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유수현 컬쳐리스트와 함께 한 시간

예술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
글 입력 2021.02.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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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 시작하는 MBTI, 내향성의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 일이다. 더구나 그 새로운 사람이 평소 내가 알고 싶어 하던,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설렘과 긴장은 배가 된다. 알고 싶었던 사람과의 만남. 약간의 긴장감을 품고 유수현 컬쳐리스트와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유수현 컬쳐리스트는 2019년부터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컬쳐리스트로 2주에 한 번씩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하고 있다. 그의 글은 주로 [미술/전시] - [시각예술] 카테고리 안에서 예술계 소식을 전달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함께 내어 보인다.

 

예술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지나치게 피상적인 글이 인터넷 상에 넘쳐나는 와중에, 아트인사이트에서 만난 유수현 컬쳐리스트의 글은 귀하게 다가왔다. 그의 글은 정성스레 차리고 준비한 한 끼 식사 같다. 낯선 재료도 숙고하여 다듬고, 소화하기 편하도록 조리하여 정갈하게 담아낸 한 상 차림. [Project당신]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유수현 컬쳐리스트를 찾은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터미널 앞에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먼저 발견한 그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해왔다. 카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가볍게 주고받은 대화에서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서로가 서로의 기사를 열심히 읽고 온 탓이었는데, 글로 먼저 만난 사이였던 우리는 서로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해 온 질문을 하나 씩 풀었다.

 



반갑습니다 수현님! 먼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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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더 감사해요! 저도 사실 민형씨 글을 잘 읽고 있어서 어떤 분이실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먼저 인터뷰 요청해주셔서 신기했거든요. 둘 다 예술에 대한 글을 많이 쓰니까, 글에서 통하는 부분도 많다고 느꼈어요.

 

맞아요, 저도 수현님의 글에서 종종 저와 비슷한 시각을 발견했고, 그래서 더 만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수현님의 기사를 쭉 복습해봤는데, [미술/전시] -[시각 예술]로 분류되는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더라고요. 수현님은 어떤 방식으로 오피니언의 주제를 선정하시나요?

 

저는 미술 이론을 공부하다 보니 수업 때 접한 내용에서 소재를 잘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배운 내용을 정리만 하여 글을 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쓰는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더할 수 있도록,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그 안에 저의 통찰과 메시지를 담는 것을 중요시 합니다. 예술가 브루스 나우만을 소개한 기사가 있는데요, (포스트 코로나, 이제는 새로운 예술을 기대할 때) 요즘 같이 코로나 때문에 예술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예술의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그의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했어요. 마찬가지로 앙리 마티스에 대한 글 (SNS 감성의 대명사로 다시 태어난 앙리 마티스)은 마티스에 야수주의가 중요하다고 배우지만 지금은 SNS 상에서 그의 드로잉이 각광받고 있잖아요? 그런 불일치가 흥미로워서 한 명의 예술가라도 시대에 따라,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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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도 종종 작성하시는데요, 전시를 선별하고 리뷰를 작성하는 수현님 만의 프로세스가 있나요?

 

전시의 경우, 저는 전시를 보는 게 일상이자 숙제이기 때문에 평소에 많은 전시를 접합니다. 그 중에서 글로 남겨 놓고 싶은 전시에 대해 리뷰를 쓰는 것 같아요. 글을 쓰려고 미리 하나를 정해서 가는 게 아닌, 많이 가서 보고 그 중에서 하나를 정하는 식이죠. 그렇게 정하게 되는 전시는 보통 제가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전시인 경우가 많아요,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 자체가 집중이 잘 되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는 뜻이거든요.

 

진행 중인 전시에 대해 글을 쓸 때, 특별히 유의하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현재 진행 중인 전시에 대해 리뷰를 작성할 때는 사실 창작자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견해를 쓰는 게 아닐까, 하고 위축이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만약 기획자라면 관람자가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내는 편이 더 기쁠 수 있겠다 싶어서, 작품과 전시 전체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리뷰인지 아닌지 모르고 읽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저의 견해’에는 어투에서 개인적인 주관임을 드러내고자 의식하는 편입니다.

 

감상자의 의견이, 리뷰가 없으면 사실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게 예술이기에 더 사명감을 갖고 전시 리뷰를 작성하고 있어요. 전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도 다들 SNS 상에 인증하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게 더 중요하고요. 제가 쓴 기사를 전시 기획 측에서 아카이빙하거나 공식 사이트에 올리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이럴 때마다 제가 쓰는 글의 무게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됩니다.

 

수현님의 글은 상당히 깊이 있는 정보를 담고 있을 때가 많아 읽고 나면 굉장히 든든한데요, 그만큼 정성이 오래 들어갔을 것 같아요. 이를 매번 가능케 하는 수현님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무척 게으른 편이라, 아트인사이트에 매번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참 고마운 기회라고 여기고 있어요. 게으른 생활을 피하고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도록 탄력을 주는 계기라고나 할까요?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가 되기 전에는 항상 생각만 하고 글을 쓰는 건 자꾸 미뤘어요. 전공에서도 글을 써야할 일이 많다보니 과제가 아닌 이상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저에게 약간의 강제성과 책임감이 있는 에디터, 컬쳐리스트 활동은 쓰고자 했던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자체가 원동력인 셈이군요! 말이 나온 김에, 수현님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아트인사이트는 제가 원하는 모든 걸 글로 써서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예술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만큼 빠르게 흐릅니다. 변화를 주도하기도 하고 다양한 표현이 수용되는 장이죠. 저는 그런 예술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더구나 익명에 가려 댓글을 남기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기사를 작성하는 일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이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일단 지원하고 보자는 마인드였습니다. 붙었을 때 매우 감사하고 기뻤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할 것 같아요. 그런 글쓰기에 대한 항상성 자체가 저 자신의 단단함을 구성하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글쓰기가 버거울 때도 없진 않아요. 하지만 그 버거움 자체가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아트인사이트에 처음 지원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2년 째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깨닫고 얻은 게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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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총 68개의 기사를 기고했다

 

 

수현님의 글을 읽다보면 예술가, 예술계에 대한 애정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예술과 사랑에 빠지게 된, 예술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예술에 빠지게 된 계기라...사실 저는 제가 신기해요. 대학에 입학하게 전 까지는 제대로 된 전시 관람이란 걸 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기억을 더 소급해보면 아주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미술책을 좋아라했는데요, 그때의 얕은 관심사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심지어 학창시절엔 자연계로 진학하려 했는데, 직전에 인문계로 전향했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진로 탐색 시간에 직업 성향을 테스트하는 시간이 있었고 저는 추천 직업군에 ‘전시 기획자’가 떴어요. 당시엔 전시를 다양하게 접해 본 적이 없었는데도 왜인지 ‘전시 기획자’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 길로 미술 이론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큐레이터 학과로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얕은 관심사에서 시작한 무모한 선택이었는데 지금의 제가 걸어온 길을 보니 꽤나 열심히 몰입해 공부해왔고, 이쪽 공부가 잘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 벌써 2년 째 이렇게 예술에 대한 글도 쓰고 있네요. 하하

 

맞네요, 저도 생각해보면 대단한 계기가 있진 않았어도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현재를 이루는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수현님이 에디터 활동을 마무리할 때 기고한 글을 봤어요. (내가 예술에 관해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2021년의 수현님이 생각하는 ‘글쓰기’는 무엇인지요.

 

제가 글쓰기에 대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은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글을 써야 할 때 인위적으로 소재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에요. 그때 썼던 글에서는 ‘글’이라는 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든다고 했지만, 이제는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해서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으면 해요. 그래야 막상 글을 써야 할 때 억지로 머리를 짜내지 않고 한 차례 숙성된 통찰을 제대로 풀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히 새로운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고 흡수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하는데, 사실 작년 한 해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현실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제약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제가 혼자 있을 때보다 트여있는 공간에서 공부하거나 작업할 때 더 생산성이 발휘되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잘 무너지기도 하고 나태해지기도 했어요. 때문에 글의 내용적 측면에서는 최근의 글이 더 좋지만 평소에 글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은 작년이 더 열정적이었고요. 제가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서, 올해는 특별히 더 부지런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예술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온 것처럼, 앞으로도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이에요. 다만 미술사나 예술가 등 기존에 존재하는 내용만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제가 직접 찾아내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미술사나 작품 등에서 조금 더 걸어 나와 현실과 맞닿은 주제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가까운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수현씨가 앞으로 이야기할, 현실에 맞닿은 예술계 이야기들이 기대됩니다. 미술사 이야기, 유명한 예술가, 값비싸게 거래되는 작품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는 사실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도적 차원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예술가, 예술 교육의 어두운 면 등 당장 우리 주변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 글로써 밝히는 일이 따라서 더 귀할 것 같네요.

 

짧지 않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많이 했더니 배가 고프네요. 이제 밥 먹으러 갈까요?

 

 

유수현 컬쳐리스트와의 만남은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있을 때 시작하여 하늘이 검게 어두워질 때까지 이어졌다. 스크롤의 한계로 우리가 나눴던 빽빽한 대화를 모두 옮겨 담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 못다 전한 이야기들은 나의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긴장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진솔한 태도로 질문에 답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준 유수현 컬쳐리스트 덕분에 인터뷰 내내 즐거운 텐션이 이어졌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건강한 식사를 마친 것처럼 충실감이 밀려왔다. 함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많은 대화를 나눈 만큼 마음도 충실히 채워졌음을 느꼈다. 앞으로도 유수현 컬쳐리스트가 정성 들여 준비하고 섬세히 구워낼 글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번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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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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