그는 과거의 종적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2개월 전 돌연 요헤이(와타나베 켄),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가 있는 치바 항구마을에 온 그는 요헤이가 일하고 있는 어협상회에 일을 시켜달라고 말한다. 그가 가져온 추천서에는 서던 로지란 펜션에서 2년간 일했다는 것밖에 확인할 수 없지만, 일손이 부족했던 탓에 최저보다 낮은 800엔의 시급을 받으며 어협상회에 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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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타시로가 신경 쓰이는 아이코는 그에게 아버지 도시락을 만들면서 타시로의 몫까지 만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아이코는 타시로가 항구마을에 오기 3개월 전 돌연 가출하여 신주쿠 유흥업소에 일하다 요헤이의 수소문으로 발견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사정이 있다.


요헤이와 아이코는 그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요헤이는 아이코가 평범한 사람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TV에서 방송된 하치오지 범인 몽타주가 타시로와 닮아 보이고 그의 과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아이코를 말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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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타시로가 마음에 들었던 요헤이는 그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전에 일했던 펜션에 방문하여 추천서에 적힌 것이 사실인지 확인받는다면 아이코의 행복을 응원해줄 마음이었다.

 

그러나 펜션에서 듣게 된 이야기는 그를 좌절시켰다. 그는 타카하시란 이름으로 2~3개월 근무한 적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헤이는 아이코에서 사실을 추궁하고 그녀는 타시로는 사실 부모님의 사채 빛을 억지로 떠맡아 점차 늘어나는 빚에 어쩔 수 없이 도망쳐 가명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코는 그를 믿어달라 말한다.


 
“나랑 아빠만 입 다물면, 타시로 군이 여기 살 수 있잖아? 난 나를 잘 알아. 나 같은 애가 평범한 사람이랑 행복해질 리가 없어. 그렇지만 타시로 군 같은 사람이면…. 타시로 군 같은 사람이면, 내 곁에 계속 있어줄지 몰라. 안 그래? 타시로 군은 갈 데가 없잖아. 타시로 군한테는 여기뿐이잖아.”
 


요헤이는 아이코의 말에 절망하지만 요헤이의 깊은 마음 속 ‘아이코가 행복해질 리가 없다’는 외침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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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용의자, 나오토(아야노 고)


화려한 게이 라이프를 보내는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신주쿠 게이 유흥업소에서 나오토를 만나게 된다.

 

유마는 나오토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얼굴, 이름, 나이만 알지만 나오토를 자신에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한다. 완전히 신용할 수 없지만, 눈앞에는 기울어진 도시락을 신경 쓰며 걸어가는 나오토가 있었다.


그렇게 사소한 모습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된 유마는 겉으로는 그를 신용하지 않고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유마에게나오토는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점차 둘은 서로의 삶에 물든다. 유마는 호스피스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챙겨주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옆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나오토에게 더 깊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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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을 보내던 중 유마는 자신의 친구 2명이 빈집털이를 당하게 된다. 범인은 그 둘을 알고 있는 사람이며 주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리고 TV에서 계속 방영되는 하치오지 살인사건 범인의 특징이 나오토와 닮아 보인다. 나오토는 여전히 일하지 않고, 과거에 대해 숨긴다.


그때, 유마는 긴자의 한 카페에서 나오토가 한 여자와 즐거운 듯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 순간 나오토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 유마는 나오토에게 자초지종을 묻지만 나오토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다음 날 나오토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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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용의자,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


육지에서 요코하마의 작은 섬으로 이사 온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의 보트로 무인도 별 섬에 놀러 간다. 그곳에서 폐허에 머무는 방랑객 타나카를 마주친다. 다나카는 혼자 이곳저곳 떠돌며 여행하며 마을 주민 보트로 이곳에 잠시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타나카는 여기에 자신이 있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이즈미에게 부탁하는데, 자유로워 보이는 타나카가 마음에 들었던 이즈미는 비밀을 지킨다. 이즈미는 이후로 타츠야에게 부탁해 별 섬에 놀러 가 타나카를 만난다. 그곳에서  타나타는 이즈미에게 여행 도구를 구경 시켜 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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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이즈미는 타츠야와 함께 나하에 놀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다나카를 만난 이즈미는 타츠야와 함께 이자카야에서 밥을 먹고 타츠야는 술을 마시게 된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타나나와 헤어진 이즈미는  술에 취해 사라진 타츠야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타츠야는 두려움에 숨어 있던 중 폴리스! 라고 외치는 소리에 미군이 도망간 이후에 정신 차린 타츠야는 이즈미에게 달려가고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 이즈미는 울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타츠야는 이즈미의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즈미를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이즈미가 느껴야만 했던 끔찍한 고통에 대해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이즈미를 도와주고 싶었던 타츠야는 사촌의 이야기라 말하며 타나카에게 털어놓는데 타나카는 정말 끔찍한 일이라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자신이라도 타츠야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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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타츠야 부모님의 숙박업소에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 타츠야는 성실히 일하다가 갑자기 손님의 짐을 던져버리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을 타츠야가 발견한다. 수상하게 여겼지만 그래도 그간 봐왔던 타츠야를 믿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타나카는 숙박업소를 엉망진창으로 때려 부수고 자취를 감춘다.

 

 


믿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분노가 아니다.

 

영화는 끝까지 범인이 부부를 죽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악과 분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분노가 만든 두려움과 의심에 더 초점을 맞춘다. 범인이 가진 분노는 무차별적이다. 그 분노의 대상이 언제든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범인이 내 주변에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주변을 의심한다.


사랑하는 딸의 연인이 범인이라면? 나의 연인이 범인이라면? 이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범인이라면?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의심은 점차 몸짓을 부풀려 그가 범인이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분노> 원작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TV 방영후 수없이 쏟아진 용의자 제보 연락에 영감을 받아 <분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 수많은 제보들은 나 이외의 사람을 의심한 결과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쌓았던 믿음은 이렇게 손쉽게 부서진다. 애초에 서로간의 믿음이란 너무나도 별 것 아닌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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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알고있는 것이 얼굴, 이름, 나이뿐이어도 그 사람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쉽게 믿었던 것 만큼 피어오른 의심은 손쉽게 그 믿음을 무너트린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그사람을 무작정 믿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를 믿는다는것은 그만큼 나 자신을 믿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사람은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를 쌓아가고 또 믿었기 때문에 손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믿음에 금이 가게 되면 사람은 더 크게 아파한다. 나의 존재를 거부당한 것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믿는다는 것이 나쁜것이 아니다.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배신당하고 아파하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의 형태든, 신뢰의 형태는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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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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