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러 빛깔을 품은 옛 보물들, 고궁을 지켜온 그들의 이야기 - 고궁의 옛 물건 [도서]

글 입력 2021.02.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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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평면_고궁의 옛물건.jpg

 

옛 물건은 훗날 역사라 부르는 모든 사건의 '씨앗'이다.

 

 

<고궁의 옛 물건>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근무하는 저자가 186만 점이 넘는 고궁에 소장된 옛 물건 중 가장 대표적인 옛 물건을 고르고 골라 18 주제로 요약하여 펴낸 책이다. 특히 소개된 고궁박물관의 진품들은 그 시대 생명의 요구, 시대의 미학과 공예의 이상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실용적이고 눈부신 증거품들이며 90% 이상이 진귀한 유물일 정도로 그 가치가 놀랍다.

 

우리가 평소 고궁을 방문하거나 직접 찾아가 볼 일이 얼마나 될까? 더더군다나 그 공간 속 집약된 옛 문명과 문화의 뿌리를 지닌 유물, 다시 말해 옛 물건을 만나볼 확률은 더욱이 낮을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숨결을 보고 들은 저자가 여러 색을 지닌 다채로운 표현으로 설명을 일삼은 '옛 물건'을 책을 통해 마주해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신비로운 이야기와 사실들. 그 속에서 옛 물건의 진가를 발견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궁의 소장품을 '유물'이라 부르지 않고 '옛 물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자가 유물이 품은 시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모든 소장품에는 여러 왕조의 비바람이 수렴되어 있고, 시간의 힘이 응축되어 있다. 그 광대한 물질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모래 한 알이 사막에 파묻히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 「책 소개」 중

 

 

  

동물의 매혹: 작은 학 한 마리가 주전자의 무게를 허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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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위의 학 주전자(=연학방호), 춘추시대 후기

 

 

주전자 배에 네 마리 비룡이 기어 올라가고 있다. 주전자 목에 붙은 양쪽의 귀는 벽에 붙어서 고개를 돌린 용 모양의 괴수다. 가장 절묘한 부분은 주전자 뚜껑인데, 두 겹의 연꽃잎이 차례로 피어나며 두 개의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 그 동심원 안 겹겹의 연꽃잎에 둘러싸인 원 안에 학이 서 있다. 학의 가벼운 자태가 지구의 중력에 저항하며 주전자를 하늘로 끌어 올리는 듯하다. 작은 학 한 마리가 주전자의 무게를 허무로 만들었다.

 

- 「동물의 매혹」 중에서

 

 

저자는 복잡하지만, 그와 비례할 정도로 통일된 미를 갖추고 있는 청동기의 옛 산실을 조명한다. 특히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직관적이고 독특한 '부속'에 집중하여 <연꽃 위의 학 주전자>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꿰뚫어 보려 한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꼬리를 말고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로 형상화된 받침대와 주전자 배에 기어 올라가고 있는 네 마리의 비룡, 벽에 붙어 고개를 돌린 용 모양의 괴수로 구성된 주전자 목에 붙은 양쪽의 귀 등. 무늬의 틀에서 벗어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동물 조각들이 청동 주전자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연학방호.PNG

 

연학방호의 설계도

 

 

그중에서도 절묘함을 지니고 있는 주전자 뚜껑에 주목한 저자는, 차례로 피어나는 두 겹의 연꽃잎과 동심원을 이루는 모습. 그 안에 서 있는 학의 자태를 본 작품의 묘미라 평가한다. 중력에 저항하여 주전자를 하늘로 끌어 올리는 듯한 가벼움의 속성이 주전자의 묵직함을 '허무'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마냥 꼿꼿이 허리를 편 채 자신보다 큰 존재를 무(無)의 세계로 인도하는 작은 학 한 마리가 청동의 끝 인상을 결정지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여운을 주는 강렬함이 시각을 압도하는 듯하다.

 

 

 

물결무늬 의자: 흐르는 물을 가구에 담았다. 침착하고 자연스럽고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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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리목 물결무늬 손잡이 장미 의자, 명나라

 

 

세상이 가구 위에 있고, 가구는 나무배처럼 우리를 태운다.

나무 의자에 앉는 것은 세계의 중앙에 앉는 것이다.

천지와 내가 나란하고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

 

 

한편, 책의 챕터에서 선보여진 물결무늬 의자는 명나라 때 제작된 옛 물건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형태와 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의자 등받이와 손잡이 아래 공간에 끼워진 물결무늬 살, 그로 인해 흐르는 물줄기와 같은 여러 개의 곡선이 운동감 있게 펼쳐진 모습. 그러면서도 산만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침착함과 자연스러움으로 중무장한 단단하고 굳센 나무의 촉감까지, 이 모든 게 하나의 가구에 담겨있는 것이다.

 

더불어 중국인들의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탄생한 물이 흐르는 의자는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공간에 놓인 보통 가구였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러한 놀라움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한 가정집의 평평한 공간에 본 가구가 놓인 상상을 해보면, 높이 93센티미터의 의자에서 웅장한 강과 머나먼 산천을 관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내다보게 된다.

 

간단하고 자연미가 응축된 장미 의자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고 관조하는 이들에게 중국식 표현의 전형을 마주할 기회도 찾아온다. 철학을 만물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거대하고 빽빽한 내용을 함축적이며 반복적이고 때로는 무심하게 표현해내는 능력. 그게 바로 중국식 표현의 전형, 즉 중국 미학의 특징인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축소된 우주라 여겨지는 가구의 정의를 생각해볼 때, 나무의 숨결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구는 우주의 모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매개체가 된다. 가장 기본적인 원소들이 하나로 녹아 있는 세상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에게 있어 '가구'의 존재는 숭배의 대상이나 무한한 상상력의 응집체였으며 인생의 철학부터 시각예술, 일상의 잔잔함까지 모두 흐르고 있는 총체적인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앉는 도구가 아니라 교류, 학습, 명상을 위해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음매. 인간이 기댈 수 있도록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고독한 오뚝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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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고궁박물원

 

 

이 밖에도 <고궁의 옛 물건>에서 소개되고 있는 고궁박물관의 진품들은 시대의 미학과 그 이상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실용적이고 눈부신 증거품들이다. 책을 읽으며 단 한 가지의 진품도 아무런 의미 없이 창작되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당대의 배경을 각가지의 언어로 품고 있는 이야기의 저장고 그 자체로 살아온 시대를 불문한 반짝이는 보물이었다.

 

우리처럼 생명을 지닌 존재들도 삶을 살아가지만, 생명이 없는 대상들도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비록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진 않았으나 인간사를 오랜 세월 지켜보며 세상에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으리라. 그렇기에 고궁에 자리하는 여러 옛 물건이 수 세기가 흐른 현재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또 회자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온전한 가치와 현시대에 전해줄 또 다른 가치를 생성해냄으로 ing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시대에, 유물에 담긴 삶의 흔적을 스토리텔링으로 만나본다는 건 값진 일이다. 더하여 중국의 방대한 문화사를 따라갈 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인문 여행을 경험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물(古物, 옛 물건)'이 어떤 말을 걸어올지 상상해보았는가? <고궁의 옛 물건>에서 다루는 여러 빛깔을 지닌 보물의 향연을 통해 가장 완벽한 박물관이라 불리는 자금성 고궁박물원의 옛 물건에서, 오래되었지만 새것이나 다름없는 고결한 중국의 미학이 건네주는 메시지를 찾아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고궁의 옛 물건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가려 뽑은 옛 물건 18-

 

 

표지 입체_고궁의 옛 물건.jpg

 

 

지은이
주용
 
옮긴이 : 신정현

출판사: 나무발전소

분야
예술사

규격
152*215

쪽 수 : 344쪽

발행일
2020년 12월 29일

정가 : 22,000원

ISBN

979-11-86536-73-5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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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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