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을 활용한 무궁무진한 오브젝트의 향연 - 라스트 북스토어

글 입력 2021.02.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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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게 된 서울이었기 때문에 더욱 방역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면서 발걸음했다. 다행스럽게도 전시 방문 일정이 다가오자 점점 일일 확진자 수도 줄어드는 추세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안심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압구정에 위치한 K현대미술관에 방문했다.

 

마지막 서점엔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QR 체크인과 발열 체크를 마치고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내가 간 시간대에는 나와 동행한 지인과 둘 뿐이어서 편하게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여유롭게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둘 보았고 그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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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자마자 신문지, 책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네킹이 눈에 띄었다. 그녀가 전시회를 보러온 관객들을 환영하며, 누추해 보이면서도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채 우리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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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에는 책으로 만든 모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손수 하나하나 접었을 생각을 하니,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접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초등학생 때 학기가 끝나고 버릴 교과서를 저렇게 접어 아코디언처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다양한 모양으로 접힌 채 매달려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저 책들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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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은 침대 위 모빌들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세상에 태어나서 본 물체가 몇 안 되는 아기들이 본 물체 중 하나가 모빌이기 때문에 나는 모빌이 상당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그란 눈으로 열심히 모빌들을 살피며 어른이 감히 생각해내지 못하는 상상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꾸려나갈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각자의 그 깨끗했던 순정이 남아있어 어른이 된 지금도 모빌의 모양을 한 물체를 보면 어릴 적 안정과 고요를 느낀다.

 

나도 책 모빌을 보며 어릴 적 내가 모빌을 보았을 때 떠올렸을 첫 이야기와 생각들을 상상해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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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북스토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전시 부분이다.

 

전 세계의 유명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얼굴들을 마치 하늘에 수놓은 별처럼 자리해놓았다. 반짝이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그들을 기리며 전구들로 그 빛을 표현했다. 사진, 그림들을 보며 작가의 이름을 떠올려보며 내가 아직도 도전하지 못한 작가들이 많음을 느끼며 이번 연도에는 꼭 그들의 작품들을 마음속에 품으리라 다짐했다.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문학은 그저 수능에서의 골칫덩어리였던 과거'를 지나 '내 삶에 직접 담고 싶은 매력적인 도전파트로서 문학을 즐기고 있는 현재'가 되었다. 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 '문학의 별들' 전시물을 보았을 때 별 감흥도 없고 제대로 많은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별 감흥 없이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디터로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전 작품을 접하고 도전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그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들의 가르침과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고 현실에 펼쳐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서툰 나를 보며 자책하기도 했고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계속 그들을 만나고 싶었고 이번 연도엔 작년보다 문학을 가까이하자는 목표를 다이어리에 끄적이며 2021년을 시작했다. 그래서 2021년 이 전시회장에 있는 별들로 가득 찬 전시물이 더 뜻깊었다. 더욱 목표를 향하는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고 동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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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알파벳들이 줄에 이어진 모습을 한 설치미술 작이다. 영어 알파벳이 여럿 섞여 있다. 책을 만드는 재료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제작자의 의도로 나무를 통해 알파벳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알파벳들은 순서도 없고 특정 단어를 나타내지도 않는다. 다양한 단어를 찾고 책의 제목과 문구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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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크기의 알파벳들이 둥둥 떠다닌다. 확 떠오르는 단어는 없었지만, 여러 알파벳 문자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마치 내가 책, 문단, 문장, 단어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거대한 정보의 홍수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 많은 문자 속에서 둘러싸인 기분은 분명 그와는 달랐다. 요즘, 영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도 이에 꽤 중독된 것 같다는 느낌에 씁쓸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문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공간에서는 미로에서 숨겨진 길을 찾은 것처럼 희망이 느껴졌다.

 

이것이 라스트 북스토어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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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커버를 다시 아티스트의 마음과 시각에 따라 그려본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누구나 들어본 책들이었다. 소크라테스, 셰익스피어, 몬테크리스토, 모네 등 다양한 소재의 책들이 새로운 표지를 통해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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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판본 리커버 북이 많이 나온다.

 

나도 클래식하면서도 시선을 끄는 책의 표지가 좋기에 이왕이면 표지와 디자인이 특별한 책을 구매하는 편이기도 하다. 교보문고의 문학 코너만 가보아도, 같은 작품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다양한 디자인으로 나를 사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여러 책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물에서도 나의 구미를 당기는 책들이 많아서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림 실력을 조금 더 키워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의 표지를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언어로 만들어진 책도 나오게 된다면, 책의 일러스트와 표지 구성까지 모두 나의 손을 거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누구보다 책의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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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 있는 작품은 미술이라는 것이 꼭 시각적으로 심미적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가 지나온 그리고 사는 삶과 사회를 반영하여 쓴 문학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한 형태라는 것, 그리고 일반적인 삶에 대한 성명을 다양한 타이포그라피를 통해 표현한 전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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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자체가 서점 속 수많은 책 중 하나로 기록되진 않아도,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하나하나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렇게 롤러코스터 타며 삶이 흔들려도 이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다.

 

*

 

오랜만에 서울에 나갈 준비를 하고 나간 하루였다. 3달 만에 오직 '라스트 북스토어' 전시회를 보러 가기 위해서 서울로 걸음을 향했다.

 

가다 보니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내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원 없이 공연을 봤고 전시회를 갔고 영화도 봤다. 그 문화생활은 내 인생의 전부였고, 그렇게 코로나에게 나의 생활을 빼앗길지도 몰랐다. 그때가 그리워지면서 다시 전시회장을 찾았다. 계속해서 집에만 틀어박혀 막막한 내 미래를 그리다 보니 숨 쉴 구멍이 없는 것처럼 답답했다.


그러다가 간 전시는 나에게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독서를 내 삶의 완전한 습관으로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요즘, 책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보면서 나는 책에 둘러싸일 수 있었다. 그 묘한 안정감이 주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물리적인 책 자체를 활용해 만들어낸 다양한 오브젝트를 보는 즐거움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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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 권 선정하여 그 속에 있는 깊은 메시지나 이야기를 분석해낸 파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함께 전시회장을 나왔다. 혹은 책에 대한 리뷰나 평가를 직접 관람객들이 간략히 써서 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면, 더욱 책이 가지고 있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잔잔히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안정감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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