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들의 무덤에서 피어난 전시 – 라스트 북스토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점"
글 입력 2021.02.0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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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일정한 목적이나 내용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등을 글 또는 그림으로 표현하여 묶어 놓은 것이다. 나무, 비단, 파피루스, 양피지 등에 기록하던 것이 종이로 대체되었고, 현재는 종이로 된 책이 전자책으로 바뀌어 가는 단계에 있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변화는 우리에게 전자기기만 있다면 책을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책의 의미는 이전과 같지 않다. 전시설명에서도 이전 세대가 물려준 방대한 지식과 지혜가 담긴 책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을 언급했다. 대중교통에서 책을 든 사람을 보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라며 예를 들었는데, 실제로 한국인들의 독서량을 순위로 나타내었을 때 생각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음에도 오히려 책을 찾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들어 동네 거리마다 독립서점이 생겨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간다. 책을 찾아 읽지 않지만, 서점은 가는 것이다. 책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두 관계에서 연결점이 사라져 잠시 혼란이 왔다. 그러나 공간적인 특징이 강한 요즘의 서점들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지금의 서점들은 책을 읽고 사는 장소인 동시에 앉아서 먹고 마실 수 있는 서비스와 문화 관련 프로그램까지 마련된 복합적인 공간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감정까지도 빠르게 소비하는 요즘, 책과 서점 또한 빨리 읽히고 버려지는 일을 붙잡으려는 시도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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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종이책들은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찢기거나 분해되어 캔버스처럼 기능하거나 책의 겉표지를 이어 붙여 둥글게 펼친 모형들을 모빌처럼 만들었다.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책 모빌>은 설명에 따르면, 1920년대의 책부터 최근에 출간된 책까지 본래 가지고 있는 원형을 유지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한 세기를 아우르는 재료로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종이로 이루어진 무채색이 주는 수수함의 아름다움이 작용하는 것 같다.


이외에도 이름 모를 책들을 켜켜이 쌓아 붙이거나 단면을 자르거나 실에 매달아 띄운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이리저리 휘둘려 전시되어있는 모습이 언뜻 보면 가혹해 보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오기 이전까지 누군가의 책장에 살아 숨 쉬며 영감을 주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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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의 생명은 언제 다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책이 탄생한 순간 의미를 지니며 태어났으니 생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끝은 무엇일까? 필요에 의해 책을 샀으니 필요가 없어져 버렸을 때인가, 아니면 아직도 책장 속에 있지만 다시 찾지 않을 때인가. 아무튼, 쓸모를 다 했으니 물리적으로 눈앞에서 치우면 완벽한 끝이긴 할 것 같다. 기억에도 없으며 내용도 점점 잊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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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재로 다양하게 변주하여 만든 공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학의 별들>은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문학의 역사에 있어 거장들의 사진을 두 면의 벽에 밝은 전구와 함께 전시했는데, 과연 밤하늘의 빛나는 별과 같았다. 밝은 전구들의 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붙여진 작품의 제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들의 작품을 배우고 읽으며 심지어 달달 외우면서 성장해왔기에 그 간접적인 경험 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작가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추면서 작품을 떠올리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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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점”이라는 수식어를 단 <라스트 북스토어>는 책들의 무덤에서 피어난 전시 같았다. 더 정확하게는 버려진 종이책들에 대한 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찾지 않고 읽히지 않는 종이책들을 서로 뭉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의 기능을 잃고 작품이 된 종이 뭉치들은 관람자에게 책의 의미를 찾게 만든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종이책들이 책의 의미가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을 마주하고,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요즘의 서점처럼 공간적인 특징을 내세워서 말이다.


분명 전시 기획 의도와 목표를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것을 알지만, 거창한 설명에 비해 빈약한 작품의 나열을 보고 있으니 아쉬움이 남는다. 전시 곳곳에 보이는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마감 처리와 전선이 정리되지 않아 어지럽게 놓여있는 부분이 눈에 걸린다. 무엇보다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을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설명을 읽을 때면 원본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나름의 의미를 담아 설명으로 풀어내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설명을 줄이고 작품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을 것이라는 미련이 남는다. 그래도 사진을 찍으면 꽤 예쁘게 담겨서 만족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라는 점을 참고해주길 바란다.


더 이상 읽히지 않아 버려진 종이책들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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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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