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인생을 정리할 시기가 아니라 꿈을 펼칠 시기야
글 입력 2021.02.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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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여름에 페리아(Feria)라는 큰 축제를 다녀왔다. 스페인은 축제의 나라라고 할 만큼 매달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리는데, 페리아(Feria)는 연중 행사 중 가장 크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축제였다. 시내엔 온갖 장식들이 설치되고 야외 부스에서는 술과 음식을 팔았다. 외곽엔 놀이공원을 짓고 군것질거리나 인형, 기념품을 파는 가판대, 클럽 부스도 설치했다. 우리나라의 유원지와 같은 분위기였다.

 

오로지 축제를 위해 놀이공원을 짓고 다시 철거한다는 것도 다분히 충격적이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이 있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본래 흥이 많고 축제를 사랑하는 스페인의 국민성에 비롯되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축제를 즐기는 연령층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한국에서 축제를 가면 주로 20, 30대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던 터라 그 광경이 내게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 만연한 연령대에 대한 규범이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대학 졸업 후엔 취업 준비, 늦어도 30대 초반에는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 사회에서 정한 결혼 적령기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이런 기준은 국가를 막론하고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 유독 엄격한 것 같다. 과거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음에도 이런 규범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여전히 눈치를 주거나 나잇값을 못한다는 비난을 받기 쉽다.

 

 

중년의 삶_표지평면.jpg


 

그런데 여기 뒤늦게 연극 배우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평균 나이 55세, 참별난극단 B2S(Bravo 2nd Stage)에서 4년 차 아마추어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은영 연출, 김영희, 마기원, 윤현정, 정호정, 최상옥, 최정주 배우다.

 

55세라면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중년이다. 경제활동이 중단되는 나이, 인생의 1막이 끝나가는 나이다. 사회적 기준에서 본다면 새로운 직업활동을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름다운 인생의 2막을 외치며 연극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우연히 연극강좌를 발견해서, 주변 친구의 추천으로,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했던 과거의 꿈을 다시 찾고 싶다는 이유 등 각자만의 계기로 말이다.

 

이 책은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연극인의 자기 소개,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 각자 맡은 배역을 받아들이는 과정, 극을 만들어나가며 마주한 한계를 극복해나가고 마침내 연극이 끝났을 때의 성취감까지. 중년이 되어 연극과 만나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들의 언어로 솔직하게 써내려 간다.

 

이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읽어나가다 보면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색할 정도로 여느 20대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중년들을 만날 수 있다.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기존의 삶과 연극 연습을 병행하며 숨가쁜 하루를 보내기도 하며,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고 첫 무대를 무사히 완성한 배우도 있었다.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배우들이 배역을 이해하고 배역과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모임을 가지고 대사를 낭독한 뒤,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과 처음 만난 배우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주인공 역을 맡아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안중에도 없던 엑스트라 같은 조연을 맡아 실망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역할을 잘 소화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가득한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맡은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은 모두 치열했다.


 

노인 특유의 자세 및 목소리, 억양을 제대로 잡아보려고 애를 썼다. 무엇보다 노인인데도 노인 같지 않으려 애쓰는 강여사의 특징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활력 넘치는 노인 연기를 몇 번이나 돌려보며 연구했다. 시장이나 지하철, 길거리에서 할머니들의 억양과 독특한 행동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그렇게 강 여사가 되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나의 십 년, 이십 년 후가 그려졌다.

 

- 최정주, 강 여사 p. 93

 

 

공연이 턱밑에 다다른 어느 오후, 집 앞 홍제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답답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출가가 숙제로 내준 복식호흡 연습도 해야 했기에 겸사겸사 개천의 흐르는 물소리, 대로의 차 소리, 산책 나온 사람들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히길 바라며 “내 꺼! 내 꺼!”를 크게 외치며 걸었다. 저만치 인공폭포와 물레방앗간이 보였다. ‘참 풍경이 보기 좋다’라고 속으로 감탄하는데 그 순간 “어? 아, 그렇구나. 안 해본 말이구나.”

 

- 김영희, 치매 노인 3 p. 103

 


우리는 온 힘을 다 해도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연기는 이 한계를 조금이라도 깨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노력하는 과정은 배우라는 일의 가장 큰 어려움이자 매력이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과정,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배역을 넘어 일곱 명의 연극인들이 가족들, 과거의 자신, 또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순간은 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우리가 살면서 알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영화나 책 속 인물들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언젠가 나의 미래가 될 중년의 삶을 그려보고, 이미 중년에 접어든 부모님과 친척들, 주변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게 하는 책이었다.

 

*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 하나가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지?” 나는 대답했었다.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며 사는 거.” 매일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것들을 온 영혼 다해서 만나가는 중이다. 하여 지금도 난 계속 성장하고 있다.

 

-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라! p. 47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색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에 들이고 보내며 일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도 색이 있을 테니까. 어느 물감도 따라 잡지 못할 만큼 찬연한 색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제 색이 바랬다고, 혹은 아예 색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늙음일 것이다.

 

- 한정원, <시와 산책> p. 67

 

 

<시와 산책>의 저자 한정원은 늙음의 정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내보내지 못할 때, 새로운 것을 보아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 자신의 색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늙음이라고. 생각해보면 이십 대인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세상을 다 산 것처럼 모든 의지를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냈었다. 그때의 공허함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그 시간을.

 

그런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늙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기도 전에 이미 늙어버린다. 또 누군가는 지천명의 나이에도 "지금도 난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삶의 열정을 내보인다.

 

열정 가득한 일곱 명의 연극인들은 세상의 기준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 나이는 인생을 정리할 시기가 아니라 꿈을 펼칠 시기라 외친다. 이 책을 읽었다면 알 수 있다. 중년의 나이도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나이는 먹었지만 늙음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들의 앞날에 반짝이는 미래가 기다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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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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