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이치는 여기에 있다: 진리의 발견 [도서]

글 입력 2021.02.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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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가벼운 느낌의 노란색 표지와는 상반된 800페이지의 묵직함. 도서 『진리의 발견』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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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단편 소설 제출용으로 원고지 200자 70매를 채웠다. 독백처럼 적어 내려가는 형식이 익숙한 터라 A4용지 11장은 큰따옴표로 이루어진 대화 대신 '문장'으로 빼곡했다. 내 생애 사진이나 첨부 자료 없이 가장 길게 글을 늘여본 경험. 제출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하나의 주제로 긴 글을 풀어내기란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음을. 그리고 마주한 『진리의 발견』. 제아무리 역사 속 인물들을 조명하는 구성이라지만 한 주제로 정리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다니. 경외감부터 들었다.


고백하건대,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다. 집필 방식이 복잡하다. 천문학, 문학, 과학, 수학 등 여러 분야가 뒤얽힌 데다가 한 인물로 시작하여도 그 인물과 직접 맞닿은 사람들, 후세에 이어질 사람들, 동시대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끝없이 연결된다. 인물별로 챕터가 나뉘어있지만, 사실 구분의 의미는 크지 않다. 다른 흐름이 나올 때 이야기를 끊었다기보다는 독자의 가독성과 저자의 집필성을 위한 장치 정도다.


즉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800페이지가 유기적이다. 그 흐름을 정리할 키워드는 책의 극 초반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동전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력 또한 양면을 지니고 있다. 미지의 것이 우리 앞에 입을 벌리고 있을 때 그에 대한 불안감을 미신과 신화라는 우리가 아는 확실성으로 채우는 것, 상식과 이성이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할 때 마법과 요술을 들먹이는 것은 바로 우리가 지닌 공상의 능력이다. 한편, 바로 같은 능력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사실을 뛰어넘고 습관과 인습으로 규정된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진실의 새로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동전이 어느 쪽으로 뒤집히는가는 그 상상력을 운용하는 인물의 용기, 자연, 문화, 인품의 어림할 수 없는 조합에 따라 결정된다.

 

p.28 요하네스 케플러_꿈을 꾸는 자만이 깨어난다

 

 

우리의 인식은 이분법으로 가득하다. 높다/낮다, 크다/작다, 훌륭하다/허술하다, 궁극적으로 좋다/나쁘다. 편협하다고 꾸짖을 수만은 없다. 물체나 수치 등 사물 대부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인간에게 닿지 않는다.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행동 양식이나 생활패턴, 가치관을 형성한다. 모든 생물체의 본능적인 생존 욕구다.


다만 어떤 분야든 한 가지의 관점만 고수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예를 들어, '과학은 이성적이고 문학은 감성적이다. 고로 두 학문은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단정 지은 이상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나 새로운 자극을 얻기 어려운 상태에서 저 문단을 보았을 때, 책장 깊숙이 두었던 인덱스 스티커를 꺼냈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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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전에는 상상(꿈)이 필요하다. 원시시대의 미신, 제례 의식에서 시작된 상상은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을 거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현재 비대면 생활을 가능케 한 Zoom 같은 플랫폼으로 넓어졌다. 가장 '과학적인' 발명은 가장 시적인 발명이다. 시는 무엇인가. 빠르게 훑어보고, 천천히 한 행을 읊어보고, 한 자씩 살펴봄으로써 흰 여백과 까만 글자 사이의 응축된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대신 뻥 뚫린 간극을 읽는 이가 채워야 한다.


저마다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는 이유가 담겼다. 자신의 경험, 주변인이 전해준 말, 뉴스에 나온 소식 등이 켜켜이 쌓이고, 마침내 한데 모인 데이터가 다양한 형태로 발산한다. 크게 나누어 때로는 예술로, 때로는 과학으로. 이성과 감성은 교집합 하나 없는 독립적인 개체이면서도 이성에서 감성, 혹은 감성에서 이성으로 연결되는 프로세스다.


이 과정은 '앞서 나간 자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색인 없이 계산 오류로 난잡한 항성 목록을 정리하고 누락된 성운을 발견한 '캐롤라인 허셜', 타고난 수학적 기질과 호기심으로 미국 천문학의 첫 위업이라고 부를 만한 행성을 발견했던 '마리아 미첼', 청교도의 엄숙한 교리와 가부장제의 억압에서도 꿋꿋이 홀로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그 외에도 마거릿 풀러, 수잔 길버트, 아이더 러셀, 마리아 차일드,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핼런 헌트 잭슨 등 역사에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와 그들 간의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들이 만든 '최초' 에 세상이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음을 통탄하며 읽어갔다. 빠짐없이 기억하겠다는 꽤 다부진 의지로 말이다. 책을 덮고 뚜렷하게 남은 문장, 책의 소개말이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경계를 넘어 인식의 지평을 넓인 여성들'. 그 여성들 각자의 이름을 꺼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름을 지닌 이들이 때로는 같은 시대에, 때로는 다른 세기에 연결했다는 점에서 책 제목이 선명해진다.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흔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치를 깨달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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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마리아 포포바

 

옮긴이

지여울

 

출판사

도서출판 다른


분야

교양인문


규격

152*225, 양장


쪽 수

840쪽


발행일

2020년 02월 14일


정가

44,000원


ISBN

979-11-5633-278-7 (93800)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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